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뮤지컬 「킹키부츠」 관람 후기 (2024. 9. 12. | 이석훈, 강홍석, 나하나, 전재현, 이윤하, 김용수) - 너를 응원하는 정열의 RED!

뮤지컬 「킹키부츠」 관람 후기 (2024. 9. 12. | 이석훈, 강홍석, 나하나, 전재현, 이윤하, 김용수) - 너를 응원하는 정열의 RED!

REVIEW/PERFORMANCE·EXHIBITION REVIEW 2024. 10. 25.

 

뮤지컬 「킹키부츠」 관람 후기

 

이석훈, 강홍석, 나하나, 전재현, 이윤하, 김용수

2024. 9. 12.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너를 응원하는 정열의 RED!

 

 

내 뮤지컬 인생에는 오지 않을 줄 알았던 킹키부츠를 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관심 있게 기다리던 뮤지컬은 아니었지만 프랑켄슈타인을 보러 갔을 때 킹키부츠 포스터가 걸려 있는 걸 보았는데, 함께 갔던 엄마가 킹키부츠가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관심을 가졌었다. 마침 킹키부츠도 딱 10주년이길래 갈지 말지 마음을 정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티켓팅 날짜가 다가와 일단 예매를 해두었었다(선예매 후생각).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하자 같이 보러 가자고 하여서 둘이서 함께 보러 갔다.

 

 

 

 

다른 뮤지컬보다도 어떤 배우 회차를 보러 가면 좋을지 고민이 꽤 깊었다. 저번 프랑켄슈타인 때(최근 내 뮤지컬 행보는 대체로 프랑켄슈타인과 관련이 있는 듯) 생각 이상으로 박은태 배우의 연기와 목소리가 좋아서 박은태 배우로 보러 갈까 했는데 킹키부츠는 또 강홍석이라는 배우가 가장 유명하더라. 박은태 배우의 롤라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내 마음속 앙리와 괴물로 남아 있었고, 또 한 번 보고 말 것 같아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뮤지컬로 보기로 했다. 이석훈 씨와 강홍석 씨의 케미가 좋다고 해서 두 사람이 나오는 가장 빠른 회차로 골랐다. 마침 특전 티켓을 주는 회차였다.

 

뮤지컬 킹키부츠에 수록된 노래는 제대로 들어보지 않았지만 예전에 영화를 봐서 내용은 알고 있었다.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노래가 하나도 없는 일반 영화 그 자체인 킹키부츠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내용 자체는 좋았다고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본 뮤지컬들이 마틸다와 극불호 미오 프라텔로를 제외하면 죄다 어두침침하고 우울하고 광기의 내용이었던 터라 상대적으로 신나 보이는 킹키부츠가 나와 잘 맞을지 걱정이 됐다. 지금까지 본 뮤지컬이 노트르담 드 파리, 레베카, 오페라의 유령,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사의 찬미 같은 내용들이었어서.

 

하지만 다행이게도, 아니, 다행이라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너무 잘 보고 왔다! 뮤지컬을 보고 나온 이후로 너무 기분이 들떠서 나중에도 또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질 정도였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어두침침한 내용에 빠져 살던 나에게 색다른, 강렬한 레드의 킹키부츠 같은 전환점을 주었다고 해야 할까? 

 

 

2024. 9. 12.

같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열린 저번 프랑켄슈타인 공연은 엄마와 함께 차를 끌고 가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주차 자리가 제대로 있을까 싶어서 대중교통을 타고 갔다. 이날도 비가 엄청 많이 내렸다. 어째 최근 들어 대극장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계속 비가 왔다.

 

엄마도 나도 퇴근하고 가야 하는 길이라 일찍 극장에 도착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30분~의 여유를 두고 도착하기는 했는데 이미 내부는 인산인해 ㅠ MD가 궁금하긴 했지만 우선은 표부터 찾았다. 프랑켄슈타인 때는 키오스크에서 바로 표를 뽑을 수 있었는데 이곳은 직원이 직접 표를 발급해 줬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매진] 종이를 들고 있는 홍롤라 스탠드를 찍고 싶었는데 뒤에 줄도 있고 옆에 어떤 여자가 되게 서성서성거리고 있어서 '복잡해서 눈치 보인다. 안 되겠다. 나중에 와서 다시 찍자.' 하고 그냥 떠났는데 그러자마자 여자가 뒤에 줄 서 있는 남자 앞에 끼어들어서 "잠시만요." 하고 사진 찍고 감 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찍을걸! 결국 이후에 다시 티켓 판매 부스에 갔을 땐 홍롤라 스탠드는 치워져 있었다. SAD.

 

그러고 나서는 바로 MD부스로 갔다. 킹키부츠 뮤지컬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지는 않았어서 MD를 인터미션이나 극이 끝나고 사고 싶기도 했지만··· 이번 MD가 너무 예쁘게 잘 뽑혀서 품절되기 전에 얻고 싶은 마음이 컸다.

 

 

 

특히 저 반팔티셔츠!! 까리하게 잘 뽑았다 싶어서 저것만큼은 가지고 싶었는데 대체 물량을 얼마나 적게 뽑은 건지 몰라도 내가 갔을 때는 벌써 품절이었다. 심지어 내 회차가 이석훈 강홍석 첫 회차였는데. 심지어 스트링 백팩은 하루이틀인가만에 품절되고 말이다. 리본 키링도 곧 품절되고 티셔츠도 3~5일 이내로 품절되었던 것 같다. 결국 일시품절이라는 표시조차 붙여놓지 않은 부스에서 기다리다가 품절이라는 소리만 듣고 배지나 샀다. 내용을 보기 전이라 웬만하면 천천히 사고 싶기도 했지만 어째 품절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RAISE YOU UP 배지와 신발상자 배지 이렇게 두 개로 샀다. 10주년인 만큼 10주년 기념 배지를 살까 싶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취향이 아니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플래그에 달 때 알았는데 신발상자 배지의 입체 표현이 뭔가 미묘하게 느껴져서 괜히 샀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경첩 좋아.

 

공연을 본 이후인 10월 초에는 여전히 킹키 뽕이 빠지지 않아서 이루러 다른 약속 있는 날 블퀘에 들러 재입고된 티셔츠와 키링을 샀는데 키링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미친 충동구매였구나 싶어서 되팔았다······. 3만원짜리 키링은 너무 비싸요. 스토리에 붉은 리본이 나오면 몰라도. 그래도 티셔츠는 디자인이 예뻐서 아주 만족 ㅎㅎ 

 

 

캐스팅 보드도 찍어주고~ 사실 워낙 롤라 하나 보고 갔던 지라 뮤지컬을 보고 나오기 전까지 찰리 역의 배우 이름도 잘 모르고 들어갔었다. 찰리도 그 정도인데 다른 조연 배우들은 당연히(······).

 

뮤지컬이랑 상관없지만 하나 좋았던 점. 킹키부츠라서 모든 직원들이 다 검은 옷에 붉은 리본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콘셉트를 맞춰둔 게 좋았다. 

 

따로 포토부스를 찍지는 않았지만 정말 화려하게 잘 꾸며놨더라. 엄청 활기차 보이고 강렬한 레드였는데, 워낙 예뻐서 그런지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엄청 많았다. 난 원래 그런 곳에서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그 옆에는 프라이즈앤선 사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후딱 안으로 들어갔다.

 

 

짜잔

내가 봤던 회차는 스페셜 티켓을 주는 회차였던 터라 적박 M형 티켓을 하나 더 받았다 ㅎ 마치 입술이 섹시한 표범 무늬처럼 보인다. 의도한 거려나?

 

원래 킹키부츠를 보려고 벼르고 있던 작품이 아니었기에 내 자리 하나 잡아두고 뒤늦게 엄마 자리를 잡았던 터라 이번에는 따로 앉아서 보게 되었다. 나는 왼블 11~15열 사이에 앉았다. 왜 그런진 몰라도 시야가 프랑켄슈타인보다 훨씬 좋다고 느껴졌다. 프랑켄슈타인 극이 어둡고 무대를 깊이 써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보긴 했는데. 비록 중앙이 아니라서 무대 설비로 인해 살짝 가려지는 면도 있었지만(롤라의 등장 장면이라거나) 그래도 배우들의 표정이 꽤 잘 보여서 오페라글라스 없이도 무리 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다른 뮤지컬보다 좋았던 점은 킹키부츠는 공연 전, 그리고 공연 후 무대를 찍을 수 있다는 거! emk는 이런 것 좀 제발 배우길 바란다. 다들 무대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 알고 있을 텐데 꼭 그걸 찍지 말라고 막아야 하나? 오히려 홍보 효과도 되고 좋지 않아!? 아무튼 이러한 널널한 규제 덕에 기분 좋게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무대의 시작은 웅장하고 화려하게 시작한다기보다는 익살스럽게 시작한다. 프라이즈 앤 선에 다니는 직원이 전화를 하면서 무대로 나와서 누군가와 통화하는데, 공연을 볼 때는 핸드폰을 끄고 떠들면 안 된다는 등 공연 전 안내 사항을 마치 전화 너머 상대방에게 설명해 주듯 알려줬다. "알겠어?"라고 할 때 관객들이 떼거지로 네! 하고 대답하자 "???" 하면서 관객석 쪽을 쳐다보는 연출도 재미있었다. 

 

곧 무대가 올라가고 노래가 시작될 때는 찰리의 아버지가 아직은 살아생전에 프라이즈 앤 선의 사장일 때의 시점으로 나온다. 어린 찰리와, 그때부터 여성용 신발에 관심을 가지는 어린 롤라도 나오고(아역까지 나올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이때 연출 중 어린 찰리가 움직이는 거대한 소품을 지나가는 순간 성장한 찰리로 순식간에 변하는 시간의 흐름을 연출한 순간이 내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았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왔지만 신발 공장을 맡고 싶진 않았던 찰리는 아버지의 만류를 듣지 않고 제대로 된 꿈 없이 여자친구를 따라 공장을 떠나버리지만, 그 사이 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뜨고 만다. 결국 찰리는 공장으로 돌아와 어쩔 수 없이 신발 공장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사실 원한다면 직원들을 다 잘라버리고 공장을 폐업해도 되지만 찰리도 결국 심성이 아버지를 닮긴 했는지 공장을 살리기 위해 여자친구도 멀리 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재고를 떨어 버리기 위해 친구도 찾아가서 사정사정을 하고. 그러던 중 남자들의 집적거림을 받던 롤라를 구출(?)하고 롤라가 신고 있는 부츠에 영감을 얻어 롤라와 함께 킹키한 부츠를 통해 공장을 살리는 이야기.

 

롤라는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상황별로 옷 스타일이 바뀌는 게 참 보는 맛이 있었다. 그에 더해 롤라만큼이나 시선을 휘어잡는 캐릭터들은 롤라와 함께 등장하는 앤젤들인데, 우리 엄마는 끝까지 이 앤젤들이 여자인 줄 알았다고. 심지어 자리도 통로와 가까워서 마지막 커튼콜 때 앤젤들이 엄마 가까이까지 왔는데 그렇게 가까이서 보고 나서도 '남잔지 여잔지 몸선 때문에 아리까리했는데 음. 여자 맞네.' 했다고 한다. 진짜 웃김 ㅠ 이 앤젤들은 단순히 롤라의 뒤에 서있기만 하거나 하지 않고 온갖 묘기를 다 부리는데 그 엄청난 킬힐을 신고 공중제비를 돌고 다리를 찢고 별 묘기를 다 부린다. 단순히 걷기만 해도 쉽지 않은 그 구두를 신고 그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 오디션 볼 때도 이런 게 가능한 사람들로 뽑겠지.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롤라와 돈이 경기를 할 때 경기장의 링도 앤젤들이 섹시하게 연출한 거. 그리고 점수판을 들고 다니는 앤젤이 정말 옷이 너무 섹시하고 몸매가 좋아서 시선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이 앤젤들 때문에 차라리 엄마와 다른 자리에서 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것도 너무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서 확실히 기억에 남진 않았지만, 영화를 미리 보고 간 것이 뮤지컬 내용 이해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짧은 러닝타임에 노래까지 삽입되면서 축약할 수밖에 없는 서사와 감정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영화를 미리 보고 가지 않았더라면, 찰리의 그 전화 하나로 롤라가 마지막에 마음을 순식간에 바꾸고 밀라노까지 와서 찰리를 도와주는지 깊은 공감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뮤지컬은 모든 걸 담아낼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생략해야 할 부분은 생략해야 할지도(개인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롤라가 옛날이야기를 할 때나, 아니면 양로원에 있는 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주인공끼리의 갈등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다른 피폐한 뮤지컬과는 비교도 안 되게 밝은 분위기의 극인데 어쩐지 나는 마지막에 화려하고 신나는 분위기에 더욱 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앞서 언급한 부분들을 제외하면 마냥 밝고 당차기만 한 롤라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편견과 비난을 받아내며 의연해지기까지 얼마나 참아내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졌을 차별의 시간들이 함께 생각나서였다. 그중에서도 큰 상처가 되었던 건 아무래도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찰리가 롤라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내던 순간이겠지. 물론 찰리가 뒤늦게 반성하긴 했지만 나였다면 개 큰 상처. 너랑 다시 안 봄. 개새키. 하고 떠나갔을 걸 롤라는 결국 마음을 돌려 찰리를 도와주는 선택을 한다. 정말 대인배고 천성이 너무 착한 사람이구나 싶어지던 순간. 롤라가 돈과 대립할 때 자신이 프로 복싱 선수였음에도 돈의 체면을 위해 일부러 져주고(하··· 이거 뭔가 지속적인 차별로 인해 생긴 자낮 같기도 함) 내기에 걸려 했던 것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였던 걸 생각하면 당연하겠지만.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롤라와 앤젤들이 등장해서 당차게 무대에 등장하던 순간에 이어 시작된 Raise You Up 넘버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듣기만 해도 너무 힘이 되는 넘버인 것 같다. 그렇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자신을 향했던 비난을 용서하고 저 먼 밀라노까지 달려와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라고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차별 속에서도 당당히 걸어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나 또한 용기가 났다. 이미 상처를 가지고 고통을 느낀 사람들의 위로의 깊이는 다른 법이니.

 

찰리도 자기 혼자서만이라도 공장을 살려보겠다고 밀라노로 가서 위는 정장차림, 아래는 트렁크 차림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나마 부츠를 신고 사람들에게 선보이려던 마음씨가 참 감명 깊었다. 쉬운 길로 향한다면 공장 사람들을 내보내는 길을 택하고 그 돈으로 다른 일을 하며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도 체면까지 버려가며 무너져가는 공장을 살리려 하는 모습에서 찰리가 얼마나 공장 사람들을 아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완벽에 대한 강박이 생기고 공장 사람들과 롤라에게 못된 말을 내뱉는 찰리의 비뚤어진 행동이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무너져가는 조별과제의 조장이 되어 애써 점수를 따려고 하는 사람 같았달까. 나는 필사적이고 처절한데 직원들은 '적당히 하지~' 식으로 나오고, 결과물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물론 그의 행동이 과하긴 했고 롤라에게 화를 낸 건 찰리를 생각한 롤라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앤젤들을 세울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긴 하지만··· 사실 중요한 자리에 그런 사람들을 쉽게 세울 수 있느냐 하면 나 역시 많은 고민이 되긴 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프라이즈 앤 선에서 만든 부츠는 남성을 타깃으로 해 그들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튼튼한 부츠 제작이었으니 당연히 남자가 모델을 서야 하지 않나······. 아, 현실이란 어려운 법이다. 그래도 결국 마지막에 행복한 모습을 봐서 다행이었다. 

 

마지막에서야 다시 모습을 드러낸 찰리와 롤라의 어릴 때 배우들도 나와 각자 자신의 아버지에게 안기는 순간도 또한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과 바른 마음을 자신 스스로가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롤라를 무시해 오던 돈도 마지막에 함께 합류해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도 좋았다. 영원한 악역이 아니라 그 또한 마음을 바꾸고 더 나아진 사람으로 나타나서. 그래서인지 챨리의 원래 약혼녀였던 니콜라가 찰리의 사업을 방해하려 하는 악역으로만 비친 것 같아 그 점이 나에겐 아쉬운 요소로 작용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니콜라가 결혼반지보다도 더 원하는 구두는 바로 사회적 진출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중에 빨간 구두를 직접 사 신는 건 사회적 진출에 성공했다는 의미일 테고. 사실 서로 어느 부분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느냐에 대한 이해관계의 상충이고 그로 인해 결별하게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텐데 아무래도 프라이즈 앤 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너무 악역처럼 나오는 게 안타까웠다. 

 

전체적으로 참 재밌게 봤지만 취향에 안 맞았던 부분은 로렌이 찰리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고 홀로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었는데 내 기준에서는 좀 유치했다는 거. 그리고 내 옆자리 사람이 진짜 산만하고 시끄러워가지고 보는 내내 방해를 받았다는 것. 일반인들이 많이 보러 오는 극이라서인지 그저 내가 운이 없었던 건지 옆자리 말고도 주변이 비교적 부산스러웠고 이야기하는 소리 들리고 난리였다. 그중에서도 내 옆자리 사람이 제일 신경 쓰였는데 손짓도 하고, 롤라가 양로원에서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장면에서 혼자 웃고(왜······ 웃으세요? 이때는 앞자리 사람도 뒤돌아서 쳐다봄) 밀라노 무대가 공개되기 전 사회자가 이탈리아어+한국어 말을 내뱉을 때는 따라 하기까지 하고······. 별로 뭐라 하고 싶진 않아서 말았는데 그냥 말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냥 신나는 공연이니까 그냥저냥 참고 넘어갔는데 프랑켄에서 그랬더라면 바로 말했을 거임.

 

사실 이 뮤지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시작 부분도, 갈등 부분도, Raise You Up도 아닌 커튼콜이다. 한동안 커튼콜 했다 하면 진지하게 인사하고 앵콜 같은 것도 없이 무정하게 무대 뒤로 사라졌던 다른 극의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킹키부츠의 스토리는 커튼콜까지도 이어진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시작될 때 나는 적잖이 놀랐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빛나는 무언가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뭘 하는 거길래 팔고 있는 거지 싶었던, 작중 내용이랑은 별로 상관없지 않나 생각했던 절대 반지와 절대 팔찌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아이템이었다. 다들 빛나는 반지와 팔찌를 들고 호응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콘서트장 한가운데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강홍석 씨도 마지막까지 "내가 무슨 아이돌이라도 돼!?"라고 하며 호응해 줬고 사람들의 호응도 엄청나서 나도 한순간에 그 분위기에 휩쓸려버렸다. 극의 주제답게 "레이디스 앤 젠틀맨! 그리고 또 이런 저런 그런 모든 분들, 그리고 당신!"이라고 외치는 대사는 킹키부츠 그 자체를 보여주는 핵심 문장 중 하나이지 않을까? 다시 한번 Raise You Up이 나오고 앤젤들은 무대 아래 객석 통로까지 내려와서 함께 춤을 추기까지 한다! 단순히 무대를 지켜보기만 하는 관객이 아니라 배우들과 함께 호응하고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멤버 중 하나가 된 것 같아서 너무 신나던 경험이었다. 마지막에 너무 열심히 박수를 쳐대서 무대가 끝났을 때는 손바닥에 불나는 줄 알았다. 노래가 끝난 이후로는 각 배우들이 끼를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앤젤들은 무대의 통로에서 춤을 추고 찰리와 롤라는 무대 위에서 끼를 부리다 보니 영장류의 좁은 시야로는 두 구간을 함께 보기 어려워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느라 정말 바빴다. 그렇다고 두 장면을 한 화면에 편집하는 일은 정말 별로라는 사실을 한 달 뒤에 본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를 통해 깨달았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도록 하자. 

 

확실히 내 머릿속 롤라의 이미지가 강홍석 씨와 잘 맞아서 만족스럽게 봤다. 원작 또한 몸 좋은 흑인 배우를 쓰기 때문에 만약 강홍석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이 무대에 섰더라면 '그 몸으로 프로 복서가 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오히려 여리여리하지 않은 남자다움이 느껴지는 롤라라서 좋았다. Sex in the Heel을 부를 때 중간중간 낮게 목을 긁는 부분도 좋았고. 롤라가 '가녀리고 여성스러운 여성'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의 남성적인 부분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자처럼 치장하고 싶었던 점이 보였다고 해야 할까. 소울풀한 넘버들도 너무 잘 소화해냈다. 그걸 보고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각자 맞는 배역이 있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성악 쪽으로 특화된 사람이 롤라를 하면 아마 완벽하게 소화해내지는 못했겠지? 다른 배우들도 다들 괜찮았는데 사실 엄청 빡센 가창력이 요구되는 넘버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서 어떤 배우로 보러 가든 괜찮지 않을까 싶음.

 

이래저래 뮤지컬이라면 미친듯한 비극이 있고 웅장해야 하고 정병이 있어야 한다는 나의 편견을 깨고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은 뮤지컬. 함께 보러 갔던 엄마도 너무 재미있게 봐서 다행이었다. 나중에 한 번쯤 더 보고 싶었지만 가격도 가격이고 가격보다 더한 티켓팅으로 더는 보지 못했다. 쥐롤라 씨의 원죄가 크다. 마지막 티켓팅은 내가 일본에 가 있는 바람에 시도조차 못 했지만······.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한 번 본 것으로 괜찮지 않나 싶고. 다음 공연은 3년 후에나 봐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