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영화 「바비」 후기: 극장 안은 하나의 바비랜드

영화 「바비」 후기: 극장 안은 하나의 바비랜드

REVIEW/MOVIE REVIEW 2023. 8. 2.

 

영화 「바비」 후기: 극장 안은 하나의 바비랜드

 

바비를 보았다. 실은 처음부터 관심이 많지는 않았는데 SNS에서 언급이 많이 되고 있었고, 대충 이 영화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미리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나의 취향이 아니게 되더라도 '후원'의 의미로 보러 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OTT를 애용하게 된 이후 화면이 커야 보기 좋은 액션, 스릴러 영화 등만 영화관에서 보던 나는 이런··· 액션이라고는 하나 없는 드라마는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보게 되었다.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바비랜드'에서 살아가던 '바비'가 현실 세계와 이어진 포털의 균열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켄'과 예기치 못한 여정을 떠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스포일러 주의

 

바비랜드

 

이상적인 바비의 역사로 시작하는 이야기

시작은 아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보여준다. 아이 인형의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다림질하고, 밥을 먹이고··· 10살도 되지 않은 나이부터 마치 '어머니'의 역할을 연습하는 것만 같은 장면들. 지금까지만 하더라도 아이 인형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는데, 이것이 생각 외로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당시의 통념을 깨고 나온 인형이 바로 '어른 인형' 바비.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바비는 어떤 모습을 가질 수 있다. 바비는 현실 세계에서 바비를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여자들은 바비 덕분에 행복해졌다······ 라는 게 바비랜드에서 사는 바비들의 생각. 정말 이상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나만 해도 '바비 인형'의 이미지는 잘록한 몸매에 하이힐만 신을 수 있는 까치발 등이 자리 잡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덕분에 마법 같은 바비랜드에서 살아가는 바비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대통령도 바비, 의사도 바비, 작가도 바비, 건설 노동자도 바비. 많은 분야에서 바비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띠며 일하고 매일 밤 바비들을 위한 파티를 즐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로 현실 세계의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바비들에게는 정말 이상적인 세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켄은 어떤가? 바비랜드 속의 켄은 수상 안전 요원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직업이 없어 보인다. 라이언 고슬링이 맡은 켄 또한 그저 '해변의 켄'. 하는 일이라고는 해변에 서 있기. 그리고 그들은 바비가 자신을 바라봐줘야만 가치를 지닌다. 어디에도 켄의 자리는 없었다. 바비를 좋아하는 켄이 바비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해도, 바비는 '매일 밤 바비를 위한 파티가 열린다'라며 한사코 거절한다. 영화 포스터에 적혀 있는 내용 그대로다.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켄은 그냥 켄.'

 

 

그러나 현실은?

갑작스럽게 생긴 셀룰라이트와 평발이 되어버린 까치발. 느닷없이 찾아온 이상 현상에 바비는 자신을 가지고 노는 현실 세계의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켄과 함께 현실 세계로 넘어온다. 캘리포니아의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추파와 성적인 농담들, 위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시선들. 반면 바비와 함께 넘어온 켄은 그러한 시선을 느끼지 못한다. 돈에 인쇄된 남성 위인들의 얼굴들, 세계 경제를 이끄는 남자들······. 바비가 살아오던 바비랜드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켄은 '남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현실 세계에서 '가부장제'를 배워 '여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바비랜드에 이를 전파하고, 짧은 시간 내에 바비와 켄의 상황이 역전된다. 바비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던 현실의 인간인 글로리아를 만나 바비랜드에 돌아갔을 때는 이미 많은 것들이 바뀐 후였다. 바비 하우스는 켄들의 소유가 되었고 바비들은 가부장제에 세뇌당해 켄들의 시중을 든다. 마사지를 해주고 술을 나르고···

 

완전히 상황이 역전되어 있을 때 바비는 포기하려 하지만, 글로리아는 여자로서의 솔직한 심정, 욕구 등을 표현하며 바비들의 세뇌를 깬다. 결국 켄들이 헌법을 고치기 전에 이를 막아낸 바비들은 바비랜드를 복구시킨다. 

 

 

상영관은 하나의 바비랜드

이렇게만 이해한다면, 영화 바비는 그저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켄은 그냥 켄.'의 메시지만을 전달할 뿐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전형적인' 바비는 매일같이 열리는 바비만의 파티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켄에게 사과하고, 켄에게도 '바비가 있어야 존재 의의가 있는 켄'이 아닌, '켄 그 자체'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물론 바비도 마찬가지다. 바비 또한 켄이 없어도 '바비' 그 자체이기에. 

 

그런 점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 내 귀에 들린 어떤 여자의 말.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잖아."라는 말은 상당히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이 말만을 듣고 더는 듣기 싫어서 나는 귀를 닫아버렸는데, 내 친구가 들은 말로는 이랬다고 한다: "까놓고 말해서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잖아? 그런 우월주의를 하는 애들이라도 네가 남자친구를 사귀면 달라질 거라는 소리를 감독이 전하려고 하는 거 아닐까."

 

페미니즘은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운동이 아니다. 과연 바비가, 여자들은 우월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영화였을까? 영화의 포스터에 저런 문구가 적혀 있어서? 바비랜드 속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켄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니까? 아니, 바비랜드 또한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는 세계다. 나는 이 <바비랜드>가, 현실을 정반대로 뒤집은 세계로 보였다. 바비랜드 속 켄들이 정말로 무능했을까? 그들은 그저 세상에 만연한 고정관념과 아무도 모르게 주입된 생각으로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마치 현실 세계의 여자들처럼 말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남자들. 많은 대통령이 남자, 의사도 남자, 상을 받는 사람도 남자. 그러면서 세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에게 전문적인 이유가 아닌 '퇴근 시간이 빠르니 아이를 돌보기 좋다'는 이유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추천했고(결국 이 또한 남자들이 집안일에 신경을 덜 쓸 수 있으니까), 좋은 남자를 만나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도 만연했다. 언제나 바비가 바라봐주기만 바라야 하는 켄의 입장과 비슷하지 않은지?

 

마지막에 주인공 바비와 켄이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켄은 가부장제와 말 사이의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 흥미가 식었다고 말했다. 결국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성별 간의 권력 투쟁을 위해서 가부장제를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비들과 켄들의 싸움은 빠르게 해결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켄은 바비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법관 한 자리' 정도. 언젠가는 동등한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마저도 현실을 생각나게 한다. 구실을 맞추기 위해 한 명 정도 끼워둔 여자, 여성 할당제를 도입해도 19%에 그치는 국회의원 여성 비율. 2020년 주민등록인구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여성 비율이 50.1%라는데, 이들을 대표할 여성 국회의원은 전체의 19%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어쩌면 이런 것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마고 로비는 더는 바비랜드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바비가 이런 메시지를 주고자 해도 신념이란 쉽사리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남자친구를 사귀는' 이야기를 하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바비 포스터의 문구로 남녀 간 갈등이 생기고, 영화를 보고 왔으면서 어떻게 남성인 켄을 덕질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이다. 실제로 바비가 '여성 우월주의'를 표방하고 있지 않음에도 내용을 끝까지 보지도 않는 사람들의 무수한 별점 테러가 자행되지 않았던가? (물론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내용을 보지 않고 무조건 5점을 주는 경우.)  바비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는 영화 스크린의 밖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발언과 행동이 과연 특정 성별에 일방적인 권력을 실어주기 위함인지, 또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신장시키고자 하는 노력인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참 좋을 텐데, 이런 영화를 보고 나서도, 혹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잘못된 신념에 매몰되어 서로를 헐뜯는 모습은 마치 바비랜드의 바비들과 켄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모쪼록 나는 그 둘이 아니라 현실로 나올 수 있었던 '평범한 바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갈등으로 세상이 '향상'되진 않을 거야.

노동자가 기업가를 때려죽이든, 혹은 러시아나 독일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든 바뀌는 것은 소유주일 뿐이지.

그렇더라도 그것이 헛된 일은 아닐 거야.
현재의 이상이 가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석기시대의 신들을 깨끗이 쓸어버릴 테니까.

                                                                                                                                                -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