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해적」 실황 관람 후기 (2024. 8. 19. | 김이후, 김려원)
REVIEW/PERFORMANCE·EXHIBITION REVIEW 2025. 3. 11.뮤지컬 「해적」 실황 관람 후기
2024. 8. 19.
김이후, 김려원
네이버 TV
나의 마음속에 가장 완벽한 세상은 바다였어
과연 이 후기를 관람 반년 후에나 써도 되는 걸까······.
미리 말해두지만 이 뮤지컬을 재미없게 봐서 후기를 미루다 억지로 쓰는 게 아니다. 뮤지컬 자체는 올해 본 대학로 뮤지컬(중계이긴 했지만)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봤었으니 말이다. 그저 이제야 쓰게 된 이유는 당시 즐기던 콘텐츠가 많아 후기지옥에 빠져버렸고 그렇게 밀리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을 뿐······.
SNS에서 2023년에 공연했던 뮤지컬 해적을 볼 수 있다는 정보가 돌아서 맞춰서 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홍련처럼 무료 중계가 아니라 후원 중계였다. 돈을 내야 하는 줄은 모르고 있었던지라 고민고민하다가 해적 평을 얼추 찾아봤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제법 좋은 편이라 결제하고 보기로 했다. 후원 금액은 25,000원! 솔직히 대학로까지 가서 본다고 음질이 무지막지하게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혜화역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등등등··· 을 생각해 보면 들어가는 코스트가 꽤 되는지라 찍먹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한다. 게다가 상연 시간은 오후 7시부터지만 이용 시간은 12시까지이기 때문에 다 보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 있으면 두 번 볼 수 있다는 거! 화장실은 가고 싶을 때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다는 거! 간식도 먹으면서 볼 수 있다는 거! 불편한 좌석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갇혀 있을 필요 없다는 거! 다 보고 나서는 다른 일을 하며 노래 감상이라도 더 할 수 있다는 거!
해적 캐스팅을 확인해 보면 특이한 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두 사람이 각각 1인 2역을 한다는 점. 이미 1인 2역을 하는 프랑켄슈타인을 접한 이후에 1인 2역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갔었으므로 기대가 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생소한 건 두 번째였는데, 바로 성별무관 캐스팅이었다는 점이었다. 회차에 따라 배역을 여배우가 연기하기도 하고 남배우가 연기하기도 한다(남녀 혼합인 경우는 없는 듯). 처음 이걸 보고 나서 되게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어떠한 배역을 반드시 특정 성별이 연기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나? 최근에는 이미 성별을 반전하여 새롭게 각색한 콘텐츠도 많고 실제로 일본에서는 드라큘라를 연기하는 배우가 여성이니 말이다. 성별 제한 없이 배우에게 기회를 주면서 관객에게도 보다 폭넓은 선택지를 줄 수 있으니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용을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말이다.
정작 뮤지컬을 보고 나서는 '엥? 이걸 남자가 연기한다고? 표 팔려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짙게 들어버렸으니까······.
어떻게 보면 해적의 스토리 흐름은 무난하다. 선장 잭과 잭의 동료 케일럽의 자식인 루이스는 보물섬을 찾기 위해 항해를 시작하고, 여정 중에 앤과 메리라는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끝내 보물섬을 발견해 그에 얽혀 있던 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 마지막에 해군에게 붙잡혀 일부가 죽는 엔딩이 되어버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지만. 보던 중에는 넘버가 대체로 밝은 편이어던 탓에 마지막도 행복하게 끝날 줄 알았다.
여기에서 앤과 메리라는 캐릭터가 문제다. 솔직히 잭과 루이스는 캐릭터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스토리에 큰 지장이 없다. 물론 다른 성별의 배우가 연기한다 해서 극 중 캐릭터의 성별 자체가 바뀌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역할은 분명히 여성 배우가 연기를 해야 했다.
작품에서 나오는 앤과 메리는 원래 여성이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인해 앤서니와 마르코라는 이름으로 남자 행세를 하며 해적으로 살아간다. 앤은 사생아로 태어나 자기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결혼을 하면 이름을 남길 수 있었기에 사랑 없는 결혼을 한다. 잭과 사격 대결을 벌여 이긴 대가로 '여자는 해적이 될 수 없다'는 규칙을 우회하기 위해 앤서니라는 이름으로 잭의 배에 타려 하던 때, 앤의 남편이 혼인 서약을 저버린 죄로 그녀를 고발한다. 신에게 맹세한 적 없다는 말 때문에 법정 모독죄로 벌이 가중되지만 다행히도 잭이 돈을 지불하고 앤을 구해낸다. 이때 앤은 왜 당사자인 자신을 두고 왜 너희들끼리 돈을 주고받냐며 화낸다. 과연 앤이 남자였더라면, 아무리 사생아라 했을지라도 이런 '물건'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되었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연 남편이 앤을 버렸다면 재판관이 그러한 판결을 내렸을까? 해적선에 여자는 탈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규칙은 왜 생겨난 것일까?
메리의 과거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마르코라는 이름으로 남자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메리는 사실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으며,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죽은 오빠의 이름을 쓰며 살아야만 했다. 실제로 옛날 유럽에서는 가문의 남자가 없으면 여자에게 재산이 상속되지 않고 저 먼 친척까지 건너가 굳이 굳이 남자에게 돈을 쥐여주었다. 여자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운 세상이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메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거짓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서사는 그들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었다. 그렇기에 앤과 메리를 남자가 연기한다는 발상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두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고통을 공감할 수 없는 남성이라는 성별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괴로움을 연기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기만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랬기에 처음 좋게 생각했던 것 대신 '이 놈들 표 팔려고 이러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이야기는 마땅히 여성이 들려줘야 하는 법인데 여자가 설 수 있는 자리를 빼앗은 남성이 여장을 하고 이야기를 한다니요. 그래, 확실히 나는 해적의 스토리 중에서 잭과 루이스의 이야기보다도 앤과 메리의 이야기가 더 좋았었나 보다. 게다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고?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고. 아 진짜 둘이 사귀는데 마지막에 그렇게 되다니… 사실상 앤과 메리가 메인주인공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냥 둘의 캐릭터가 좋았다.
김이후 씨와 김려원 씨는 해적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두 분의 연기도 참 마음에 들었다. 특히 김이후 씨가 연기한 루이스와 앤의 특징 차이, 그리고 너무 소년미 넘쳤던 루이스 캐릭터가 나의 마음에 쏙 들었다. 나중에도 해적 뮤지컬을 보게 된다면 이 두 분의 조합으로 보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애석하게도 2024년 해적에는 두 분 다 오지 않으셨다. 나중에 다른 뮤지컬 캐스팅에서 뵙게 된다면 해적이 아니더라도 두 배우를 다시 보고 싶긴 하다.
넘버 중에서는 스텔라 마리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처음 들을 땐 무슨 뜻인지는 몰랐는데 찾아보니 스텔라 마리스가 '바다의 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앤이 별을 쏘고 별이 부서지는 연출, 그리고 앤이 결국은 운명을 개척하고 배에 승선하게 되는 순간이 좋았다.
캐릭터가 마치 소설을 읊듯 다른 인물들의 행동을 나레이션하는 연출은 연극 빵야에서 처음 접했었는데 해적에서도 루이스가 캐릭터들의 행동을 설명하고는 했다. 아무래도 2인극이다 보니 두 사람이 연기할 수 없는 부분은 캐릭터의 입을 통한 설명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바다와 낭만을 부추기는 뮤지컬. 하지만 연출이 엄청나거나 넘버가 차력쇼를 요하거나 하는 뮤지컬은 아니라서 중계만으로도 충분히 이 뮤지컬의 묘미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직접 본다면 너무나도 좋겠지만 요즘 뮤지컬들이 너무 비싸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 좋은 스토리였으니 기회가 있다면 내 주변 사람들은 꼭 봐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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