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리뷰: 수많은 상처들의 교감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리뷰: 수많은 상처들의 교감

REVIEW/BOOK REVIEW 2024. 10. 17.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리뷰: 
수많은 상처들의 교감

 

나는 항상 책을 읽고 나서는 책에 담긴 함의를 찾으려 노력하고는 한다. 마치 내가 이 책에 쏟은 시간과 노력의 보상을 찾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책이 전하는 이야기가 나의 흥미를 일정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금세 내게 다가온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내가 받아들인 내용이 조금 다르면 어떤가? 내가 느끼고 이해한 내용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감상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양귀자의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나에게 바로 그런 소설이 되었다.  연이어 읽은 두꺼운 책과 누군가가 번역한 해외 소설에 조금 질렸던 나는 친구가 이 책을 보고 싶다고 한 말에 바로 10월의 책을 이 책으로 선정하는 데에 동의했다. 그리고 거의 만 하루 만에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지루함 없이 박진감 넘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중도에 손을 떼기 어려웠다. 앞으로의 내용이 너무도 궁금했고 문장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갈 때 한 줄 한 줄이 내 머릿속에 채워지는 감각을 마음껏 즐겼다. 책을 손에 쥔 이후로 피곤함에 나도 모르게 잠들 때까지 읽고, 새벽 두 시경 끄지 않고 켜놓은 방의 불빛에 깨어나고 나서도 조금 읽고, 일터에 가져가 짬짬이 읽고, 신호등을 기다리면서도 읽고, 음식점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도 읽었다. 그만큼 흡입력이 굉장했고 앞으로 어떤 전개로 흘러갈지 연신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소설이었다. 세간의 작품들을 평가할 때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의의가 중요한 평가 요소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오로지 '의의'만이 작품 평가의 제1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작품이란 전하고자 하는 바를 깊게 호소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와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정말 별개의 이야기로 마블의 이터널스는 내게 최악의 영화였다.) 대한민국의 여성으로 태어나 끝없이 쏟아지는 강민주의 생각들에 과하다는 의견을 내놓을 수는 있을지언정 과연 그의 생각을 전면으로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여성의 억압과 해방을 다룬 이 소설은 내가 태어나기도 이전인 1992년에 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급진적이다. 나는 책의 내용을 통해 깊은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서러움을 느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작가, 그리고 그에 공감한 수많은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을 주면서도, 무려 30년 전에 등장한 강민주의 세상과 내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였다. 세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자 했던 강민주가 손가락마저 검열당해야 하는 여성들의 삶을 목도한다면 원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지은이가 양귀자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바로 그 유명한 「원미동 사람들」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필독서이자 간혹 교과서나 시험 문제에 실리고는 했던 소설 말이다. 나 또한 「원미동 사람들」을 읽었으나 내용에 큰 흥미를 갖진 못했다. 오로지 수능만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던 수험생 시절이었기에 작품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읽고 나서 이런 파격적인 소설을 세간의 눈초리도 상관치 않고 세상에 펴내기를 감행한 양귀자를 국회로 보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책의 소개 페이지를 보면, 1992년 초판이 나오자마자 페미니즘 논란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오른 양귀자의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저자가 펴낸 두 번째 장편소설로, 젊은 여성이 인기 남자배우를 납치해 감금하고 조종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소개를 읽는 순간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말할 수 없는 나라지만, 1990년대의 여성이 저런 행동을 하는 소설이라고? 내용은 파격적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 이상이었다. 나는 단순히 외모가 훌륭한 남자 배우를 욕망해 자신의 휘하에 두는, 여자 또한 남성과 다를 바 없이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내용일 줄 알았다. 언제나 여성은 성적인 욕망과 그 비슷한 욕망들을 숨기고 살아야 지고지순하며 정절을 지키는 훌륭한 여성으로 칭송과 동시에 억압을 받는 존재였으니, 내가 예견한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27세의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여성, 강민주는 그보다 더욱 깊고 통렬한 사유를 통해 '사회적 범죄'를 일으킨 것이었으니.

 

모든 금지된 것은 유혹이고 아름다움이다. 죽음조차도.

- 강민주의 노트에서.

 

 

소설 속 주인공들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 캐릭터들과 정반대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적극적이고 계획적이며 지적인 여성과 순종적인 남성들. 흔히 어떠한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주기 위해 역경과 고난을 헤쳐 나가듯, 소설 속의 강민주는 어머니의 뜻을 주기적으로 상기하며 자신의 목표를 철두철미하게 이루려 한다. 

 

눈물에 젖어버린 여성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강민주가 순전히 개인적인 욕망으로 유명 남배우 백승하의 납치 감금 계획을 벌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소설의 도입부부터 금방 드러난다. 강민주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심하고 비관적이며 쌀쌀맞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 누구보다도 상담소로 걸려오는 여성들의 눈물 어린 사연들에 약한 사람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남자에 대한 여성의 환상을 깨어주기 위해 유명한 남배우를 납치해 감금시켜둘 수 있을까? 강민주가 전화를 받으며 듣는 사연들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벌어질 법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강민주의 이성적인 생각들은 흡사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실제 누군가의 생각 같아서, 이따금 책이 쓰인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나 '비디오테이프' 따위의 단어가 아니라면 이 책이 1992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진보적이었다. 어느 순간은 강민주에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그는 이리도 거대한 포부를 안고 범죄를 벌였는데, 나는 고작 해서 그의 개인적인 욕망을 위한 범죄일 것이라 추측하다니.

 

물론 강민주가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큰 덩치와 매서운 주먹으로 뒷세계를 주름 잡는 황남기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을 보며 만족을 느낀다거나 하는 장면들에서 작가의 욕망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만 같아 제법 흥미롭기도 했다. 여성보다 훨씬 체구가 크고 심지어 폭력으로 뒷세계를 섭렵한 남자에게 겁 없이 고함을 치고 폭력을 휘두르는 주인공의 모습이 순종이야말로 여성들의 참된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에 얼마나 파격적으로 다가왔을지,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작가를 비난했을지 유추해 보게 된다. 

 

평생 자신의 외모를 가꾸며 살아가도록 태어나지 않고 평생 자신의 두뇌를 의지하며 살도록 태어난 것을 나는 하늘에 감사한다.

 

강민주는 당당하다. 실패를 예견하지 않는다. 철두철미하고 빈틈없이 계획을 세우는 그 모습은 흡사 인간이 아닌 초월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고 주변의 다른 이들을 쉽게 쥐고 흔드는 행동들은 너무나도 사이비 교주와 적성이 맞아 보였는데(······) 이런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억압받는 여성들을 대변해 남성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노선을 선택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싶다. 

 

책을 읽으며 나는 수많은 구절들에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나는 여자들이 그렇게나 많이 남자들에게 당했으면서도 여전히 남자에게 환상을 품는 것에 정말이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내가 선택한 이 운명 말고, 다른 운명의 남자가 어딘가 꼭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여자들의 우매함은 정말 질색이다. 남자는 한 종이다. 전혀 다른 남자란 종족은 이 지구상에 없다. 

 

'남자는 여자의 등을 밟고 일어서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비열한 존재다!'

 

고통의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 그것이 미덕이라는 주장은 기득권을 쥔 자들의 염치없는 요구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치밀하게 행해온 억압이야말로 바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라는 것. 역사의 다른 불행은 선구자들의 반성과 참회로 최소한 극복의 시늉이라도 보여왔지만, 이 끈질긴 불행만은 일부 몇몇 여성들만이, 그것도 아주 최근에 이르러서야 거론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의 여성 학대는 아주 교묘하고 간악한 수법으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들을.

 

한 가정의 가장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면, 만약 그렇다면 울타리를 넘어 새어 나오는 비탄과 한숨이 지금보다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술에 만취하여 귀가한 가장의 이유 없는 구타와 들볶임은 사라질 것이 거의 확실하고, 아내와 연인을 동시에 거느리고 싶은 남성들의 이중인격으로 인한 배신과 파탄의 인생 드라마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야수 같은 공격성을 자랑스러운 성징으로 파악하는 야만인의 유전인자는 남성들에게 전폭적으로 전수되었고, 절제를 수치로 아는 무분별한 성생활은 역사상 거의 남성의 종족에서 횡행했으니까. 

한 집단의 장이 천편일률적으로 남자에게만 맡겨지는 지금의 제도를 고쳐 여성들이 모두 그 자리를 장악할 수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세상은 한결 고요하고 아늑하게 돌아갈 것이다. 관리의 조직적인 부패와 끔찍한 살인강도 사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을 만드는 정치 야바위 따위를 일상사로 대하는 고역은 사라질 것이다.

그녀들은 폭탄주를 마시며 밀실에서 음모를 꾸미는 대신,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조직의 미래를 논할 것이므로 약육강식의 논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오직 밀어내기와 뒤집어씌우기에만 골몰해 온 남성 무사들의 활극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끊임없이 생명의 존엄성을 생활 속에 구체화해 온 여성, 지배보다는 평화를 욕망하고, 억압받아온 역사로 억압받는 자의 마음을 거울 들여다보듯 잘 느낄 수 있게 된 여성, 이런 여성들이 한 집단의 수좌가 된다면 세상은 적어도 지금보다 열 배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설령 향기로운 차 한 잔과 멋진 옷 한 벌의 유혹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이 있다 해도 그것이 만들어낼 결과가 무에 그리 대수롭겠는가. 암살과 쿠데타와 전쟁, 그것은 모두 남자들이 기록한 역사의 페이지들이다. 피의 숙청과 무자비한 진압, 끊임없는 헤게모니 쟁탈전 또한 남자들의 유희로 굳어진 것들이다.

 

맛있겠다니요. 혹시 식인종에서 진화된 종족이 남성 여러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게 하는 그런 언행들이 부끄럼 없이 통과되는 이 사회에서 잘생긴 남자 배우 하나를 잠깐 독식했다고 크가 누가 될 리는 없겠지요.

 

이런 강민주의 생각들은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의 잘못된 관습을 관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보다도 과격하다. 그가 붇잡아들인 백승하의 온순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백승하는 그래도 현대에 들어 여성들의 처우가 많이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이는 그가 직접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뱉을 수 있는 안일함이다. 강민주와 백승하 둘 다 어린 시절 가정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문제가 비롯된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백승하의 어머니는 가정을 버리고 떠났지만 이것이 성차별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니었다. 반면 강민주의 어머니가 남편에게 학대받았던 이유는 여자를 고작 자신이 가진 노리개 정도로만 보고 폭력을 사용하는 데에 서슴지 않고, 때로는 '남자는 원래 본능적이야' 따위의 같잖은 말로 잘못을 정당화하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강민주는 커가면서도 수많은 차별을 겪었고(가령 어머니와 딸 둘만 산다는 이유로 강도질의 표적이 되었다던가) 상담소에서 수많은 여성들의 눈물로 퉁퉁 부은 하소연을 들었다. 심지어 백승하를 납치하고 감금하는 일련의 계획을 실행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믿는 남성'인 김인수에게 몇 번이나 시달린다.

 

소설의 줄거리는 전반적으로 다 내 취향이었지만 단 하나, 짜증나는 점이 있다면 바로 김인수라는 남자의 존재였다. 상대방의 의사라고는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 하지만 그 이기심조차 마치 상대방을 위하기 때문이라고 포장하는 기만이 제법 나의 성가신 과거를 떠오르게 했고 은연중에 이 남자는 언제 처리되나 바라기까지 했다. 결국 김인수는 끝까지 살아남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 한다면 비극의 최종장이 김인수 때문에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강민주의 사고는 오로지 자신과 다른 성별을 향한 혐오에서 멈추지 않는다. 남성성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존재를 향해 공격적인 언사를 내보이곤 했던 강민주는 그가 잡아들인 백승하 또한 가꾸어진 외모 뒤로 추악한 일면을 숨기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놀랍게도 그는 털어서 먼지 한 점 나오지 않을 사람이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비범한 일면을 지닌 강민주처럼, 온화함과 함께 결국에는 강민주의 사고에 감화된 백승하라는 캐릭터 또한 소설을 위해 그려진 듯한 인물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가지는 상징성이 더욱 극대화된다. 아무렴 어때, 어차피 가상의 일을 다루는 소설이지 않나. 

 

비록 처음에는 충돌과 폭력이 있었고, 갇혀지내는 백승하는 하루하루를 괴로움과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보냈겠지만··· 두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교류하고 상대방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된다. 그 깊은 과정의 핵심이 바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연극, 「수업」이다. 어느 순간 강민주는 백승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기까지 한다. 철두철미하고 날카롭던 신경이 오로지 백승하에게로만 향한다. 반대로 강민주를 지독히 짝사랑하는 황남기는 강민주의 모습이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강민주와 어긋날수록 크나큰 괴로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강민주가 갑자기 백승하에게 호감을 보이는 부분에서 불만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납득이 가는 흐름이었다. 그래··· 실질적인 죄가 없는 사람까지, 심지어는 자신이 잡아 가두어 일방적인 피해자의 위치로 주저앉은 이를 오로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두 사람은 아파트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책에 담긴 내용 이상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백승하가 강민주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했을까? 마지막 백승하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강민주의 생각, 그리고 뜻을 이루기 위해 과감하게 실천하는 그 행동을 지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두 사람의 깊어지는 관계가 연애적인 감정이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굳이 가까운 표현을 찾자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라고 해야 할까.

 

내용이 극으로 치닫기 시작했을 때 결말을 서서히 예상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폭풍 같은 이야기의 마지막이 분명 해피엔딩은 아니리라 추측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빠져버린 세 사람은 비극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감정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강민주가 경솔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분명 언젠가 꼬리가 잡힐 운명이었다. 감정이 고조된 남기를 즉각적으로 제지하거나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백승하에게만 몰두하며 대처를 '조만간'으로 미룰 때에도 사달이 나겠거니 싶었다. 그렇다고 강민주가 백승하나 황남기와 연애라도 하겠는가? 오히려 그러한 엔딩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을 해치는 방향이 되겠다. 

 

그런 고로 나는 책의 마지막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나는 새드 싫어 강경 해피엔딩파 중 한 사람이지만, 어쩐지 비상하기 전의 흰 옷을 입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강민주의 최후는 야속하게도 그와 잘 어울린다 느껴졌다(나는 황남기인 것인가······). 뭐랄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른 가정을 생각해 보아도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결말은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강민주의 죽음이, 이루지 못한 소망이 죽음으로써 나로 하여금 더욱 큰 여운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반추하게 되고, 이루어지지 못한 성차별의 전복이 결국, 30년 후에도 이겨내지 못한 여성 혐오와 이어진다 싶고······.

 

책을 읽는 내내 대체 이 작가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길래 이런 파격적인 내용을 두려움 없이 썼을까, 어서 작가의 말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결국 나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영혼을 찍는 카메라가 있다면, 짓눌리고 억압받는 정신을 촬영하고 인화할 수 있는 과학이 있다면, 렌즈를 들이대고 분명히 찍어두어야 할 여성의 깊은 상흔은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찍어야 상처의 증거가 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교묘하고 복합적이다.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일상적으로 이해되고, 그리하여 일상의 하나로 무심히 잊히는 사회는 진정 옳지 않다.

 

작가는 얼마나 많은 여성 차별을 봐왔으며, 얼마나 많은 퉁퉁 부은 목소리를 가진 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청해왔을지······.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분명히 이 내용을 '거봐라. 결국 센 척 하던 강민주도 남자를 좋아하는 인간이었을 뿐이지. 여자는 남자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인 거임.'이라고 해석하는 인간들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런 인간들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책이란 결국 자신이 읽고 느끼는 바가 정답이라지만··· 그러한 감상을 느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지 말지의 여부도 나에게 달려있다. 어떻게 이 책의 결론이 '어찌 됐건 남자 좋아!'라고 생각할 수 있나! 어떻게 강민주가 황남기의 손에 하찮게 죽어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러한 논점이야말로 혐오에 찌들어버려 본질을 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큰 노력을 보면서도 작고 사소한 결점을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닐까 한다. 

 

강민주는 생각한다. 모든 젖어있는 것들은 그것이 여자건 남자건 강민주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시화의 차이일 뿐,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차별받는 존재들이 있고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강민주는 교감과 공감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황남기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강민주의 모습이 영원히 위압적이고 과격한 지식인으로 남길 바랐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강민주의 태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결국 강민주를 죽였다. 그 결과는, 강민주만이 할 수 있었던 수많은 행동들은 결국 그녀의 세상에 실현되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어버렸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의 흠집을 찾아내려고 악착같이 달려드는 사람들. 강민주가 백승하를 타깃으로 삼는 순간 범했던 착오. 아무리 열심히 선행을 베풀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인권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의 작은 일면을 물어뜯고 파헤쳐 날개를 꺾어버리는 익명의 무리들은 우리는 얼마나 많이 접하고 살았던가? 이런 사람들은 과연 누구를 닮았을까? 강민주? 백승하? 아니면 황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