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후기: 짧은 구절에 배어있는 삶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후기: 짧은 구절에 배어있는 삶

REVIEW/BOOK REVIEW 2025. 4. 19.

 

 

안규철 「사물의 뒷모습」 후기: 짧은 구절에 배어있는 삶

 

독서 모임 3주 차 선정 책, 사물의 뒷모습. 책의 두께가 아주 얇은 편은 아니지만, 그림이 많고 한 페이지에 적힌 활자는 적은 덕에 금방금방 읽어 내려간 책이다. 책은 조각가인 안규철 씨가 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물이나 언어, 또는 예술가에 대해 적어 내려간 글이다. 

 

예술가가 반듯한 선 하나를 쉽게 긋는 걸 본격적인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쉽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러한 흔들림 없는 간단한 선을 반듯하게 긋기란 쉽지 않다. 쉽게 그어진 선일지라도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과 연습이 담겨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읽기에는 정말 쉽게 읽히고, '어,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가벼운 생각과 함께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사물의 특별한 속성을 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훈련을 하고 매일 매시 내 주변에 펼쳐진 사물을 면밀히 관찰하고 살펴보는 시간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강사님이 이 책을 읽고 각자 글을 써보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부담이 심했다. 내가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겉으로는 술술 읽히고 짧은 글일지라도 오히려 이런 글이 쓰기 어려운데 말이다. 심지어 작가는 이걸 연재 형식으로 썼다는데 마감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에 계속 시달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물의 다채로운 이면을 볼 수 있다면 삶이 풍부하겠지만 그만큼 복잡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령 내가 지금 내 책상에 놓인 펜을 보면 그냥 펜이라고만 인식하는데 작가는 더 나아가 펜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뒷면을 관찰할 테니. 어쩌면 스크린에 담겨 있는 심오한 의미를 유추하고 분석하며 영화를 감상할 때보다 그냥 '아, 재미있었다!' 하며 극장을 나서는 편이 행복할지도. 뭐, 이건 나의 경우고 전자가 좋은 사람들은 나름의 만족을 누리고 있겠지. 

 

원래 후기를 길게 쓰는 편이지만 이 책은 길게 쓸 내용이 없다. 수록된 글들이 매우 짧은데, 내가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이곳에 적는다면 왠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편린들을 주워읽어 책을 사거나 빌리지도 않고 모든 내용을 다 읽는 사람이 생길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 그리고 그에 따른 내 생각은 따로 독서일기에 적어두어야겠다. 내가 이곳에 적을 수 있는 내용은 그저 내 생각만큼 많은 구절이 나에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꽤 있었다는 점이다. 이 책으로 나와 같은 세상에 사는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고개 숙여 들여다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