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자 시리즈 2 「선더헤드」 후기: 종소리를 위했을 뿐인 내용인가?
REVIEW/BOOK REVIEW 2024. 10. 29.
수확자 시리즈 2「선더헤드」 후기: 종소리를 위했을 뿐인 내용인가?
8월에 다 읽은 책을 이제야 후기를 쓴다. 그만큼 스토리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후기를 써보자.
일단은 내가 이 책을 읽는 마음가짐을 잘못 잡고 들어갔던 것 같다. 그냥 SF 액션 영화를 보듯 가볍게 읽었어야 할 내용을 단순히 책이 벽돌책이라는 이유로,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작가가 책에 어떠한 깊은 함의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그냥 오락용으로 봤어야 했는데. 여기서 작가의 철학을 찾으려 하니 이도저도 되어버리지 않은 거다. 다행히 책을 읽던 중간에 이걸 깨닫고 노선을 선회했다.
선더헤드는 첫작인 수확자의 이야기와 이어져 수확자가 된 아나스타샤와, 콘클라베에서 도망친 이후 부패한 수확자를 처단하고 다니는 루시퍼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사람 이외에도 또 한 명의 새로운 주역이 등장하는데 바로 다른 이들보다도 선더헤드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그레이슨이다. 올곧은 시트라와 퀴리를 죽이려 하는 음모, 간접적으로나마 그 위험을 막아내기 위해 선더헤드가 보낸 그레이슨이 마주하는 수많은 사건들, 노드의 땅을 찾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 패러데이와, 되살아난 고더드와 로언의 대립······ 이런 것들이 선더헤드의 메인 스토리였다. 나의 기대 치고는 생각보다 내용이 그리 흥미진진하지 않았는데, 아마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과 비슷한 현상이지 않을까 싶다. 첫 작품인 수확자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새로운 세계관의 세부 사항을 하나하나 습득하면서 흥미를 잃지 않았다면, 선더헤드는 그럴 만한 흥미 유발제가 없었다고나 할까. 종소리는 이야기의 결말일 테니 이보다는 더 재미있기를 기대해 본다.
새로운 사건들이 이어지는데도 흥미가 떨어졌던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로언의 비중이 비교적 적어서이지 않을까 한다. 기억나는 로언의 자취는 시트라를 그리워하기, 부패한 수확자를 처단하기, 시트라를 그리워하기, 랜드에게 붙잡혀 고더드와 대련하기, 시트라를 그리워하기, 탈출하기, 시트라 구하기, 시트라와 죽기였으므로······. 나는 수확자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로언이 루시퍼로서 악을 처단하고 시트라와 함께 올바른 수확자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바랐는데 괜히 부패한 누군가를 봐주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랜드(TMI지만 랜드의 본명을 보고 한국계인가? 같은 생각을 함)와 고더드에게 대차게 당하기만 하고 끝내 새로운 돌파구 따위를 찾아내지도 못한 채 퀴리의 희생으로 시트라와 함께 살아남기만 해서 그 부분이 참 아쉬웠다. 이렇게 애쓰는 로언과 달리 고더드는 '사실은 살아있었음', '사실은 내가 계획한 거임', '사실은 큰 그림이었음'과 같이 과정에 별로 공을 안 들이고 마음껏 악한 짓을 벌이는 개연성이 부족한 캐릭터로 보여서 더더욱 흥미를 잃어갔던 듯하다. 처음 고더드가 타이거의 몸을 취해 돌아왔을 때부터 책에 대한 흥미도가 확 올라갔다가, '온갖 악행이 사실은 고더드'라는, 실은 전지전능에 가장 가까운 선더헤드마저도 그를 제대로 막아 세울 수 없는 흐름으로 자꾸만 흘러가니 갈수록 '그래, 또 너겠지' 같은 느낌으로 보게 되었다.
반면에 로언의 친구인 타이거는 정말 머리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인간인지라 내 호감도를 뚝뚝 떨어뜨렸는데, 갑자기 랜드가 타이거에게 호감을 느끼지 뭐냐. 아니, 너 같은 애가 저런 무식한 애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이 작가··· 러브라인 만드는 데에 소질이 없나······.
참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책에 쓰인 세계관이 나의 취향과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지 자꾸만 어느 한 곳에서 머리가 트집을 잡게 된다. 하지만 그전에, 1부에서 선더헤드가 왜 수확자들이 하는 일에 손을 대지 않는지 비난했던 나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는 바이다. 선더헤드는 다 생각이 있었다. 2부에서는 챕터와 챕터 사이사이에 선더헤드의 독백이나 생각이 들어가는데, 정확히 이 부분에 대해 왜 선더헤드 자신이 수확자들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지 설명해 둔 내용을 보고 '당신은 다 철저한 분석을 했던 것이군요' 하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러한 선더헤드에 비해 인간 무리인 수확자들은 너무 어설프다. 어설퍼서 이게 정말 미래 배경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지경이다. 선더헤드의 시선이 닿고 안 닿고를 떠나 정비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인듀라가 바로 그 대표 격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더헤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그 짝으로······ 섬을 만들어놨나. 솔직히 이건 고더드의 계략도 있지만 그냥 태만으로 인한 문제도 크다고 본다. 그것 말고도 사실 전래 동요에나 전해 내려오는 노드의 땅에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남겨두었다는 것도··· 그 똑똑한 고더드가 알아보면 어쩌려고? 마음이 선한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 같은 건 아니지 않나? 하고 고개를 기울이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3부에서 종지부를 찍기 위한 중간의 고통의 나열인 것 같은데, 뒤늦게 이 후기를 쓰고 있자니 선더헤드가 제법 나에게 불호였던 모양이다······. 우선 그렇게 애써서 퀴리가 고더드를 이겼는데 그 노력이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허탈감이 싫었다. 줬다 뺐는 느낌도 싫었던 듯. 인듀라가 무너지며 고위 수확자들이 죽어나가고 결국 퀴리마저도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로언과 시트라를 살려내던(정확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하는 거지만) 그 순간도 참 싫었는데, 주인공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희생하는 캐릭터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퀴리가 내 애정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전부터 로언은 솔직히 시트라랑 함께 연습했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그 이후로는 시트라를 만나지도 못했는데 왜 목숨을 버려도 좋다고 할 정도로 시트라를 사랑하는 걸까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지던 시점에서(물론 그럴 수야 있겠다만, 그렇다면 내면 묘사라도 더 해줬으면······.) 퀴리가 시트라와 함께 로언까지 살려내고 둘이 로맨틱하게 끌어안고 죽음을 맞이하니 '왜······.'라는 생각만······.
마지막에 시트라를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레이슨을 제외한 전 인류가 불미자가 되어버린다는 흐름도 어리둥절했다. 그럼 시트라를 모르고 지냈던 사람들은? 무지가 불미자로 낙인찍히는 잘못일 수도 있나? 애초에 일반인들과 수확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차는 어마무시한데, 당장 비행기 내 사람들을 도륙하던 고더드 무리에 맞서 일반인들이 무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레이슨만이 불미자 낙인을 받지 않는 극적인 흐름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일반인이라면 진짜 너무 억울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레이슨의 활약도 그렇게 눈여겨볼 만큼 엄청난 무언가가 있었다는 생각은 안 드는지라. 특히 그레이슨이 감옥처럼 꾸며진 곳에서 만났던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고 어쩌고···는 왜 나왔는지 잘 모를 정도로. 그저 권력 다툼에 끼어서 죽어간 많은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만이 든다. 아니, 그리고 선더헤드도 너무했다. 나 같으면 그토록 잘 따랐는데 갑자기 나랑 연락도 끊고 불미자로 낙인찍어버리면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럼에도 그레이슨이 선더헤드를 따르리라는 것도 선더헤드가 미리 파악했기 때문에 그레이슨을 선택했던 거겠지? 그래서 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좋았던 부분은 음파교 신자들이 그토록 평생을 찾아 헤맸던 공명이 바로 선더헤드의 비명이었다는 점.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던 탓에 '허··· 이게 이렇게 이어지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차라리 수확자만 보고 마무리 지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괜히 뒷내용을 알아버렸다'는 감상이 강하다. 이건 다 3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느라 그런 거겠지? 부디 그래야 한다. 사실 그래서 지금 2부까지만 읽고 후기를 쓰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결국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만 보고 후기를 쓰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왜 자꾸 두 개의 탑을 언급하는지 궁금하다면 반지의 제왕을 봐줘. 부탁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직 '유예' 단계다. 아마 종소리부터는 고위 수확자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권력을 다잡은 고더드에 맞서 시트라와 로언이 무언가를 해내고 패러데이가 노드의 땅을 찾아 무언가를 하는 내용이겠지?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종소리로 끝을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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