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연극 「빵야」 관람 후기 (2024. 8. 9. | 박정원, 전성민)

연극 「빵야」 관람 후기 (2024. 8. 9. | 박정원, 전성민)

REVIEW/PERFORMANCE·EXHIBITION REVIEW 2024. 8. 21.

 

연극 「빵야」 관람 후기 (2024. 8. 9. | 박정원, 전성민)

고마워, 내 이야기 들어줘서.

 

2024. 6. 18.~2024. 9. 8.

YES24아트원 1관

 

인생 첫 내돈내산 연극을 보러 갔다! 원래는 전혀 생각 없었던 공연이었는데 SNS에서 8월 9일 당일 하루 할인을 진행한다는 글을 발견한 결과였다. 이날 빵야 말고도 뮤지컬 유진과 유진까지 할인에 들어갔는데 유진과 유진 또한 내가 보고 싶었던 뮤지컬이라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더 저렴하게 볼 수 있는 빵야를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제목만 봐서는 개인적으로 좀 유치하게 느껴지는 제목이라 평소였다면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텐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불호 이야기도 있었지만 빵야 정도면 친구 연극 입문시켜줄 때 보여주기 좋다는 등, 대체로 호평이라 용기를 냈다. S석에 15,000원 정도면 할인받지 않은 영화 티켓보다도 몇천 원 싼 금액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경기 남부에서 대학로까지 왔다갔다 해야 하는 코스트도 무시할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연극은 한 번도 보지 않은 내가 찍먹해보기에는 상당히 좋은 기회였다.

 

이날 공연하는 캐스팅 정보 또한 미리 찾아보고 갔는데 극의 내용이 소총의 이야기를 다루는 내용이긴 하지만 사실상 대사가 많은 캐릭터는 소총 '빵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나나'이므로 빵야보다는 나나 배우를 골라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대체로 이진희 배우와 김국희 배우를 많이들 추천했는데, 나는 연극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뭔진 몰라도 전성민 배우로도 너무 잘 보고 왔다. '나나'라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전성민 배우의 이미지로 확 굳어져버렸다. 전성민 씨는 제 영원한 나나입니다.

 

 

YES24 아트원 1관 도착.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옹기종기 모여있는 연극덕들이 신기했다. 

 

이날의 캐스팅보드!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기에 후딱 사진을 찍고 빠르게 입장했다.

 

내 자리는 2층 중간열의 오른쪽 자리였다! 여전히 대극장보다 좋은 시야이긴 했지만(ㅋㅋ) 얼굴 표정이 아주 잘 보이는 편은 아니어도 배우들 얼굴 식별은 되는 정도였다. 맨처음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을 땐 무대가 휑하지 않게 엄청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틀 전 보고 온 사의 찬미보다도 훨씬 화려하게 꾸며진 느낌? 

 

극이 시작하고 나서는 S석의 이유(?)를 알아버리고 말았는데, 뮤지컬과 다르게 배우들이 자신의 실제 성량을 가지고 연기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안 것이다. 이 또한 신기했다. 대극장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넓은 공연장을 자신의 목소리로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성량으로 연기를 해야 한다니. 오로지 마이크를 쓰는 때는 BGM이 깔려서 목소리가 노래에 묻힐 수 있을 때였던 듯. 아무튼 R석보다 S석이 비교적 무대에서 거리가 있었고, 이 때문인지 간혹가다가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경우가 있어서 그럴 땐 연극에 엄청 귀를 기울여 집중해야 했다. 확실히 좋은 자리로 갔다면 잘 들렸겠지만 그래도 15,000원을 주고 보게 된 좋은 기회였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연극은 실패한 각본가 '나나'가 상을 받는 상상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상의 주인은 나나의 후배였고 나나는 후배의 축하 파티에 참석했을 뿐이다. 연극에는 주연인 나나와 빵야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배우들도 지속적으로 나오는 식이었는데, 조연들은 상황에 따라 역할을 여러 개 맡아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불이 꺼지는 순간에야 무대가 확확 바뀌는 대극장 뮤지컬과 달리 배우들이 변화하는 장소에 맡게 소품 등을 끌어오는 식으로 연출이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이런 연출 또한 뮤지컬과는 다른 맛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따로 음악을 부르는 구간이 없어서 지루하지는 않을까 했지만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연출과 CG를 사람들이 각자의 행동과 소품의 이용으로 표현하는 순간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따로 넘버 없이도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 실력으로 재미를 채워줬다.

 

빵야의 스토리는 사실 어떻게 보면 엄청 특별하고 반전이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가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인 소재들을 오래된 장총 하나를 의인화하여 잘 표현해냈다. 스토리가 엄청 훌륭하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장총의 주인이었던 각 등장인물들을 맡은 배우들이 등장인물의 특징을 잘 살려 연기해준 덕분에 더욱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후기 중에는 3시간의 긴 러닝타임이 너무 힘들고, 2막부터는 내용이 지루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건 느낄 새 없이 열심히 봤다. 신파가 섞여 있긴 해도 원체 눈물이 많은 성격인지라 슬퍼할 만한 기미가 보이는 내용에서는 무조건 눈물을 흘린 듯.

 

오랜 세월을 지낸 장총을 사람으로 의인화하고 그가 거쳐온 주인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기본적인 흐름 자체부터가 나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때문에 빵야는 장총과도 같은 모습을 연기로써 보여주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장총이 발사되는 모습을 표현한 순간이었다. "빵!" 하고 육성으로 외치며 마치 총알처럼 달려나간 배우가 희생자를 넘어뜨리는데, 그 단순한 표현이 제법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또한 총이 다루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된 과거의 역사들이라 자칫 고리타분해보일 수 있으나, 현 시점에서 총을 설명하며 유튜브 영상을 흉내내는 등 현대의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진 극이었다.

 

나는 빵야가 만난 주인들 중에서는 선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서현 배우가 연기한 선녀는 매우 강직한 캐릭터였는데 사실 스토리보다도 배우가 너무 북한군 연기를 잘 하셔서 더 강렬한 인상이 남은 것 같다. 가장 슬펐던 건 키우던 강아지가 일본군에게 끌려가고 만 주인이었고, 가장 안타까웠던 건 포탄 소리에 귀가 멀어버려 귀향하라는 노래조차 듣지 못하고 산속에서 자살을 하고 만 어린 주인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이 뭐랄까, 완전한 해피엔딩은 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어쩌면 매번 실패만 거듭하던 나나가 빵야를 통해 이런저런 한계가 많은 각본으로 자본주의 세상에서 대박을 터트리는 엔딩이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차라리 연극이라는 가상 세계에서라도 해피엔딩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ㅠㅠ 결국 마지막 연출은 악기가 되지 못한 장총의 헛되어버린 희망이 되었고, 나나 또한 극을 쓰기 전과 다를 바 없이 아무런 성공도 못 이룬 드라마 작가로 남고 말았으니까. 자본주의의 한계를 이겨내고 실제 드라마가 상영되어 빵야라는 장총이 그토록 그리던 악기가 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엔딩이 더 여운이 남기도 하는 거겠지.

 

이야기를 보는 내내 내용에 몰입해 열심히 본 건 사실이다. 정말 3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내용을 단순히 영화로 보았더라면 흠, 무난하군. 하고 말았을 것 같지만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배우의 연기, 그리고 시시각각 바뀌는 소품과 연출, CG따위는 사용되지 않고 모든 것들을 배우들의 손과 발로 해내는 순간들이 좋았던 것 같다. 

 

특히 조연중에서는 나나의 드라마 각본을 맡게 된 PD님의 연기가 아주 훌륭했는데, 술에 취한 모습을 너무 찐으로 잘 연기하셔서 더 재밌었던 듯. 극 전반에 들어가는 중간중간의 개그 모먼트들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내용을 진작 일찍 썼어야 했는데 너무 오래 묵혀놨다가 쓰다 보니 세세한 기억이 많이 남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당시에 재밌게 봤던 건 진심이었던 터라~ 쉬는 시간에 MD를 봐뒀다가 관람을 마치고 나올때 배지 플래그와 배지까지 사서 나왔다. 콘텐츠를 접하고 나서 MD를 사는 데 막힘이 없다면 그건 잘 관람하고 나온 게 맞는듯? 

 

뻘하게 내 옆에 앉았던 남자가 너무 피곤했는지 재미가 없는지 거의 오뚜기처럼 고개를 흔들면서 졸아서 1부 관람에 조금 방해되기는 했지만 비싼 가격을 주고 본 게 아니라 '저 사람도 오늘 피곤했나보지' 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참아줄 수 있었다. 만약 17만원짜리 프랑켄슈타인이었다면 분노했을 것.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슬픈 장면에서는 정말 숨죽여 눈물만 흘리다가 화면이 전환되면서 어두워지면 이곳저곳에서 코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서(나 포함) 재미있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관람을 존중해주는 문화일테니까. 

 

나에게 연극의 가능성도 열어준 빵야! 다음에도 빵야와 같은 좋은 연극이 나온다면 보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