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룰포 「뻬드로 빠라모」 후기: 낯선 구조, 새로운 시각
REVIEW/BOOK REVIEW 2025. 4. 18.
후안 룰포 「뻬드로 빠라모」 후기: 낯선 구조, 새로운 시각
독서모임 2주 차의 책은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였다. 그나마 작년 말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를 읽고 아프리카 문학을 처음 접해보았지만, 남미 문학은 또 처음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남미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후안 룰포의 책들이 유명한 편이었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이렇게 아는 게 적을 수가~~
일주일에 한 권 읽을 수 있도록 선정된 책인 만큼 내용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170p 정도?) 나에게는 상당히 어려웠던 책이었기에 읽으면서도 엄청 헤매고 나의 상당한 집중력을 요했다. 내가 이런 수준밖에 안 됐나 싶어 좌절했지만 독서모임에 나가보니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용도 어려운데 멕시코 배경이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길고 낯선 데다가 사람들도 많이 나와서,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인물들을 메모해 가면서 읽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어머니의 남편을 찾으러 꼬말라로 향하면서 시작한다. '어머니의 남편'이라고? 그렇다면 아버지일 텐데. 이렇게 거리감 있게 적어둔 이유가 무엇일까, 시작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던 도입부. 이후의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찾으러 꼬말라로 향하고, 마을의 죽은 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아버지의 이야기를 알아내게 된다. 이야기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뻬드로 빠라모'는 메디아 루나의 대지주로 이기적인 악행을 일삼고 여자도 여럿 갈아치웠지만, 마지막에는 '수사나'라는 미쳐버린 여자를 짝사랑하며 죽을 때까지 그녀에 대한 순애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멕시코 혁명과 맞물려 있다.
이렇게 줄거리만 보면 '획기적'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운 소설이지만, 뻬드로 빠라모를 세계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은 요소는 바로 내용을 풀어나가는 새로운 구조였다. 서술은 시대와 배경, 시점 그리고 주인공을 자유롭게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당연히 책을 읽으면서 어떤 이야기는 먼저 읽게 되고, 뒤에 적힌 이야기는 나중에 읽게 되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마치 다양한 상황의 이야기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보고 듣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이야기와 화자들 사이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만 한 번 읽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내용이기는 했다. 주인공 시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의 이야기로 전환되어 그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도, 갑자기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뻬드로 빠라모를 관찰하며 뻬드로의 삶을 풀어나가기도 한다. 현재의 시점을 이야기하다가도 어느 순간 과거의 내용을 말한다. 그러다가도 그 이후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때문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이 '나'라는 화자가 주인공인지 뻬드로인지, 아니면 제3의 인물인지 도무지 쉽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에 더해 내용의 복잡함은 우리에게는 낯선 멕시코 문화가 더해져 흐름의 파악을 더 어렵게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보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 」를 많이 떠올렸다. 「코코 」에서는 삶과 죽음의 공존한다.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함께 겹쳐져 있는 세계라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망자의 날'에 멕시코 사람들은 마을을 해골로 장식하고 죽은 자들을 기린다. 이때의 죽은 자들은 우리나라와 같이 섬뜩하고 으스스하거나 아니면 신적인 존재라기보다는 마치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처럼 그려진다. 이런 멕시코 특유의 문화 덕택에 작품 내의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산 자였던 주인공은 아무렇지 않게 죽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받으며, 심지어 주인공이 중간에 죽게 되는 순간도 정확한 사인은 불분명하다. 죽은 마분디오의 마차를 타고 와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마분디오? 그 사람은 죽었는데. 다른 사람인가?" 라는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하는 방식이다. 처음은 정말 동명이인인가 싶었지만 진짜 죽은 사람이 맞았다.
이러한 애매모호함이 스토리의 이해를 어렵게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작품의 매력을 배로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독서 모임에 나갔을 때 강사님이 "그래도 이런 점이 불쾌하지는 않았죠?"라고 하셨었는데, 강사님의 말이 딱 맞다. 내용이 어렵긴 해도 그게 짜증나게 하는 요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명백하지 않은 점이 나는 책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너는 그곳에서 내가 원하던 것을 찾게 될 게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에서. 나를 야위게 만들었던 꿈들이 있는 곳, 나무와 숲이 빽빽하게 늘어선 곳, 추억거리가 마치 성당 헌금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곳······. 그곳에서 너는 느낄 것이다. 사람들이 영원히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얘야, 그곳은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그 어느 때든, 그 어느 것이든 언제나 똑같지만, 딱 하나, 사물의 색깔을 바꿔놓는 공기는 다르다. 그곳에는 마치 속삭이는 듯한 공기가 떠돌고 있어. 생명의 속삭임 같은······."
동이 트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밤하늘에는 어느 때보다 우쭐해 보이는 별들로 가득한데,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달은 자신을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 상심한 듯 겹겹이 둘러싸인 산봉우리 뒤편으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위의 두 구절처럼, 뻬드로 빠라모를 이루고 있는 문장들 또한 참 아름답고 섬세했다.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에 이러한 아름다운 문장들도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뻬드로 빠라모가 다른 사람들에게 악했던 인물이었을지라도, 마지막에 수사나를 그리워하면서 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가던 묘사는 참 감명 깊게 와닿았다. 사람이란 참 다채롭고, 동시에 변화하는 존재다. 어떠한 길이 오르막길일 수도, 내리막길일 수도 있듯이. 하지만 사랑을 잃었다고 그가 "지배"하던 일대를 황폐화시켜버린 건 절대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꼬말라에 큰 영향을 미친 멕시코 혁명에 대해 내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시점 속에서 혁명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군상극은 각자의 생존방식과 신념, 그리고 저마다 다른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부는 봉기하고, 뻬드로는 자신의 자금을 대어 축출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누군가는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등. 멕시코 혁명은 실패한 혁명의 대표격이었다는데, 혁명이 농촌 마을에 가져다준 결과를 내가 사전 지식을 잘 알고 있었더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독 이 책을 읽으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펜이 움직이는 대로 머릿속의 모든 생각을 끄집어냈다는 감각을 느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변화하는 다채로운 시점 때문일지도, 아니면 이후에 알게 된, 작가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일지도 모른다.
한 번 읽고 덮기에는 참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비록 지금은 한 주에 한 권씩 책을 읽어내야 하는 일정에 치여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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