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한 강 「바람이 분다, 가라」 후기: 아! 사랑이란

한 강 「바람이 분다, 가라」 후기: 아! 사랑이란

REVIEW/BOOK REVIEW 2024. 10. 28.

 

한 강 「바람이 분다, 가라」 후기: 아! 사랑이란

 

어렵다! 그렇지만 먹먹해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 강 작가의 여러 작품들이 떠오르는 가운데, 채식주의자를 완독한 바로 다음으로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등 더 유명한 책이 아닌 이 책을 펼쳤다. 별 이유는 아니고 도서관에서 금방 빌리게 되었기 때문에.

 

한 강 작가의 책은 읽을 때마다 나의 문학적 소양을 시험하게 한다. 채식주의자도 그랬고, 이번에는 더 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부터, 사실은 이제 마지막 장을 펼친 지금 시점까지··· 작가가 책에 담아낸 이야기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느낌. 그렇기에 내가 지금 쓰는 독후감도 비교적 짧게 마무리될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소재는 바로 '사랑'. 언제나 말하듯 나는 사랑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게다가 이 책은 생각지도 못하게 인주와 정희의, 퀴어 스토리를 담고 있었다.

 

이 책은 내용 자체가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와닿지 않는 천체물리학 이야기들. 짤막한 서술들로 뒤섞여가는 시간선. 달라지는 화자들의 독백. 인주가 세상을 떠난 후 강석원의 손에 의해 그녀의 삶이 거짓으로 변질되고 그 거짓으로 인해 인주의 딸 민서까지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을 막아내고자 한 정희는 인주가 왜 미시령으로 향했는지, 그녀가 죽기 전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왜 마지막으로 삼촌의 그림을 그렸는지 인주의 자취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결코 자살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고서.

 

생명이 꺼지면 영혼은 고통 없는 곳으로 간다는 말을 당신은 믿습니까.

그 믿음에 의지해 때로 사람들은 피 흘리는 동료, 신음하는 개를 앞당겨 죽입니다. 하지만 사실일까요. 전장에서, 동물병원에서 그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때, 정말 사라지는 것은 그들을 지켜보던 우리의 고통 아닐까요.

 

생각해 보면 결국 정희가 인주의 발자취를 뒤따라다닌 건 그녀의 죽음을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설의 마지막을 확인하면 강석원은 인주를 우상화하고 집착하고 있었지만, 감정이 절벽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서인주는 자살로써 삶의 막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인주를 신성시화하려 했던 강석원만큼이나 이정희 또한 마음속에서 '달의 일면'을 파악하지 못한 인주의 이미지를 고착화시킨 게 아닐까. 그러한 이미지와 충돌되는 마지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의 자취를 찾아 헤맸던 걸지도······.

 

아! 어렵다. 지금 막 책을 다 읽은 지금 강렬하게 뇌리에 남은 것은, 인주가 정희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강석원이 외친 말을 보고 나서야 인주가 정희에게 입을 맞추었던 일, 정희네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며 정희를 맞이했던 일, 힘들 때 그녀에게 전화를 걸던 일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비주류는 단순히 비주류인 것을 넘어서 비정상, 악덕 취급을 받는 우리 사회에서 정상성을 흉내 내며,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앞에 두고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감추기란 얼마나 힘든 것일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비단 인주만이 정희를 사랑한 건 아니다. 사랑이란 정말 많은 것들로 정의될 수 있으니까. 인주가 죽고 나서도 필사적으로 그녀의 삶을 거짓으로부터 지키고 민서를 보호하려 했던 정희의 처절함도 결국 단순한 성애적 사랑을 뛰어넘는 깊은 마음이었다.

 

한 강 작가의 다른 책인 「채식주의자」에서도 그렇듯 이 책에도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힘겨운 삶이 진솔히 드러나 있었다. 짙은 가부장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정희, 남편이나 아들에게는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딸에게만 도움을 청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삶도 당신만의 힘겨운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러한 감정적인 부담을 함께 짊어져야 하는 딸. 아픈 동생을 위해 학업을 이어나가면서도 꾸준히 돈을 벌어야 했던 인주의 어머니. 딸을 남편에게 빼앗겼다가 아이가 유전적인 병으로 인해 많이 아프자 그제야 민서를 만날 수 있었던 인주 등등. 솔직히 37살 먹은 소년(······)이라는 동주와 미성년자 정희의 육체관계 같은 것들이 나의 취향과는 전혀 맞지는 않았지만 약자들의 현실,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을 조명하는 부분들이 있었기에 불호가 희석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왜 동주랑 그러는 장면이 나오는지 모르겠음. 아, 어렵다. 어쨌거나 이 책도 채식주의자처럼 읽다 보면 남자들의 징글징글한 일면을 보게 된다.

 

책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로 끝났다. 사건은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정희는 살아남아 다음 생을 이어가게 되었으니 잘못된 것이 무엇이든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이렇게 보니 채식주의자와 반대되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던 영혜의 삶은 죽음으로 치닫고 아무도 멈춰세울 수 없었지만, 정희는 인주를 모르고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둘이 함께 공존했던 추억은 죽음과 가까이 있던 정희를 삶으로 끌어올렸다. 마지막장을 덮으며 느낀 건 살아남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었으니,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었든 타살이었든 정희는 언제나 지구를 맴도는 달처럼 그녀 주위를 맴돌았던 인주의 마음에 힘입어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채식주의자에 대해 작가가 했던 말처럼, 이 책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언가 대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인주의 죽음 또한 자살이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자신밖에 알 수 없는, 달의 이면처럼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을 품고, 중요한 건 그 사이 사이에 맺어진 소중한 인연이 아닐까.

 

다행히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나의 자괴감을 이끌어냈던 책은 막바지로 향할수록 흥미롭고 만족도가 올라가긴 했지만, 결국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책의 제목은 대체 무슨 뜻일까나. 원래는 후기를 쓰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의 후기도 보지 않으려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았지만 저마다 느끼는 지점이 다른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 또한 먹물처럼 퍼져나간 수많은 답 중 하나라고 생각하려 한다.

 

당분간은 한 강 작가의 소설은 휴식기를 가져야겠다. 침잠하는 우울과 바람 앞의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우리들의 삶, 고독, 연민, 괴로움, 덧없음의 감정을 소설 속의 문장 하나하나에 잘 담겨 있어서 그에 이입해서 읽다 보면 나의 감정과 기력이 소모되고 주인공과 함께 저 밑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잘 풀어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음 책은 가벼운 내용을 읽고 나서 접하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