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뮤지컬 「홍련」 실황 관람 후기 (2024. 8. 13. | 홍나현, 이아름솔, 고상호, 임태현, 정백선)

뮤지컬 「홍련」 실황 관람 후기 (2024. 8. 13. | 홍나현, 이아름솔, 고상호, 임태현, 정백선)

REVIEW/PERFORMANCE·EXHIBITION REVIEW 2024. 9. 3.

 

뮤지컬 「홍련」 실황 관람 후기

 

2024. 8. 13.

홍나현, 이아름솔, 고상호, 임태현, 정백선

네이버 TV

 

이번이 첫공이라서인지 네이버 TV에서 홍련을 무료 중계를 해줘서 갑자기 보게 된 뮤지컬 홍련~ 기회는 올 때 무조건 봐야 하니 결코 놓칠 수 없었다. 홍련에 대해서는 아는 내용이 없었는데 심지어 장화홍련전도 나중에 장화와 홍련 귀신이 사또의 방에 들어가 복수를 해달라고 간청하는 내용만 기억하고 있어서 뮤지컬을 보면서도 아 원전이 이랬었나??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배우들은 이아름솔 배우만 이름을 들어보았고 다른 배우들은 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었다!

 

 

뮤지컬의 내용은 죽은 홍련의 재판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아름솔 배우가 맡은 역할이 염라대왕 같은 게 아니라 바리라는 사실이 조금 의아했었는데 이것도 다 이유가 있었음. 장화홍련전이라는 고전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홍련은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뮤지컬 하데스타운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뮤지컬의 내용을 설명해 나가는 인물, 강림은 헤르메스와 비슷한 역할이었고 무대의 배경인 저승 또한 마찬가지로 같다. 또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화의 내용을 재해석해 뮤지컬로 풀어낸다는 점 또한 겹쳐 보였다. 이 극을 만든 사람이 하데스타운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뮤지컬은 다른 뮤지컬보다 많은 것들이 후반부에 집중된 구성이었다. 물론 타 작품들도 기승전결 중 결로 향할수록 무게가 실리기는 하지만 홍련은 마지막의 피날레를 위해 앞의 내용을 보게 되는 내용이라고나 할까? 때문에 중간에 보다 말고 하차해 버린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감상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물론 집구석에서 보니 중도 탈주가 가능한 거고 극장에서는 다들 끝까지 보고 나오는 게 기본이지 싶지만 말이다. 

 

자신이 아버지와 동생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홍련은 처음부터 매우 불량하고 비뚤어진 자세로 등장하면서, 법정을 모독하고 마치 지옥에 떨어지고 싶기라도 한 원혼처럼 군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은 바리는 끝까지 홍련을 재판하며 그녀가 묻어둔 비극적인 기억들을 끄집어내 진실을 밝히고 원령의 길을 찾아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여 수십 만 번 되풀이되었던 재판임이 드러나고, 결국 홍련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에 성공한 바리는 그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게 되는 스토리. 바리 또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홍련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고, 마지막은 두 여성의 연대와 위로로 끝을 맺었다. 

 

마지막에 살을 풀어주는 바리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 내가 이 넘버를 들으려고 지금까지 이 스토리를 본 거구나' 싶을 정도로 이아름솔 씨의 가창 실력은 너무 훌륭했다. 아니, 단순히 뮤지컬 노래를 부르는 것에다가 심지어 예전 설화를 모티브로 한다고 판소리 창법? 같은 것까지 구사해야 하는 노래의 난이도가 너무 높게 느껴졌다. 그걸 또 소화하는 이아름솔 씨도 너무 대단했고. 거기에다가 같은 피해자로서 서로의 상처에 깊이 공감하고 위로하는 두 여성을 본다면 같은 여성 관람객으로서 감동을 받아버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장면을 보기까지의 여정이, 솔직히 말하자면 쉽지 않았다. 특히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화내는 장면을 잘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단순히 화내는 것보다도 소리를 질러대는 상황에 취약하다고 할까? 만약 남자가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는 장면이 이어졌다면 진작 하차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여자였기에 망정이지. 비슷한 예로 예전에 12인의 성난 사람들 연극을 볼 때도 이런 부분이 상당히 힘들었고 이런 문제로 한국 누아르 장르도 잘 안 보는 편인데 결국 이 문제가 홍련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했다. 너무 악을 쓰는 순간이 많아서 연기가 좀 덜 과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살풀이 때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긴 했다.

 

또한 뮤지컬 홍련은 내용을 현대적으로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부분들에 현대적인 요소들을 많이 넣으려는 노력이 보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부분들이 현대적이고 세련됐다는 느낌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 애써 퓨전을 추구하려는 노력 정도로 여겨졌다.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지금 이 후기를 쓰는 시점이 뮤지컬 해밀턴을 보고 난 이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처음부터 홍련이 한복과 함께 신고 나오는 컨버스화는 세련됐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컨버스화를 신었을 뿐이라는 감상이 강했다. 물론 나도 민속촌에 다녀오면서 한복을 입을 때 운동화를 신었지만, 무대 장치와 연출로서의 컨버스화는··· 서양 신발 하나 신었다고 그게 현대적인 재해석은 아니지 않나?!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오히려 뭔가 촌스럽게 느껴지는 요소였다.

 

사실 컨버스화는 그냥 그런가 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말 수 있었지만 강림과 차사들이 부르는 랩이 더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요소였다. 내가 랩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긴 하나 뮤지컬에 랩이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랩이 좋은 넘버로 느껴지지도 않고 억지로 영어를 밀어 넣으니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구간으로 작용했다. 오히려 발음을 알아들으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다른 템포가 느린 음악 장르보다는 빠르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랩이 압축적으로 내용을 요약할 수 있어 용이하긴 하겠지만··· 더는 안 좋은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

 

하지만 이런 내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들에 대한 불호를 씻겨낼 수 있을 만큼 마지막 바리의 씻김굿 부분 넘버가 참 좋았다. 위에서 말했듯이 두 주인공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도 좋았고. 아쉬운 건 홍련이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 나는 가상에서라도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결국 홍련은 제대로 된 복수를 하지도 못하고 죽어 수많은 재판을 받으며 트라우마에 고통받은 서사가 되어 아쉬웠다. 물론 깔끔 후련하게 복수를 했다면 홍련이라는 뮤지컬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래도 해피엔딩이 좋아서 말이다.

 

분명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오로지 피해자가 느낄 슬픔과 괴로움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사람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함께 견뎌야 했던 홍련의 삶이 안타깝다. 현대에서도 어떤 범죄든간 가정폭력이든 학교폭력이든 성폭행이든 피해자로 하여금 '내가 잘못했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1차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이러한 범법행위가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혹여나 그런 일이 발생했다 한들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아 엉뚱한 피해자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 재관은 하지 않을 것 같지만 몇 가지 불호 요소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한 번쯤은 볼 만한 뮤지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