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작가의 인생이 궁금해진다
REVIEW/BOOK REVIEW 2024. 5. 31.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작가의 인생이 궁금해진다
진작에 써야 했던 후기였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책을 읽은 지 몇 달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야 후기를 작성하게 되었다. 과연 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써보자!
먼 옛날의 나는 데미안이라는 책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왜냐고 묻는다면 첫째로 '세계문학걸작'이라는 타이틀의 무게감 때문이었고 둘째로 '데미안'이라는 이름의 뉘앙스가 나의 취향이 아니라는 사소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데미안이나 폭풍의 언덕 등의 '세계문학걸작' 소설들을 읽으면서 명작이라고 해서 품격있고 어렵지 않으며 작가의 욕망에 충실할 뿐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데미안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나에게 꽤나 섹시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어른이 되고 나서 관심도 없던 데미안에 흥미를 느끼게 된 건 SNS에서 본 헤르만 헤세의 작품평 때문이었다. 글이 잘 읽히고 사건 전개가 매끄럽다고, 이런 서술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필사해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처음 생긴 흥미를 계속 가슴속에만 담아두고 있다가 오디오북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먼 거리를 왕복 2시간씩 차로 출퇴근했는데, 핸들만 잡고 있어야 하는 두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 오디오북을 듣게 되었을 시기였다. 윌라에 최근에 나온 유명한 소설들도 많이 있었지만, 우선은 실패 확률이 적은 고전 소설부터 읽어보자~ 해서 여러 소설을 접하던 중 듣게 된 소설이 바로 데미안이었다.
실제로 데미안의 내용은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 내용을 들으면서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상 내용이 어렵거나(ex: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지루하면 금세 흥미가 식어 흘려듣기 마련이었는데, 데미안은 다른 소설들보다 훨씬 더 매끄럽게 들렸다. 나는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 과정과 데미안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푹 빠져들었고(굳이 비교해보자면 후자의 영향이 더 컸다), 이렇게 잘 쓴 소설을 귀로 듣기만 하지 않고 활자로도 읽어보고 싶어 여러 출판사와 비교 후에 e북으로 한 권 사서 읽기도 했다.
'나'. 싱클레어, 그리고 헤르만 헤세
내용이 1인칭으로 전개되며 '나'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인지, 책을 읽으면서 유독 '나'에게 이입이 많이 되었다. 나 또한 '나'처럼 성장 과정을 거치며 이러저러한 많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거짓말로 동네 아이에게 약점이 잡혀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에게는 말도 못하며 점차 주인공이 속하지 않았던 '다른 세계'로 스며드는 과정은 나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싱클레어가 겪었던 일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별 것도 아닌 고민이 청소년 시기에는 거대한 중압감으로 다가와 어른에게 말도 할 수 없었던 고민은 나에게도 있었다. 이런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은 나의 공감을 크게 불러 일으켰다.
괴로운 나날이 이어지던 주인공의 일상.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학생이 학교에 전학오게 된다. 그의 이름이 바로 '데미안'이었다. 지금까지 '나'가 당연히 데미안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에게는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생각했던 데미안이 데미안이 아니었다니. 당시 림컴 사태가 터지기 전에 싱클레어라는 캐릭터를 본 적이 있었음에도 거한 착각을 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데미안은 지금껏 이어지는 현실적인 이야기, 그리고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프란츠 크로머와는 전혀 다른, 마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른 또래들보다 성숙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면서 마치 현실과는 유리된 듯한 소년이었다. 그는 싱클레어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면서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남들과는 돋보이는 존재. 데미안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신비로움이 정말 내 취향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데미안이라는 존재가 작가 헤르만 헤세가 성장하며 그의 사고를 발전시킨 추상적 관념의 의인화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소설을 읽을 때는 이렇게 기능적으로, 또는 내용을 해석하듯 읽는 편이 아니었는데…… 데미안은 유독 이러한 시점으로 읽게 되곤 했다. 그가 마치 작가의 '깨달음'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책의 주인공이 '나'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내용 자체가 성장을 다루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일까. 나는 그냥 둘이 나중에 사귀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소설의 내용 자체에 몰입하고 싶었는데 왠지 모르게 '헤르만 헤세는 이러한 삶은 살아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생각외로 데미안은 책의 내용 전반에 걸쳐 나오지 않았다. 짧은 학창시절 이후 싱클레어가 김나지움으로 떠나게 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끊어진 듯했다. 싱클레어는 점차 비뚤어졌고 데미안과 연락도 닿지 않았다. 그렇게 홀로 방황하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도 마치 뮤지컬 레베카에서 단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 '레베카'의 존재감처럼 데미안의 존재 또한 끝도 없이 느껴졌다. 싱클레어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관심을 가진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정신차리고 보니 데미안을 닮아있질 않나… 과연 장르가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을 만난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을 사랑하기까지 한다. 이 집안 유전자에 싱클레어를 매혹하는 기가 흐르기라도 하는 걸까? 그 장면에서도 많은 철학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아니… 그래서는 안돼……. 하면서 내용을 조마조마하게 들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훗날에 친구에게 데미안을 강력 추천했을 때 에바 부인을 만나는 장면을 잊고 있었는데, 친구가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그 장면 생각이 나 버려서, 친구가 나를 이런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데미안과 싱클레어가 키스하는 건 괜찮고?).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전쟁에 참가하게 되며 헤어진다. 이 대목에서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시대 배경이 확 와닿기도 했었다. 소설이 1910~1920년대에 쓰인 작품이니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세계 대전이 소설 속에도 나오고 있었다. 먼저 떠난 데미안, 그리고 그 이후에 싱클레어가 전쟁에 참전한다. 어느 날 싱클레어가 폭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고 병동에 누워있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찾아온다. 이제는 자신이 예전처럼 너에게 가줄 수 없다고, 그럴 때는 내면에 귀를 기울이면 자신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는 대목은 길었던 이야기가 끝나고 싱클레어이자 헤르만 헤세의 성장이 종착지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입을 맞추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두 세계……
책을 읽으면서, 싱클레어 뿐만 아니라 나 또한 두 세계에 각각 한 발을 내딛고 있었다……. 하나는 작가이자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성장의 결실을 맺는 명작,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타쿠적인 마음…….
데미안을 막 접하기 시작했을 때 다른 친구가 나보고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데미안이라는 캐릭터의 조형 자체가 너무 나를 겨냥한 듯한 취향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내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1900년대의 소설에서 남자 둘이 키스를? 여자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정신차리고 보니 데미안의 얼굴이 그려져 있어? 데미안이랑 연락이 잘 안 되니까 막 화가 나? 둘은 왜 이렇게 가까운 거야. 냉정하게 생각해도 헤르만 헤세가 2024년에 데미안을 출간할 때 리디북스의 BL 소설 코너에 작품을 게재했다 하더라도 분명 잘 나갔으리라 생각한다. 그 때문에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대체 이 작가는 무슨 인생을 살았길래 이런 브로맨스 향기가 짙게 나는 작품을 썼던 것일까? 현대만 하더라도 사회는 동성애를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심지어 1919년 독일에서 이런 내용을 쓸 수 있었냐는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인생이 매우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데미안이 처음 출간될 때, 헤르만 헤세는 작가명을 본인 이름으로 내지 않고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렇게 되면 정말 에밀 싱클레어라는 남자가 자신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보며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한 획을 그은 '데미안'이라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쓴 수필 같아 보이지 않냐고. 심지어 이 작가, '수레바퀴 아래에서'에서도 꽤나 비슷한 감성을 느껴서 정말 무슨 과거를 살았을까 호기심만 증폭된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소설 외적인 부분이었는데, 데미안을 읽기 시작한 초반에서 데미안 표지를 검색하다가 두 사람이 나중에 키스한다는 대형 스포일러를 밟고 시작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는 사건이 전개되고 또 전개될 때마다 '여기서 키스하나?' '여기에서 키스하나?" '여긴가?" 하는 의심과 추측을 끝도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 스포하신 분은 반성 부탁드립니다.
그 키스가 마지막에 등장할 줄은 몰랐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비슷한 시기에 책을 읽었던 다른 두 친구에게 들었었는데 세 사람이 해석이 전혀 달라서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 친구는 키스 자체가 허상이라고 생각했던가? 그리고 다른 친구는 그 장면이 데미안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떠난 이후에도 데미안은 당연히 잘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그는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벌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같은 책을 읽고 나서도 각자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다니! 그 때 독서 후기 교환에 많은 매력을 느껴 나도 열심히 독후감을 써야겠다! 하고 다짐을 했건만 결국 후기는 지금 쓰고 있다.
데미안을 완독한 사람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사람들에게 데미안의 명대사를 묻는다면 한 세계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그러나 다른 세계의 사람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눈을 감아, 싱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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