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후기: 우리 모두가 품은 이상과 희망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후기: 우리 모두가 품은 이상과 희망

REVIEW/BOOK REVIEW 2025. 5. 1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후기: 
우리 모두가 품은 이상과 희망

 

독서모임 6회 차의 책은 「백 년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였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남미 문학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독서 모임을 시작하고 나서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남미 문학이다. 책을 빌려보니 약 150p정도로 얇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책의 본 내용은 8~90페이지 정도로 나머지는 다 해설이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 그만큼 옮긴이가 할 말이 많았던 걸까? 어쨌거나 길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치고는 그 주간에 황금연휴도 있고 할 일도 많아 빠르게 읽지는 못해서 당일에서야 다 읽었다. 소설의 내용 자체가 '기다림'인지라 흥미로운 사건들이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녀서 더뎌지기도 했고.

 

물론 그 전의 책들도 이따금 독서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 교류를 하며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을 때 새롭고 놀라기도 했지만, 유독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독서 능력을 의심하게 되었다. 단순하더라도 상징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걸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한 느낌이랄까?

 

대령은 파라과이의 참전용사로 정부로부터 지급받기로 한 연금을 매일같이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린 지가 이미 수십 년. 정부가 연급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기까지도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대령이 노년이 된 지금에 들어서는 연금에 가까운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하지만 대령은 기다린다. 오죽하면 우체부가 그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도착하는 유일한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이라고 할 정도다. 

 

천식을 앓는 아내. 그리고 수탉 한 마리가 대령이 함께 하는 가족이다. 그 수탉마저 아들 아구스틴이 정치 싸움에 휘말려 죽게 되면서 남긴 유일한 존재로, 대령은 수탉이 투계에서 이기는 날을 꿈꾸며 부부가 먹을 식량 대신 수탉에게 옥수수를 먹인다. 소설의 시작부터 캔에 얼마 남지 않은 커피 가루를 긁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할 정도로 가난한 대령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당연하게도 그는 연금을 기다리기만 하니까. 연금을 주기 시작한다는 편지 하나만을 기다리며 그의 삶은 점차 가난해져간다. 그나마 그가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 무료로 아내의 병을 봐주는 의사와 돈을 모아 수탉의 먹이를 대신 주기로 한 마을 아이들 덕도 있다. 

 

남미 문학의 특징일까? 앞서 읽은 빼드로 빠라모에서도 느꼈지만, 이 책 또한 남미의 실패한 혁명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 대신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그 밑바탕에 혁명의 배경이 잔잔하게 깔려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을 숨기지 않은 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부드럽게 보여준다. 깔끔하게 축출되지 않은 사바스가 여전히 마을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라거나, 마을의 자연사가 오랜만이라는 대목 등등에서 말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점은, 소설에 나오는 배경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상당히 흡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검열된 신문, 계엄과 통행금지 등등에서 말이다. 사실상 대령이 하염없이 연금을 기다리고 있는 행위조차 우리나라에 있었던 사건들을 떠올리게 했다. 생존자가 얼마 남지 않은 위안부 문제부터 시작하여 추모 공원을 만들겠다고 하였지만 기약 없이 미뤄지는 중인 골령골 사건처럼. 마치 '당사자가 늙어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라고 생각하듯 모두가 문제를 미루고, 당사자와 가족들이 고통받았다. 만약 이 책도 쓰이지 않았더라면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 또한 중남미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를 알리는 데에 있어서 문학이 갖는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납작한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책을 완독하고 나서는 대령의 순수성이 미련함으로 느껴졌다.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 또한 대령이 연금을 실제로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기다리면서 함께 사는 아내까지 고통 속에 몰아넣지 않았던가. 강사님은 이 부부가 사이가 좋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그 시대 사람이라면 이혼 따위도 쉽지 않았을 테고, 한 번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대령은 아무런 일도 안 하고. 아내만 낡은 옷을 기워 새 옷을 만들고. 물건을 팔라 말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물론 대령이 연금을 못 받게 된 게 대령 잘못은 아니지만, 가망이 없어 보이면 연금을 받을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 삶에 대한 대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당장으로서는 대령은 아무것도 안 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만을 받은 채 살아가고 있지 않나. 막바지에 아내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먹고 살도록 배고픔을 참고 견디고 있어요."라고 말하듯이, 대령의 존엄과 자존심을 위해 아내가 희생당하고 함께 굶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질 못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독서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은 달라지게 되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여전히 전자의 생각이 유효하기는 하다. 하지만 책에서 각각의 요소들이 나타내는 상징을 생각한다면 대령이 아주 미련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연금이 이상이나 구조 변화를 뜻하며, 현실적 어려움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면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렇다. 언젠가는 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고 꿈꾸고 있으니까. 그것이 대령에게는 '연금'으로 구체화되었을 뿐, 우리 누구나 무언가의 이상을 품고 더 나은 세상을 기다리고 있지 않나. 

 

단순히 '왜 바보같이 기다리나'에서 끝나지 않고, 수탉으로 대변되는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과 대령의 자부심, 연금이라는 짤막한 단어에 숨어 있는, 대령의 존재 증명과 희망을 책을 읽는 실시간으로 읽어낼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싶다. 단순히 소설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를 두고 '가정에 무지한 일밖에 모르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그가 아픈 아내를 두고 일을 나가야 했던 시대적인 흐름을 읽어내야 하겠지.

 

이렇듯이 나의 사고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 모임이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 독서 모임에 나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사바스와 아구스틴을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령'이라거나 '아내'라거나, 단순한 명사로 표현된 주인공들은 결국 우리와 같은 시민들을 표현하는 것 같다는 독서모임 일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 책을 읽고 강사님이 '인간은 희망과 존엄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참 어렵고 복잡한 주제인데, 희망과 존엄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으면서도, 오히려 먹을 것이 없고 배를 곪은 순간에는 희망과 존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인 것 같다.

 

 

모쪼록 이 세상에 대령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 받고 존엄있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나 또한 기약없는 연금을 기다리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