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강 「채식주의자」 리뷰: 인간 답게 사는 것이란
REVIEW/BOOK REVIEW 2024. 10. 22.
한 강 「채식주의자」 리뷰: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해외로 여행에 가 있는 동안 아주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여유가 있을 때 문득 들어간 SNS가 한 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누군가의 말대로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번역을 거치지 않은 원서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일이던지! 세계적으로 큰 상을 수상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한 강 작가의 책을 찾아볼 것 같아서 얼른 도서관 앱에 들어가 작가의 작품을 검색했다. 이미 많은 책들이 10~20명씩 예약이 걸려 있었다. 내 순서가 돌아오기까지는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예약도서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왔다. 사람들의 수요가 높아지니 도서관 깊숙이 잠들어 있던 책들을 꺼내기라도 한 걸까? 덕분에 귀국하자마자 책을 빌려보았다. 이미 도서관 예약 선반에는 한 강 작가의 많은 책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었고 나 또한 대기 중인 책들을 예약해 둔 사람들처럼 빠르게 흐름에 발맞추어 책을 접해볼 수 있었다. 때문에 11월 독서 선정 책이었으나 반납기일이 일찍 다가온 관계로 후기 또한 지금 써 내려간다.
책은 남편의 속마음으로 시작한다. 지극히 평범한 아내와 결혼한 남자. 아내를 향한 어떠한 조금의 끌림도 없이 '결점이 없으니' 관성적으로 결혼한 그의 속마음을, 해외에서는 학생들도 읽자마자 남자 쪽에게 문제가 있음을 금방 깨닫는다던 이야기를 이미 본 적이 있었다. 때문에 이미 들었던 내용을 머릿속에 염두하며 도입부를 읽게 되었는데 어라··· 생각보다 '와 진짜 쓰레기네'라며 정도 높은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저게 왜 나빠?'하고 공감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나 또한 물론 앞부분을 읽으며 이 놈은 좋은 놈이 아니군 싶었지만 해외에서 느꼈다는 것만큼의 감정은 들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내게는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쉽게 볼 법한, 그리고 현실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있을 법한 형식적인 부부의 모습 같았다. 그제야 생각했다. 결혼은 마땅히 해야 하니까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혼하는 사회통념은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현상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해외는 데이트, 미팅 앱을 통해 결혼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보다는 배우자가 될 사람들의 부모 직업, 학벌, 경제 수준까지 평가하고 연애적 마음 없이 결혼을 선택하는 대한민국이 더욱 이상하겠구나. 비슷한 사례를 보고 듣고 다들 원래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해와서 경종이 울리지 않았구나. 나 또한 그러한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기형적으로나마 대한민국을 이루는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구나, 하며 내 생각을 돌아보게 되었다.
처음 아내는 이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아마 남편이 그만큼 아내에게 무신경했기 때문이리라. 어느 날부터인가 악몽을 꾸기 시작한 아내는 고기에 대한 심한 반감을 느끼고 채식을 선언한다. 늘 순종적으로,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눈에 띄지도 않게 살아온 아내는 이번만큼은 냉장고에 들어 있는 고기를 다 갖다 버릴 정도로 강경했고, 이러한 모습을 처음 본 남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손수 밥 한 끼 차려먹을 줄 모르는 남편이 뭘 할 수 있겠는가. 불만을 품으면서도 그는 아침마다 고기 한 점 들어가 있지 않은 채식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거의 스릴러에 가까운 아내의 비정상적인 행보를 보고도 책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조금도 드러나있지 않다. 아무리 사랑 없이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함께 평생을 꾸려나가야 할 반려자인데 괜찮냐, 많이 힘드냐, 따위의 걱정의 말은 단 한 마디도 내뱉지 않는다. 뭐 하는 짓이냐며 윽박지르고 왜 아침에 깨우지 않았냐며 정신이 있느냐며 타박한다. 그가 아내를 향해 내뱉는 말들은 평소 아내를 어떻게 취급해 왔는지, 아내가 아닌 남편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내용 속에서도 극명히 나타난다. 오히려 무엇이 잘못인지 조금의 죄의식조차 없으니 아내를 향한 잘못된 언행들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써서 아내를 병원에 보내지도 않는다. 상태가 안 좋으면 집에서 쉬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놈의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 굳이 상사가 초대한 식사 자리에 아내를 끌고 간다. 아내는 채식을 하니 채식 메뉴를 따로 준비해 달라는 말 한마디도 못할 거면서 아내에게는 왜 화장을 하지 않았냐고 쉽게 성을 낸다. 문득 후기를 쓰기 위해 1부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리며, 예전에 우리 집에서 있었던 일들도 함께 생각났다. 몸이 안 좋아 방에서 쉬고 있었던 우리 엄마를 보고 나에게 '너희 엄마는 절도 안 하고 방에서 누워만 있니? 돌아가신 할머니 서운하게.'라고 대신 나에게 타박하던 큰고모의 말. 그놈의 형식과 체면.
아내가 벌이는 일련의 기행들이 이따금은 같이 사는 사람은 어떡하냐 싶긴 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20만 원짜리 비싼 장어가 쓰레기통에 들어감. 상사의 사모님이 아내의 튀어나온 가슴을 본 순간 이 인간의 사회생활은 개같이 꼬였음. 같은 상황적인 면의 몰입에서 괴로워졌을 뿐, 남편이라는 인간 자체에게 큰 동정심이 든 건 아니었다. 밥이야 혼자 차려먹을 수 있었고, 상사의 식사 초대는 무슨 핑계를 대서든 아내를 데려가지 않거나(솔직히 회사에서 일하는 건 남편 쪽인데 일과는 상관도 없는 아내를 데려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면 깎일 일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의 기이한 구조를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친구의 말대로 화장을 신경 쓸 동안 옷차림을 한 번 점검해 줄 수도 있는 거였다. 필요 이상의 최악으로 다다르기 전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는데도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제 딴에 생각한 가장 강경한 조치는 아내의 친정과 형수님에게 전화해 아내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고자질.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형수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아내는 가지지 못한 색기 따위를 운운하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잔잔하게,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교묘하게 깔려 있는 하대. 아내를 하나의 인간으로 본다기보다는 제 밥그릇 챙겨주는 하녀 정도로만 보는 깔보는 시선. 남편이 오랫동안 곪아버린 상처로 병든 아내를 가리키며 대충 가정부로 생각하며 함께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영혜의 삶은 상처투성이다. 직접적으로 물리적 폭력이 가해지지 않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남편 곁에서 내조나 하며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세간의 시선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정서적인 학대는 극단적인 행태를 취하지 않고 '가부장'이란 말만 번지르르한 유교 관습 뒤에 숨어 당연하다는 듯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있기에 영혜의 상황이 나와 제법 가까운 거리감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남편에게만 그런 모멸적인 취급을 받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친정에서도 영혜의 입에 고기 한 점을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길 생각해서 한 입만 먹으라며 젓가락을 내밀고 사정사정하기도 하고 엄하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정신 나간 남편은 그런 행태를 보면서도 아내의 부모님이 아내에게 보이는 행동을 가리켜 부성애, 모성애라 지칭하고 가슴 뭉클해한다(지랄이다······). 싫다는 사람을 붙잡고 무력까지 써 가며 고기를 먹이려 하는 가족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아마 지금까지도 어떠한 가정에서는 비슷한 결의 억압과 폭력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은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가족 구성원을 짜 맞추려는 강압.
그런 장면을 남편은 그저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기만 하듯 상황을 서술할 뿐,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습게도 뒤늦게 행동에 나선 동서의 모습도 '시종일관 방관만 하고 있던' 같은 식으로 표현한다. 네가 그런 소리를 할 계제가 되나? 본인도 똑같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었으면서.
만일 누군가 나서서 아내의 식성을 존중해 주자고 했다면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됐을까? 영혜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하지 않았더라면. 초기 증상을 보일 때부터 병원에 함께 가주었더라면. 타박하지 않고 어떠한 점이 힘든지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었더라면.
영혜의 가슴이 답답한 건 화병 비슷 한 앙금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무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어 있어서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할 비정상적인 가정 내의 학대가 그 원인이었을 테고. 브래지어를 하면 답답하게 느꼈던 것도, 자살 기도 이후 입원해 있다가 뒤뜰에서 가슴을 풀어헤치고 앉아있었던 것도 결국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위에 만연한 폭력과 몰이해는 생명을 강제로 앗아가 도축하는 과정을 거치는 육식을 기피하고 채식을 선호하도록 이끌 만하다. 자신에게 아무런 폭력도 가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마음을 달래주는 나무들에게 더욱 큰 위로를 받고 안정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제게 싫은 것을 강제하는 인간보다도 더욱 따듯한 존재인 나무가 되기를 바랐던 거 아닐까?
이렇게 길게 써 내려가고 있지만 사실 첫 번째 챕터를 다 읽었을 때는 이게 뭐지? 싶은 마음이 컸다. 영혜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과거에 어떤 안 좋은 트라우마라도 있었던 걸까? 한 강 작가의 책들 중 하나에 어떠한 소재가 쓰였다는 이야기를 어설프게 주워듣기만 해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많은 고기들이 혹시 그 소재를 나타낸 건 아닐까? 하는 뜬구름 잡는 추측이나 했었는데, 병원 뒤뜰에서 맨가슴을 드러내는 '아 저거 어쩌려는 거야 정말······.' 싶은 답이 없는 상황으로 끝나버리자 당황했다. '몽고반점'에서는 갑자기 어떤 남자가 무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므로. 이게 끝인가? 정말? 단편인가? 난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데.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책인데 이 정도의 감상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상업적 대중성만 존재하는 유흥 위주의 책들이나 즐기는 수준이란 말인가? 글 자체는 문장이 눈에 잘 들어와서 막힘없이 쭉쭉 읽어나갔지만,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표지를 다시 살펴보니 채식주의자는 연작소설이었다. 2부에서도 영혜의 이름이 나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한시름을 놓았다.
그래. 이어지는 내용이니까 앞부분만 보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앞으로도 조금씩 영혜가 그런 기행을 벌인 이유가 나올 테니, 2부는 1부만 봤을 때보다 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전혀 아니었다.
몽고반점의 주인공은 영혜의 형부, 인혜의 남편이다. 작가는 남자들의 이름은 일부러 배제하기로 결정하기라도 했는지 주변 인물을 P나 J 따위로 표기하는 것처럼 그들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몇 년이 시간이 흐른 2부의 시작에서 이미 영혜는 남편과 이혼해 혼자 살고 있다. 상태는 회복되지 못했다. 부모님은 영혜와 연을 끊었고 인혜만이 영혜를 챙겨준다.
문제는 이 망할 형부가 처음 인혜와 결혼할 때부터 인혜의 동생인 영혜의 얼굴을 더욱 마음에 들어 했으며, 그 감정을 지금까지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2부의 이야기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예술에 도취된 별 볼 일 없는 남자는 영혜를 꼬드겨 전라로 작품을 찍게 하고, 그 이후에도······. 자기 딴에 잘못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는 했는지, 첫 번째 작품으로 끝맺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후배까지 꼬드겨 두 번째 작품을 찍으려 할 때에도 후배에게 성행위를 해야 한다는 말은 쏙 빼놓고 그를 데려왔다. 물론 아내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아무 짓이나 해도 되나? 그런다고 모든 더러운 행위까지 뜻깊은 의미를 지니나? 아! 뭐라도 되는 줄 아는 인간이 너무 싫다.
처음 2부를 실시간으로 읽어 내려갈 때는 아무래도 형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됐기에 영혜가 생각보다는 정상이 아닐까? 그저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자유롭고자 하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서 정신병자로 취급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형부는 영혜를 이해할 수 있는···. 아마 작품을 찍으면서 오히려 영혜를 향한 성욕이 잠재워지고 육신을 신성시하는 데에 가까운 묘사가 이어져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쾌하기 짝이 없긴 했다. 특히 남성기 주변으로 꽃을 그려 넣어 중심부가 꽃의 수술처럼 보이게 연출한 장면은 상상의 시각적 폭력으로 남아버려서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정말 생각하기 싫어. 내 머릿속에서 나가줘. 정말 편협하고 납작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보던 중간에는 남작가였으면 보다가 때려치웠을 거란 생각도 들었었다. 거의 견디면서 읽어내려갔던 파트였다.
결국 형부의 행동은 인혜에게 발각된다. 둘이서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본 인혜는 두 사람을 정신이상 행각으로 신고하고, 사람들이 두 사람을 구조하러 온다. 여전히 형부는 영혜가 미치지 않았다고 믿는다. 어쩌면 정말로 '믿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인혜의 개입이 있고 나서 한참 후가 지나서야 나 또한 '···그런데 영혜가 비이성적인 행보를 보인 건 맞지 않나. 정신이상이긴 하잖아? 아무리 예술 작품을 위해서였다고 한들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약자에게 그러한 제안을 건네고 나는 허락을 받았으니 괜찮다는 당당함을 지닐 수 있는가?' 따위의 연이은 생각을 했고, 인혜가 그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하지 않았나 싶다.
단순히 텍스트만으로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딴··· 쓰레기 같은 행위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인혜는 그 상황이 그녀의 인생에 얼마나 깊은 상흔을 남겼을까. 심지어 나는 제삼자의 이야기인데도 이렇게 역겨운데 말이다.
1부와 2부가 워낙 충격의 연속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제야 영혜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게(이해 X) 된 건지, 의외로 3부는 비교적 평온하게 읽을 수 있었다. 사건 이후 정신병원으로 다시 들어간 영혜는 이제, 나무가 되고 싶어 한다. 나무가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며 물구나무를 서고 종내 식사조차 거부하는 등 의사들과 직원들조차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런 영혜를 돌보는 건 오로지 인혜다. 남자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법한 '참한' 인혜 또한 피붙이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간다.
나 또한 장녀이기에 인혜의 상황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낳은 건 부모면서 동생을 케어해야 하는 건 장녀라니, 이렇게 부조리할 수가 있나. 왜 장녀에게는 동생을 자녀처럼 도맡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져야 하는가(첫째 아들에게는 그런 것 따위 없잖아!). 정신이 병든 영혜도 하루하루가 힘들겠지만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어 무엇 하나 자유롭게 놔버리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지내는 인혜의 마음 또한 성치 않았다. 물론 인혜가 가진 천성 탓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장녀에게 주어진 압박감이 인혜에게도 적용된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인혜는 영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영혜는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 보였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서 미래를 대비하고 건강에 큰돈을 쏟아붓기도 하는 이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가치보다 더한 고통으로 변질되어 살고 싶지 않아 한다는 점이. 이러한 생각이 태어날 때부터 내재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보다는 주변에 삶을 힘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으니 견디지 못하고 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아냐. 네가 모르는 행복이 있을 거야.'라고 쉽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그래? 그럼 원하는 대로 삶을 포기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니 인혜 또한 영혜를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병원에 두었던 거겠지. 하지만 과연 정신병원에 갇혀서 자유의지도 빼앗긴 채 억지로 영양분을 체내에 받아들이고 약물을 통해 의식을 잃으면서 인간의 몸뚱이로 살아가는 것이 정말 인간답게 사는 일일까? 어린 시절 가정 내에서 수많은 폭력을 겪고 결혼하고 나서도 자연스럽게 깔린 멸시를 받으며 제정신으로 살던 삶이 과연 나무가 되고 싶어 물구나무를 서는 정신병원의 일상보다 기쁠까? 차라리 영혜가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 심리에 반할지라도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자유를 주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더 존엄성 있고 가치 있는 삶일 수도 있다.
작가의 서술이 담담하고 개인이 느끼는 깊은 우울감을 잘 표현해 낸 탓에 나도 3부를 읽는 내내 마치 영혜처럼 적적한 숲의 한가운데에 나 홀로 말없이 서 있는 기분이었다. 책의 끝은 영혜의 결말을 즉각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나는 결국 영혜가 죽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의사가 억지로 영혜의 식도에 호스를 집어넣는 모습을 보던 인혜도 그만두라고 말리기도 했고. 생각해 보면 이미 남은 인생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무슨 수로 현실에 붙잡아둘 수 있을까. 그저 누구라도 먼저 영혜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 그녀에게 고통을 지울 수 있는 휴식을 줄 수 있었더라면, 삶을 포기해버리는 게 아니라 맞서 싸우고 반항할 수 있을 용기를 줄 수 있었더라면 이야기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남을 뿐이다.
다행히 3부를 읽으니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지만, 확실히 이 책을 이해했다고 느낀 건 작가가 한 말을 보고 나서였다. 세상에는 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그래서 이러한 서술로 쓰인 영혜가 나왔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도 1부부터 실시간으로 책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왜냐면,
실시간으로 썼던 메모들을 보니 제법 다 맞는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ㅋㅋ).
아무튼 내 감상은 이랬고, 나중에 채식주의자를 읽은 사람들과 감상을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모두가 각자 다른 사연으로 채식주의자에 나온 이야기와 비슷한 안 좋은 경험을 했었다는 게 신기했다. 그만큼 채식주의자의 내용이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함의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말해줘서 새롭게 생각해 볼 수도 있었고(영혜에 수많은 인물들이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 비슷하게 느낀 내용을 나누며 함께 공감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혼자 책을 읽어나가며 작가의 뜻을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감상 교류를 통해 깨달은 점이 많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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