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들린 밀러 「키르케」 리뷰: 가장 인간다웠던 신
REVIEW/BOOK REVIEW 2024. 6. 28.
「키르케」 리뷰: 가장 인간다웠던 신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를 드디어 읽었다. 선물받은 지는 정말 오래 되었는데 내용을 두고두고 또 두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6월 3일부터 이 책을 시작하고 쫌쫌따리 계속 읽어나갔는데 오늘에서야 드디어 다 읽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키르케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키르케의 일생을 재해석한 소설이다. 나도 어렸을 때 홍은영 작가의 그리스로마신화를 읽고 자란 세대였기에 키르케에 대해서 제법 알고 있는 정보들이 있었다. 그리스로마신화에 관한 내용도 잘 아는 편이고 지금도 흥미가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비록 오랫동안 읽지 않았더라도- 책을 시작하면서 기대감이 컸다. 책에 대한 평도 좋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내 재미를 크게 충족시키지는 못한 책이었다. 어쩌면 소설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 메데이아와 스킬라, 오디세우스가 나오는 부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더한 문제는 그런 내용들을 '어렴풋이'만 알고 자세하게는 기억하지 못해 어느 부분이 재해석된 내용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일까···. 그래서 어느 부분이 작가의 재해석인지가 꽤 헷갈렸다.
책의 내용은 '여신이었을 시절' 키르케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기록이다. 그래서 그럴까, 내용은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극적으로 흘러가기보다는 키르케라는 한 인물이 신의 몸으로 살아가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잔잔하게 읊조리는 것과 같았다. 마법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섬에 유배되어 지낸 키르케의 삶처럼 책의 내용 또한 변화무쌍하기보단 고립된 채 천천히 서술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접한 키르케는 당연하게도 홍은영 작가의 키르케가 전부였는데, 그때의 이미지는 마냥 사악하기만 한 마녀였다. 그림도 그랬다. 진녹색 머리에 보라색 입술을 한 무시무시한 마녀 같은 느낌이었다. 질투심에 눈이 멀어 스킬라를 괴물로 만들고, 오디세우스와 만날 때도 그가 이겨내야 할 역경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키르케가 그런 선택을 할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때의 심정을 상세히 서술해놓았다.
실제로도 키르케는 그렇게 예쁘고 선한 이미지의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아름답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어 주변 인물들에게 매일같이 무시당하고 만만하게 여겨지며 끝내 본보기로 유배까지 당한다. 소설 속의 키르케는 내가 익히 알고 있었던 전지전능한 신과는 거리가 멀었다(님프니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난 키르케는 어느 신들보다도 인간다웠다. 자신의 무지함으로 인해 스킬라를 괴물로 만들고, 서툰 사랑을 하고, 다른 신들은 가지지 않을 죄책감을 가졌다. 아들을 낳고 엄청 애를 먹기도 하고, 아들의 굳건한 의지에 고개를 숙인다. 결국 키르케는 마지막에 인간이 되기를 택한다. 생각해보면 인간들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던 프로메테우스와의 대화에서부터 그 조짐이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참 겁많고 남의 눈치를 보고 바닥에 딱 붙어서 기어야 하는 아이였지만 점차 성장해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헬리오스에게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모습을 보고, 키르케는 인간이 되어도 남은 평생을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마법을 쓴 것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주어야겠다는 신들의 처벌로 인해 원치 않게 발을 들인 아이에이아 섬이었지만 오히려 이 유배가 키르케에게는 돌파구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징글징글한 신들의 모략과 비위를 맞춰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 비교적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고 마법도 연구할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나였다면 더 좋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즘 시각에서 쓰여진 책이라고 해서 그 의의에 맞는 부분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처음은 여성주의라고 확 와닿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사실은 이랬다' 하는 키르케의 입장을 대변한 내용이라는 점? 페넬로페를 제외하고는 키르케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은 이들은 대다수가 남자이기도 했고 원작에서도 나름 주체적인 여성상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 돌이켜보니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진 오디세이아 이야기에서 적대해야 할 악마, 그리고 남편을 향한 지고지순한 마음을 지킨 아내에서 주체적인 인물로 변화한 키르케와 페넬로페만으로도 그 의의는 충분하지 않나 싶다. 다만 자신을 얕보고 겁탈한 인간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리던 키르케가 오디세우스를 만났을 때 그가 섬에 머무는 조건으로 자신의 침대로 들인다고 한 건 뭔가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물론 강제적인 겁탈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만.)
출판사 이슈로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야기는 끝까지 보지 못하고 만화로 읽는 그리스로마신화는 18권을 마지막으로 더 읽지 않았는데, 내 마음속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었던 오디세우스의 최후가 개꼰대할배가 되어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트로이아에서는 총명한 지략가였던 사람이 앞뒤 분간도 못하고 텔레노고스에 덤벼들다가 죽어버린 운명이라니 너무나도 허무하다. 특히 집안일을 싫어했다는 듯한 대목에서 하루종일 유유자적하며 글을 쓰는 작가들 뒤에서 집안 살림을 하는 아내들··· 그런 이미지들이 그려져서 호감도가 뚝뚝 떨어졌다. 조만간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19권부터 더 빌려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신화 속 신들을 구원자나 우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도 내 머릿속의 신들과 해석이 잘 맞았다. 그리스로마신화 속 신들은 마치··· 뭐랄까, 인류의 구원자, 진정한 신이라기보다도 그냥 DnD의 아시마르마냥 인간 종족보다도 우월한 특정 종족처럼 느껴진다. 상당히 불완전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계략을 꾸미고, 인간을 장기말로 다루는 점이 그렇다. 평생을 고여 있는 존재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페미니즘적인 의의를 찾아보려고 나름 애쓰긴 했는데 결국 나는 역시 사랑이야기가 좋은 모양이다. 키르케가 결국 마지막은 텔레마코스와 함께하게 되는 결말이 좋았다. 비록 키르케가 오디세우스를 그리워한 시간이 길었지만, 그는 결국 키르케와 완전히 맞물리지 않을 사람이었을 것 같다. 아마 갇혀 있다 보니 많은 것들을 꿰뚫고 있는 오디세우스에게 자연스러운 관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와 반면에 솔직하고 숨김없는 텔레마코스는 키르케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스틱스 강을 건너서도 행복할 수 있기를··· 그리고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작품을 보려 노력했다는 점으로도 충분한 의의를 두기로 한다.
이하의 발췌들
걍 변명하는 게 캐릭터 짜는 나 같아서 웃겨서 형광펜칠함
개비가 되어버린 내 추억 속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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