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랍스터」 후기: 자연스럽게 좀 살자
REVIEW/MOVIE REVIEW 2023. 8. 27.
영화 「더 랍스터」 후기:
자연스럽게 좀 살자
오래전부터 영화 더 랍스터의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다. 깔끔한 디자인에 돋보이는 인물, 누군가를 끌어안은 포즈 속 공백의 존재감이 묘한 여운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안고 있는 사람을 드러내면서도 주인공만을 돋보이게 하는 포스터로 영화를 나타내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한동안 영화 감상을 미루고 미루다가, 최근에 지인이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마침 근 두 달 간 시청했던 지구오락실을 시즌 2 엔딩까지 다 보았던 때라,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더 랍스터를 시청하기로 했다.
-이하 스포일러-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이 영화가 완전히 진중하고 따스한 로맨스 영화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상상과 너무 달랐다. 나는 스포일러를 극도로 싫어해서 영화를 보기 전 영화를 소개하는 줄거리조차 보지 않는 편인데, 시청을 위해 왓챠 페이지에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제목 밑에 쓰인 줄거리를 봐버렸다. 오직 커플만이 허락된 세상, 혼자가 된 이들은 커플 메이킹 호텔에 보내진다. 그제서야 더 랍스터가 보통 생각하는 멜로 영화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한 줄만으로도 절절하게 느껴지는 디스토피아. 함께 영화를 즐겨 보는 친구는 멜로 영화를 잘 보지 않아서 이 영화를 혼자 보겠다고 결정한 거였는데 말이다. 그래! 물론 디스토피아스러운 세계관이지만 진중한 멜로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 많은 디스토피아 장르가 체제를 전복하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하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본지 몇십 분만에 나의 생각이 확실한 착각임을 알았다. 어쨌거나 엔딩까지 보고 난 감상은, 역시 혼자 보길 잘했다 싶더라.
엔딩까지 시청을 마치고 보니 제목 밑의 '코미디'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대체 누가 저런 태그를 붙였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가장 처음 문장만 읽어서 다행이었다. 줄거리 너무 스포일러 아니냐고?
오직 커플만이 허락된 세상
전체적으로 초록빛의 색조가 지배하는 영화. 주인공은 아내와 결별을 선고받은 후에 데리고 있는 반려견과 함께 커플 메이킹 호텔로 이동한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중에 하나만을 골라야 할 것, 반 치수가 없는 신발 등을 보며 주인공의 세상은 애매함과 중간이 없는 이상한 세상이라는 것이 확 다가왔다. 뭐 당연할 일이다. 커플만 인정받아 솔로는 호텔에 처박히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일 리는 없으니까(그 와중에 동성애자는 인정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인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호텔 측에서 주인공과 함께 온 개에 대해 물어볼 때 '형'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커플이 되지 못한 자의 말로 또한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혼자 지낸다고 뭐 그렇게까지? 인구절벽의 시대인 것인지. 요즘 주기적으로 대두되는 사회문제인 터라 참··· 100% 동떨어진 세상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 이후 45일이라는 기한 속에서 주인공의 삶은 철저하게 관리당한다. 첫날부터 수갑이 채워지고(그 다음부터는 수갑을 풀던데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벨트에 자물쇠를 달기도 한다(아마 스스로 성욕을 푸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주인공 데이비드를 제외한 많은 인물들의 이름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과 잠시 함께 지냈던 절름발이 남자와 혀짤배기 남자도 마찬가지. 비록 함께 어울려 사는 '커플'을 강제하지만 실제로는 나 자신을 제외한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루에 한번 메이드를 통해 강제적으로 성욕을 자극당하고, 동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호텔에서 지낼 수 있는 일수를 늘리기 위해 다른 인간을 사냥하고, '솔로보다 좋은 커플'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위적인 교육이 이어지는 호텔.심지어 혀짤배기 남자는 몰래 스스로 성욕을 처리했다는 이유로 손이 토스터기에 집어넣어지는 처벌을 받는다. 심지어 자신이 무능해서, 또는 커플이 되기 싫어서 솔로로 지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사별하여 홀로 남겨진 사람까지 이 호텔로 들어온다. 철저하디 철저한 디스토피아 세상, 모든 게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세상은 불쾌감만을 불러온다.
살아남아 도시로 돌아가기 위해 일부러 테이블에 얼굴을 박아 코피를 흘려 코피 흘리는 여자와 맺어진 절름발이 남자와 같이, 주인공은 비정한 여인의 환심을 사 도시로 돌아가기 위해 일부러 비정한 척을 한다. 여인은 주인공과 자신의 공통점이 진실이라고 속아넘어가 둘은 커플이 되지만, 여인이 주인공을 시험하기 위해 주인공의 형, 즉 개를 걷어차 죽여버림으로써 주인공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모습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표현이야 '비정하다' 정도였지만 실은 사이코패스 정도였던 것 같다. 감정을 참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며 여인은 그를 고발하려 하지만 주인공은 그녀로부터 도망치고 결국에는 여자를 동물로 만들어버리기에 이른다. 그녀가 어떤 동물이 되었는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데, 과연 어떤 동물이 되었을까? 남자가 여자에게 고통을 바랐던 것만큼, 무난한 동물은 아니었을 것 같다.
확고한 비혼주의자로서, '만약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면'의 생각을 하지 못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이기 때문에, 아마 연기를 해서라도 커플인 척을 하고 시험에 통과해 사회로 복귀하려고 하지 않을까? 분명 나 말고도 커플이 되고 싶지 않고, 죽거나 동물이 되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일종의 거래를 해서라도 커플 행세를 하고(가장 중요한 점: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최대한 참아서 애가 생기지 말아야 함), 도시로 돌아가서도 위장 결혼만 하고 지내지 않을까······. 절대 호텔에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 홀로 숲속에서 살아남을 자신도 없고, 잡히게 된다면 어떤 처벌을 받을지 너무 무서워서. 주인공과는 다르게 말이다.
오직 혼자만이 허락된 세상
물론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호텔에서 지냈다가는 탄로나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 그는 어쩔 수 없이 호텔에서 도망친 것에 가까웠다. 홀로 약조차 제대로 바르지 못하고 쓰러져 있던 주인공을 발견한 사람은, 혼자만이 허락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멤버였다.
호텔과 다르게, 숲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커플이 되지 않고 홀로 살아간다. 처음에는 체제에 맞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솔로'를 추구하는 과정은 커플 메이킹 호텔과 다를 게 없었다.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 처벌이라니! 물론 나야 이성에 대한 관심이 0에 수렴하는 사람으로서 다행히도 커플 메이킹 호텔보다는 이 공동체가 나에게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100% 통제가 되나? 키스를 했단 이유로 입술을 잘린 남자를 보면서, 흑백논리와 이분법적인 사고는 이들 또한 여전하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통념에 사로잡혀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하지말라는 건 다 하고 사는 주인공은 이곳에서도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는 행동도 대범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커플'로 위장을 해서 사회에 나왔다 하더라도 리더의 앞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키스를 해대면 어느 누가 눈치를 못 채겠는가? 열렬한 사랑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결정적으로 여자가 적은 노트를 발견한 리더는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여자의 눈을 멀게 만든다. 그녀는 왜 그가 아닌 나의 눈을 멀게 했냐며 통곡한다. 이 장면을 두고 사실 여자 또한 데이비드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이란 다양한 형태가 있기 마련이고, 누군가는 자신보다 사랑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지는 않으니까. 홀로 살아가는 이들이 호텔을 기습했을 때도, 관리인의 애인마저도 목숨을 위해 관리인을 쏘려고 하지 않았는가? 여튼간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여자는 리더를 찌르려고 하지만, 리더는 자신의 앞에 다른 이를 내세워 죽게 만들고, 그가 죽어갈 때 일부러 '죽어가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여자를 속인다. 눈 먼 여자가 리더가 죽었음을 확신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온다. 눈 먼 여자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데이비드와 도시로 도망치기로 약속했던 여자는 그 이후 데이비드에게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음을 털어놓는다. 데이비드와 여자를 연결하던 '근시'라는 공통점의 연결고리가 사라져버린 것. 데이비드는 여자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예전처럼 똑같이 대해주지는 않는다. 피아노를 칠 줄 아는지 따위를 물어보면서 끝없이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려 하는데, 과연 사랑에 공통점이 그렇게 중요한가 싶어진다.
하지만 결국 데이비드는 여자를 데리고 도시로 도망친다. 이때까지도 나는 둘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해피엔딩으로 살아가는 마지막을 보고 싶었다. 가상의 이야기 속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니까.
하지만 도시까지 잘 도망쳐놓고 여자는 '공통점'을 위해 주인공에게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할 것을 요구한다. 나 스스로 열심히 포장해왔던 그녀의 사랑이 이기심으로 점철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이프를 챙긴 주인공은 화장실로 향해 자신의 눈에 칼날을 겨누고, 그 다음 오랜 시간동안 주인공을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다.
100년 이상을 사는 랍스터
···하. 나는 열린 결말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스토리를 썼으면 끝까지 마무리를 하라고! 관객에게 모든 걸 맡겨두지 말란 말이야! 가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물론 문학 시간에 열린 결말의 장점: 풍부한 상상력이 가능하고 여운을 남기며 ···이런거야 배웠다지만, 끝이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란 나에게 찝찝함과 불쾌감을 준다. 아니, 영화 잘 보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너네 정말 이렇게 끝낼거야? 그래서, 찔렀어? 도망쳤어?
원래는 내 순수한 감상 100%로 감상을 쓰기 위해 찾아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무 답답해서 검색을 시작했다. 다행히라고 해야 할지, 영화의 결말 해석은 대체로 한 방향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바로 주인공이 여자를 버리고 가는 엔딩이라는 추측.
영화의 초반부, 주인공이 호텔에 들어갈 때 직원이 주인공에게 '45일이 지나도 커플이 되지 못했을 경우 어떤 동물이 되고 싶나' 라고 물어본다. 보통은 개와 같은 생물들을 말하는 것에 비해, 주인공은 랍스터가 되기를 원한다. 100년도 넘는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 장면이 나왔을 당시, 나는 그저 '아, 그래서 영화 이름이 랍스터구나.' 정도의 단순한 생각만 했다. 결국 짝을 찾지 못한 주인공이 마지막에는 랍스터로 변할까? 그 정도의 상상에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열린 결말의 엔딩을 마주하고 사람들의 평을 찾아보니, 저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랍스터'가 아니라, 주인공이 아주 오랜 세월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염원했다는 점. 즉, 주인공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욕구가 누구보다도 강했다는 것이다.
음. 그럴 수 있겠어. 호텔에서도 밖으로 나가려고 비정한 척을 하고, 여자를 동물로 만들어버리고 난 이후에 도망치지 않았나. 그리고 처음 아내에게 버려질 때 그 녀석은 렌즈를 꼈냐는 둥 공통점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 사랑하던 이가 눈이 멀어버리고 나서 달라지던 태도, 공통점을 찾아내려 애쓰다가 결국은 발견해내지 못하는 장면 등··· 주인공이 여자를 위해 스스로의 눈을 멀게 만들 것 같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눈도 안 보이는 여자를 데리고 도시까지 갔는데 사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혼자 다니면 의심을 받는 세상이니 여자를 '이용했다'라고 보는 게 타당해보였다. 비록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눈이 안 보이는 여자를 속이기란 얼마나 쉬울지. 당장 엔딩때 그녀에게 돌아가지만 않아도 그녀는 철저하게 버려지는 것이다. 그러게 왜 눈을 찌르라고 한 거야! 대체 공통점이 없으면 어디가 덧나나?
그나마 열린 결말이어도 어느정도 엔딩을 유추할 수 있는 정도라서 마음이 진정되었다. 어쨌거나 내가 생각했던, 마음이 따스해지는 멜로 영화랑은 거리가 먼 영화였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하여간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왜 이렇게 남의 삶에 간섭을 하는 걸까? 물론 나도 비혼주의자고, 결혼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까지 간섭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진정한 사랑이 다 뭐냐. 사람이 살다보면 상대보다 내가 더 중요할 수도 있고, 홀로 살아가고 싶을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왜 삶에 '정답'을 규정해두고 나머지는 다 이단 취급을 하냔 말이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우리 나라가 참 많이도 생각난다.
THE LOBSTER
영화를 다 본 지금, 영화 포스터에 대한 이미지를 다시 생각해본다. 처음 나에게는 단순히 멜로 영화 포스터로만 보였던 포스터.
상대방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보고 있지 않는 시선. 상대방의 존재가 필요하면서도, 마치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상관이 없다는 듯한 공백. 보는 이로 하여금, 그저 '커플'로만 보이게 하는 이미지. 오로지 인식할 수 있는 '주인공', 즉 '나 자신'.
결국 이 단순한 포스터는 영화 전체의 주제의식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 포스터는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 TOP 3에 들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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