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후기: 우리는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후기: 우리는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REVIEW/BOOK REVIEW 2025. 1. 12.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후기: 

우리는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제목을 읽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의문을 느꼈다. 대체 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까? 당장 표지에도 수많은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이 흥미로운 제목 하나로 나는 책에 호기심을 가졌다. 어떤 내용인지 조금도 알지 못한 채, 막연히 소설일 것이라는 잘못된 추측만 안고.

 

윌라 오디오북에서 낭독자의 낭독이 나와 맞지 않아 하차한 이후 2025년 1월의 첫 책으로 이 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 책이 지은이 룰루 밀러의 수필에 가까운 내용이라는 것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꼬박꼬박 보이는 각주의 출처를 보고 나서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을 검색해 보고 나서야 이 책이 가상의 소설이 아님을 뒤늦게 알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어류학자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던 저자가 그의 궤적을 따라가며 느낀 교훈을 적은 글이다. 저자의 일생과 데이비드의 삶, 그리고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던 '어류'라는 분류가 하나의 주제로 흘러들어 가며 저자가 깨달은 바를 이야기한다. 최근 생각지도 못한 시국에 직면해 수많은 의제들이 수면으로 떠밀려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나에게는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감명 깊게 와닿았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바로 요즘 세상에서 사람들이 쉽게 고치지 못하는 문제, 나 또한 늘 경계해야 할 문제 말이다. 

 

지구는 평평하다. 세상은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다. 사랑은 이성간에 피어오르는 감정이다. 성별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뉜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어류로 분류된다. 과학은 진실을 가리킨다.

 

어떠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심없이의심 없이 믿었을 문장들이다. 그리고 어떤 문장들은 지금 시대에도 사람들이 믿고 있는 문장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지구는 평평하지 않고,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인간은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 고귀함을 안다. 하지만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이러한 정보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세대들이 있었다. 만약 21세기에 삶을 영위하는 덕에 이 내용들의 진실을 알고 있는 우리가 과거 군중들의 의견 속으로 빠져든다면 과연 당신들의 말이 틀렸다고 쉽게 외칠 수 있을까? 나로 말하자면 제법 다른 사람들 절대다수 의견에 쉽게 동조되는 편이기에 당당히 내 신조를 지켰을 것이라 확신할 수가 없었다. 옆에서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말하고 모두가 같은 의견을 보인다면 과연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이란 존재란 늘 그래왔다. 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싶어 하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놓고 싶어 한다. 나와 다른 존재는 배척하고 내가 정상성의 범주에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공공의 적을 만들고 자신을 가장 우월한 위치에 두는 것이 생존에 유리해서일까? 연구에 따르면 자연을 분류하는 방법조차 타고난 메커니즘일 수 있다 하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습성을 나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물고기가 어류로 묶일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30년이 지나고 나서도 이 진실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모두가 어류로 알고 있는 현상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자신의 고정관념을 고치고 한 발 앞서 나아가기를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물고기가 어류든 말든 나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건 도태의 길로 빠지는 것뿐이지 않은가? 잘못 알고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요즘 나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고민이 아주 깊었다. 그나마 내가 성적 지향이 '정상성'의 범주에 속해 있지 않은 무성애자라서 그으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학교에서 성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분류로 배워왔고 사실 지금까지도 그런 사실에 큰 의문을 품지 않고 살아왔다. 물론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자신의 성별을 버리고 다른 성별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저 내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물고기가 어류든 아니든 상관없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살아왔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계엄 사태가 길어지며 시위에 참가할 때마다 자유발언 시간에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이 논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그리고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은 누군가라니. 그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을 내 마음에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사실 내 곁에 많지 않고 생소한 개념이긴 하니 말이다.

 

최근 들어 치닫는 마찰들을 가만 보고 있자면, 보통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에 적대적인 반응을 많이 보이는 이유도 오래된 인간의 습관과 결을 같이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정상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공공의 적을 만들어 생존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이를 인정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더더욱.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과학조차 나에게 잘못된 고정관념을 주입시킬 수 있다는 것. 틀린 정보를 진실로 믿고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극구 부정하며 나의 정당성을 찾아내려 하기보다는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어쩌면 내가 스스로 만든 한계 또한 한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얻으며 생각한 교훈이었다.

 

사실 책을 중반까지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읽어서 빨리 끝내고 싶다'라는 마음뿐이었다. 책의 내용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아-주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나의 기준에서는 그 정도가 과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 그가 별을 동경해 미들네임에 '스타'를 넣었다는 정보라거나 누구랑 결혼하고 어떤 자식을 예뻐하고까지의 내용을 그렇게나 상세히 알고 싶지는 않았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작가가 동경하는 듯한 그 남자는 내 눈에는 너무나도 '부족함 없이 자라난 중산층 백인의 전형'처럼 보이기만 해서인지 읽을수록 더욱 반감이 생기기만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은 여자와 결혼을 하고, 물고기를 수도 없이 잡아 분류를 한다는 명목으로 목숨을 앗아가고 어류의 분류가 신의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라고 일컫는 그 수많은 행태들. 그리고 마치 자신이 물고기를 잡아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이 의미를 가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 역겨울 정도로 과한 인간중심적인 서술을 보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가상의 스캔들을 만들어내고 자신을 후원해 주었던 여자를 독살하고 끝내는 우생학을 지지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비극의 인생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함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남들을 깎아내렸을 뿐인, 고정관념에 갇힌 잘못된 인간이었다. 이 일련의 서술들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나에게는 상당히 힘들고 지루했다. 그가 살았던 곳까지 묘사해 줄 정도니, 사실상 그가 저지르는 악행이 명백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좀 '어쩌라는 거지······.' 싶기는 했다. 뭐랄까 작가로서는 조던을 좋게 생각했던 것만큼 충격이 크고 그로 인해 커다란 교훈을 깨달았을 수 있지만, 이미 초반부터 뭔가 께름찍한 기분을 느꼈던 나는 '대체 그의 대애단한 인생 설명이 언제 끝나나' 싶기도 했달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조던의 쓸데없는 인생은 휙휙 넘겼던 것 같다.

 

후반부에 들어서야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땐 매우 놀라긴 했다. '질서'라는 단어가 1700년대에 와서야 자연에 적용되었다는 사실도 새롭기 그지없었다. 그로 인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평생의 업적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딱히 그에 대한 통쾌함이 전해진 건 아니다. 어차피 그는 생전에 누릴 건 다 누리고 아무런 책임 없이 평안하게 세상을 떴으니 말이다. 사실 이렇게 문제의 해결 같은 건 없었기에 왜 이렇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그렇게나 공들여 설명했나 싶기도 했다. 그런 우생학 추종자 같은 면을 보고도 여전히 그가 살아있었다면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하는 저자의 믿음도 그리 공감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말 좋았던지라 지금까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개념들도 다시 생각해 볼 만한 계기가 되어주기는 했다. 가령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 같은 것들 말이다(실제로 이 조문을 찾아보고 단어 그대로 우생학이라고 표기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왔던 것들이 사실은 잘못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 나도 모르게 부조리에 동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사회를 바라보는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인정할 줄 모르는 꼰대로 늙고 싶지는 않기에······.

 

이 사다리,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다.

 

이 사다리,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

 

 

하지만 이러한 망치가 있다 한들 여전히 견고한 사다리는 존재하기에 인류는 앞으로도 나아가야 할 길이 참 멀었다 싶어진다.

 

책을 덮고 이런저런 수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정말 머리가 아프다. 이렇게 말했지만 나도 참 뭐가 맞고 뭐가 틀렸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인식이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그러니까 이 세상에 어류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가 틀렸구나!'를 깨닫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한 가지 눈에 띄었던 점.

작중에서 저자는 절대 악마같이 생긴 먹장어의 생김새를 찾아보지 말라고 한다. 밀러 씨, 그것 또한 편견 아니겠어요? 대한민국에서는 먹장어도 아주 잘 먹는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