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관람 후기
REVIEW/PERFORMANCE·EXHIBITION REVIEW 2024. 8. 9.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2024. 5. 1.~8. 4.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24. 8. 4.
SNS에서 너무 좋다고 유명세를 탄 자수전. 8월 3일에 고양이 전시를 보는 김에 1박 2일 내에 자수전까지 보기로 했다. 동선상 고양이 전시를 첫날에 보고 이튿날 자수전을 보기로 했는데, 하필 그 이튿날이 전시의 마지막 날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날 우리를 포함한 정말 정말 많은 인파의 사람들이 전시 막차를 타기 위해 덕수궁으로 모여들었다.
덕수궁 내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MMCA)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덕수궁의 표를 구매해서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성인 가격이 1,000원밖에 안 하니 금액은 전혀 부담스럽진 않지만 적어도 외국인들에게만큼이라도 이런 헐값이 아닌 고궁이 지닌 가치를 고려해 티켓값을 더 비싸게 책정하면 안 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년 11월 덕수궁을 방문했을 때에는 어두침침하고 삭막한 분위기였는데 날씨가 너무 쨍쨍해서 완전 달라 보일 정도였다. 정말 너무너무 덥긴 했지만 이럴 때만큼 날씨가 좋을 때도 없다.
석조전 옆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입구에서 석조전을 찍은 사진.
정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전시 막날이라서 사람이 진짜진짜진짜 너어무 많았다. 폭염경보까지 발령된 이 더운 날씨에 뙤약볕에서 우산 하나에 의지해 줄을 서고 있으니 입장 전부터 지칠 수밖에 없었다.
사전 예약도 있었다는데 우리는 예약의 존재조차 모르고 왔던 터라 정직하게 줄을 서야만 했다. 그나마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디진 않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을 야외에서 서 있기에도 너무 힘들 만한 날씨였다.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는 사물함도 있었지만 칸이 그리 많지 않아 짐을 이고 지고 전시 구경을 시작했다.
전시실은 총 네 개로,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수와 관련된 작품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내게 있어서 '자수'란 물론 미술 작품 중 하나가 맞지만 회화보다는 훨씬 더 실용성에 초점을 둔 분야였다. 전시관에 걸려 있을 만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당장 내가 손에 들 수 있는 가방이나 인형 따위에 수놓아진 것들이라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참된 여성성'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안방에 틀어박혀 조신하게 수를 놓는 여자라거나.
결국 이 또한 고정관념이겠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사회가 낮잡아보는 여자가 주로 하는 예술공예이기 때문인지 '자수 자체'에 대한 인식도 다른 분야보다 떨어지는 것 같고.
또한 많은 의복 제작이 공장화된 지금, 자수는 옛 시대 사람들이 생활을 위해 이용한 그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이미지도 있었다. 요즘은 수공예, 소량 제작이 많지 않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는 나에게 '자수'에 대한 고정관념의 한계를 깨트려준 의미 있는 전시였다. 자수라는 표현 방식이 실제 생활을 넘어서 조선시대의 고전 작품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예술 기조에 어우러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전시는 조선 시대 즈음의 작품들로부터 시작한다. 아무래도 한 땀 한 땀 직접 수놓아야 하는 과정이다 보니 신경을 쓴다 하더라도 원이 찌그러지거나 좌우가 비대칭인 경우들이 많았다. 오히려 이런 점이 천 위에 실을 수놓았던 사람들의 손때와 노력이 묻어나는 것 같아 작품성을 해친다기보다는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요소들로 느껴졌다. 작품을 보다 보면 이걸 다 손으로 수놓았단 말이야? 하는 경우들이 정말 정말 많았다. 특히 조선 시대 작품들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런 것보단 준이종정도 자수병풍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색상이 너무 예뻤던 자수병풍. 이런 저런 기물에 들어간 무늬까지 죄다 자수로 수놓고, 그 아래 글씨들도 당연히 자수로 적어 넣었다. 지금 찾아보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던 작품인 것 같은데 왜 내가 방문했을 땐 보지 못했을까?
어떤 작품은 공동 합작이라서 병풍 한 면마다 표현 실력이 다르다고 적혀 있길래 친구에게 "여러 명이 같이 만든 거래~" 라고 했더니, 지나가던 분이 자수 작품은 모두 다 같이 만드는 거라며 알려주셨다. 하긴 저 미친 노가다를 혼자 만들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지기는 한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당시에도 새와 거친 나무의 질감 표현 정도는 표현하고 있었지만, 처음 전시실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가니 이전보다 더 실력 좋은 작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부터는 자수의 근대화가 시작되어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여학생들에게 자수를 가르치게 된 시대를 다루고 있었는데, 특히 닭과 같은 새를 표현한 작품들은 가늘고 빛을 반사하는 비단실 같은 재료를 사용해 닭에게서 정말 윤기가 나는 것 같았다. 어떤 실을 사용하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수를 놓는가에 따라서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니 일반 회화보다도 훨씬 더 입체감이 돋보이기도 했다.
표현 방식도 생각이상으로 무궁무진했다. 물가를 표현하는데 쏟아지는 폭포와 흘러가는 개울을 전부 다 수놓는 게 아니라 비단실로 빛이 반짝이는 부분만 수놓고 나머지는 공백으로 둔다거나 하는 등등.
다만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임에도 대체로 공동제작한 작품들은 그저 'OO학교생 공동 제작'이라고만 표기된 게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냥 학교 수업 정도라고만 생각해서 그런지. 이름이라도 제대로 올려줘!!!
그 외에도 작게 만든 자수 과제들도 걸려 있었는데 다 너무 예뻤다.
아마 세 번째 전시실에 있었던 김혜경의 「정야」라는 작품. 이 전체를 자수로 수를 놓은 것도 대단하지만 각도에 따라 윤기가 차르르 움직이는 한복 치마는 마치 진짜 벽난로의 불빛에 반짝거리는 것만 같아서 신기했다. 이게 자수과 졸업작품이라고 한다.
3관부터 현대미술과 어우러진 자수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이 전시의 제목이 되어준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도 걸려 있었다. 새의 모습이 분명히 보이진 않지만 형태 상으로도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듯한 새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생생히 보이는 것 같았다.
사실적인 묘사뿐만이 아니라 추상적인 예술작품도 많았다. 회화와 자수를 함께 접목시켜 자수로 포인트를 준다거나 하는 작품들. 사실 내게 현대미술이란 많이 어려운 분야이기는 하지만 '고전적'이라고 느껴지는 자수도 언제든 현대적인 예술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 작품들이라 그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언뜻 보면 회화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자수도 함께 들어간 작품이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기도 했고 집에 와서 다시 볼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자수를 사진으로 찍으면 눈으로 느낄 수 있는 표현이 다 죽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찍어두고 싶었다.
네 번째 전시실에는 마지막 통로쪽에 자수로 수놓은 거대하고 화려한 일련의 불화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자수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표현 방식이 아닌가 싶다. 생활과 예술을 넘어서 종교까지 영향을 주었으니.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성인들 뒤에 표현된 후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이는 게 신기하다(아마 어느 한쪽이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그 외에도 자수 작품들에 서명을 새겨넣을 때마저도 붓이나 펜 따위로 적지 않고 붓글씨의 모양대로 자수를 놓아 서명을 새긴 것도 제법 멋들어진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자수로 시작해 자수로 끝난다······ 뭐 이런 것 같음.
아마 이 전시가 아니었으면 평생 자수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이 살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 날이라도 막차 타고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있을 때 보자!!
다만 너무 힘들었던 점이라면 사람이 정말정말 많았다는 것. 도떼기시장이라도 된 것처럼 어딜 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전시 관람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가뜩이나 자수라는 형식이 실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작품이다 보니 아무래도 자세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데 전시실 내부의 조도가 너무 낮기까지 했다. 눈이 좋은 나조차도 어떤 것들은 설명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에 더해 사람들의 수많은 사진 촬영. 사람 자체도 많은데 사진을 찍느라 줄까지 밀리니 정체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이날 핸드폰 카메라의 디지털 셔터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관람에 지장이 가는 것도 무릅쓰고 작품을 찍는다고 얼마나 많이 들여다보려나 싶기도 하고. 건어물 냄새가 나는 사람도 있었고······ 하. 제발 공공장소에 올 때는 씻고 와주세요.
이런 수많은 방해요소 때문에 관람에 어려움이 있었던 점이 아쉽기는 했다. 이런 점들은 다 사람 없을 때 왔으면 괜찮았을 부분들이겠지.
다음부터는 절대 전시 마지막 날에 방문하지 않고 여유를 두고 가기로!!
'REVIEW > PERFORMANCE·EXHIBITION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극 「빵야」 관람 후기 (2024. 8. 9. | 박정원, 전성민) (0) | 2024.08.21 |
---|---|
뮤지컬 「사의 찬미」 관람 후기 (2024. 8. 6. | 주민진, 이정화, 김찬종) (0) | 2024.08.20 |
전시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 관람 후기 (0) | 2024.08.08 |
뮤지컬 「드라큘라」 관람 후기 (2024. 2. 17. | 신성록, 아이비, 박은석, 임준혁, 최서연, 김도하) (0) | 2024.07.30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관람 후기 (2024. 7. 17. | 전동석, 박은태, 최지혜, 장은아) (0) | 2024.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