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한 강 「소년이 온다」 후기: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한 강 「소년이 온다」 후기: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REVIEW/BOOK REVIEW 2024. 12. 13.

 

한 강 「소년이 온다」 후기: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영화 박하사탕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한 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로 도서관에 수많은 예약 대기가 걸렸고, 오랜 기다림 끝에 내가 이 책을 받은 날은 2024년 12월 3일이었다. 마침 소년이 온다를 한창 읽고 있던 친구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루를 보냈다. 언제쯤 끝나려나 싶은 PT를 받으러 가서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 후 강의를 들으며, 운동하고 나서까지도 자기 계발을 하고자 하는 나의 노력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오후 10시 30분이 조금 지났을 때 비상계엄 소식이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가짜뉴스인가 싶어 검색 엔진에 새로 검색을 해볼 정도로 나에게는 너무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역사 시간에 대한민국의 뼈아픈 근현대사 수업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기에 '계엄령 속에서의 삶'은 내게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일이, 어찌 보면 내 삶과는 멀었던, 폭력과 비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감히, 피해자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데도 단지 '야당 견제'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낼 수가 있나. 그것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어찌 이리 쉽게 전 국민을 불안에 빠뜨릴 수 있나. 그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늦은 밤에 저 먼 거리에서 국회로 향해 계엄군의 차를 아무런 무기 없이 막아 세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군인이 메고 있는 총기를 보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저 반도 끝에서 급히 기차를 예매해 올라온 이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광주에서 1980년의 5월 18일을 보낸 사람들도 있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난 지금, 그 지독했던 참상을 겪고 나서도 역사의 되풀이를 막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국회 앞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소식이 들리자마자 문을 닫고 호외를 준비했던 광주의 신문사들과, 몸을 숨겨달라고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던 나이 지긋한 시민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오래된 상처를 생각해 본다.

 

아니, 오래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44년이다. 당시에 열다섯의 나이였다면 60세도 되지 않았을 나이였다. 그들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을 매일같이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이 대한민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내게 가깝게 다가온 「광주」 속에서, 나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며칠 전 한 강 작가가 강연에서 인용한, 한 야학 선생의 일기에 쓰여 있던 문장이라 한다. 불의와 억압에 맞서 저항하고 연대하는 힘은 그 사람이 대단하고 영웅적인 인물이기 때문이기에 나오는 것일까? 동호와 선주, 진수, 그리고 우리가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할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와 비슷한 시절을 보냈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어른이 된 선주는 생각한다.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의 얼굴도, 이름도, 목소리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그 부분을 보며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시간이 오래오래 흘러 풍화되어 버린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행동만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함께 한다.

 

사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설에 드러난 참혹한 현실에 크나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전에 읽은 「채식주의자」와 「바람이 분다, 가라」와 같이 당시의 참상이 잔잔하고 서정적으로 담겨 있어 '생각보다는' 담담히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던 부분도 있었으나, 동시에 책이 나를 위로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마침 책을 읽기 전 한강 작가의 강연을 들어, 작가가 이 책을 써 내려가며 수없이 되풀이했을 질문들을 나 또한 속으로 되뇌며 읽었다. 죽은 자는 산 자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 산 자는 죽은 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광주라는 공간에서 드러난 극단적인 사랑과 잔혹함의 행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약 나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그 대답은 나도 아직 모르겠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득한 용기와 그에 대치된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함 사이에서 나는 당당히 침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나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양심이 있어 2024년의 시위에 참가했다.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 끼어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칠 때 나의 일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야만적이었던 상황 앞에서도 과연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내가 그렇게 양심적일 수 있을지가 두렵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차라리 양심이 있을 거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있을 것이지, 왜 양심도 없는 사람이 만들어져서 세상을 이렇게 힘들게 할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왜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에 달려 나갔던 어린 동호가 친구에게 등을 돌렸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나. 철저하게 인간성을 말살하고자 했던 독재정권 대신, 왜 같은 식판에 담긴 적은 양의 밥을 먹고 싶어 언성을 높였던 사람들이 살고자 하는 본성으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까? 빛나는 앞길을 포기하고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 왜 폭력에 시달리고 좌절의 인생을 영위해야 했을까. 소년이 한 행동은 죄를 지을 만한 행동도 아니었다. 시체를 닦아주고, 유가족이 찾을 수 있도록 그 특징을 기록하고, 머리맡에 향을 피웠다는 대가로, 양심을 가졌다는 대가로 인해 항복의 의사를 비쳤음에도 아무런 자비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때의 아픔을 가진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씻기지 않는 상처를 안고 침잠하거나 아득바득 살아가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학살을 자행했던 사람들도 광주와 함께 나이를 먹고 지금까지도 잘 살아가리라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광주 민주화 혁명이 폭동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설마 당신이 그 계엄군이라서 이렇게 부정하는 것이냐'라고 따지고 싶었다. 이래서 영화 박하사탕을 볼 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쉬이 공감할 수 없었다. 네가 뭘 잘했다고. 사람들을 쏘기 싫어 하늘에 대고 총을 쏜 것도 아니면서. 이후에는 경찰이 되어 고문까지 했으면서. 마치 이 아픔이 한국인의 공통된 아픔이라고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아서, 가해자에게도 사정이 있었음에 강제로 이입시키는 것 같아 불쾌하기만 했다. 한쪽에는 버젓이 피해자가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기차에 뛰어들며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던 박하사탕의 주인공과,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선주의 모습이 교차로 떠오른다.

 

한 강 작가의 말처럼, 슬프게도 1980년 5월의 광주는 현재진행형으로 자꾸만 우리에게 돌아온다. 길게 이어지지 못했던 혁명은 용감하게 싸웠던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독재 정권과 계엄군이 느꼈어야 할 죄책감을 죄 없는 사람들이 깊이 느낀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어린아이를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식을 붙잡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복하면 살려줄 것이라 언질을 줬던 이유로··· 양심이 있다는 이유로 괴로워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이용하는 모나미 펜 하나로도 그들은 괴로운 과거를 떠올렸다. 나라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는데,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도 못했던 나라에서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애국가를 불렀던 이들에게······ 2024년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도 않고, 잘못된 방식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은 지금까지도 호의호식하며, 일면에서는 한 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시위까지 벌이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앞선 두 권의 책을 읽고, 야밤에 담담한 목소리로 낭독되는 강연을 듣고, 소년이 온다까지 읽고 나서야 처음 채식주의자만 접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던 한 강 작가의 세계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문학이라는 것의 힘을 느꼈다. 멀리 떨어진 시공간에 있을지라도 같은 문장을 읽으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공감할 수 있는 힘. 우리보다 먼저 앞서간 사람들을 뒤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힘. 책 한 권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광주가 겪은 비극과 숭고함을 알릴 수 있는 힘을 말이다.

 

죽은 자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해주었다. 회사에서 짬짬이 책을 읽을 때 일상적으로 들려오는 옆 동료의 심심한 업무 이야기마저도 그들이 있었기에 당연한 것이 되었음을, 아무런 걱정 없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평범함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음을. 사사로이 흘려보냈던 내 삶의 수많은 소소한 요소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유리처럼 투명해 잘 보이지 않지만 쉽게 깨어질 수 있는 일상을 말이다. 이런 시국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몰려 퇴진을 외칠 때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은 주말 하루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집에서의 안락한 휴식뿐인 이유도 수많은 사람들의 이러한 평범한 일상을 위해 사투를 벌인 용감한 이들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산 자들은 죽은 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들의 숭고한 용기에 범접할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들 덕에 내가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뜻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편안한 삶에 대해 그들에게 감사할 때, 어느 한편에서는 실제로 1980년의 그날이 재현될까봐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여전히 12월 3일 밤 군인들의 앞에 당당히 섰던, 그들과 함께 44년 전 민주화를 외쳤던 산 자들을 함께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먼저 앞서간 사람들에게 우리는 분명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악이 거침없이 나아가는 동안 선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증해야 한다고 한다. 그날 밤 무기를 들고 들이닥치는 계엄군들에게 총 한 발 쏘지 못하고 잡혀갔음에도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군사 독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기를 지나 정부를 개혁하기 위해 폭력 없이 불빛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무리 선이 악보다도 약해 보일지라도 역사적으로 선은 끊임없이 악의 전진을 막아왔고, 이로써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들의 투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름과 얼굴조차 모를 이들이 보여주었던 행동은 우리가 들어 올리는 불빛에 담겨 우리와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