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책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 후기: 상상과 현실의 차이일까?

책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 후기: 상상과 현실의 차이일까?

REVIEW/BOOK REVIEW 2024. 5. 31.

 

책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 후기: 상상과 현실의 차이일까?

5월부터 다시 정기 독후감을 쓰기로 해서 고르게 된 책. 친구와 오리엔트 특급의 공포 캠페인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탐사자가 되기로 한 캐릭터의 출신이 스파이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책의 주인공 어셴든은 영국 사람이고 탐사자는 러시아 출신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완전히 공상 속의 현대 스파이물보다는 1910년대의 실제와 가까운 내용을 접하고 싶었다. 때문에 관련 있는 책을 찾다가 발견하게된 책이 바로 이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이었다. 달과 6펜스-나는 안 읽어봄-을 쓴 윌리엄 서머싯 몸의 소설인데, 그가 스파이로 활동하던 시절의 경험을 담아 써낸 책이라고 해서 더욱 관심이 생겼다.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어서인지 소설 속의 어셴든도 원래의 직업은 소설가이다. 정말 갑작스럽게 시작된 스파이 생활은 여러 사건들로 이어지는데, 사실 내가 생각했던 내용보다도 훨씬 잔잔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실재를 기반으로 한 소설에서 영화와 같은 극적인 상황과 액션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셴든은 일선에서 비밀을 캐내고 일하는 스파이라기보다는 '연결책'에 가까운 일을 많이 했다. 누군가에게 서류나 내용을 전달해준다거나 하는 일들. 중요하고 핵심적인 직책을 맡고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어셴든이 스파이로 발탁된 이유도 조금 더 상세하게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다. 평범한 소설가에서 갑작스럽게 스파이가 된 그는 중간 과정 없이 너무나도 일을 잘 소화해내었기 때문에.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 나는 내용이 장편의 형식을 취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2편 정도가 하나의 이야기인 옴니버스식 구성이었다(표지에도 연작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을). 자전적 소설이라서 그런지, 큼지막한 사건 위주보다는 어셴든이라는 사람이 스파이 생활을 하면서 겪은 다양한 일들~정치적 사건과 큰 연관 없는 일들도 있음~이 주된 내용이었다. 어셴든이 기차에서 함께하게 된 누군가의 이야기를 길게 듣는다거나, 중요한 인사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하는 내용들. 내가 원하던 전개가 아니다보니 자연히 '이 사랑 이야기는 언제 끝나나' 하는 식으로 지루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처음 1장을 읽었을 때는 내용이 끝난 게 맞는지 계속 이어지는 것인지 구별조차 하지 못했다. 2장을 한참 읽고 나서야 옴니버스 구성이라는 걸 알았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있긴 했다. 스위스가 중립 지대이기 때문에 스파이가 많이 모인다는 내용이라거나, 스파이도 다른 진영 스파이끼리 알기도 한다는 것(얘가 어디어디 스파이라더라~ 하는). 생각보다 공개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한 내가 원하던 1910년대 경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이야기

지금 내용을 돌이켜보면 가장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로 인도의 운동가를 잡기 위해서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붙잡아 거짓 편지를 보내게 했던 에피소드. 영국의 입장에서 그 남자는 단순히 '골칫거리'에 불과하겠지만, 식민지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히 그 인도인을 응원하고 싶었다. 내용을 전부 읽을 때까지 남자가 붙잡히지 않고 살아남기를 바랐던 것 같다. 만약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국적을 가진 사람이 이 내용을 읽었다면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 한국으로 빗대어 생각해보자면 결국 그도 독립운동가이고,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또한 일제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였으니까. 그 부분에서 윌리엄 서머싯 몸도 어쩔 수 없는 1800~1900년대의 영국인이구나.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옛날 사람이니 어쩔 수 없으려나~ 하면서도 몰입에 방해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내용은 스위스에서 독일인 아내를 둔 영국인 남성과 친해진 후, 그 타겟을 속여 영국 정보부에서 붙잡을 수 있도록 하는 임무였다. 타겟은 아내를 정말 사랑하고 남들에게도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일면으로는 스파이 활동으로 영국 스파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전적이 있었다. 앞뒤가 다른 양면성이란……. 정말 있음직한 일이기도 하다. 

 

어셴든은 호텔에서 묵으며 이 부부와 친하게 지낸다. 아내에게 독일어 교습을 받고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소설의 내용에서도 남자가 얼마나 친절한지, 성격은 얼마나 좋은지가 계속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정보부의 공작으로 결국 일을 구하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가 정보부에게 붙잡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부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어셴든은 그들에게 정이 쌓였을 법도 한데 결국 마지막에는 철저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나라면 엄청 망설였을 텐데! '비록 배신자지만 나의 선택으로 인해 한 사람의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한동안 나랑 친하게 지냈다'라는 생각이 들면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 같았다. 스파이를 하려면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하는 것인가. 

 

만약 이 책의 내용이 사건물보다는 한 인물과 그 주변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진 내용인 걸 알았더라면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까? 후기를 쓰는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그럼에도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뿐인 것 같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를 테니 나와는 잘 안 맞는 소설이었던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