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 관람 후기(옥주현, 이해준, 이지훈, 길병민, 주아, 장윤석)
REVIEW/PERFORMANCE·EXHIBITION REVIEW 2024. 10. 23.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 관람 후기
2022. 12. 31.
옥주현, 이해준, 김지훈, 길병민, 주아, 장윤석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2024. 10. 21. 코엑스 메가박스 돌비 시네마
후기를 쓰기 전 진짜 쓸데없이 고민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내가 보고 온 이 작품을 뮤지컬 후기에 넣어야 할지 영화 후기에 넣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였다. 카테고리를 보면 알 수 있듯 결국 뮤지컬을 택했는데 영화를 위한 연출과 편집보다는 뮤지컬을 그대로 담아낸 데에 가까워서였다.
엘리자벳은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은 없고 유명한 뮤지컬 플레이리스트에서만 노래를 조금 들어본 적 있는 뮤지컬이었다. 사실 엄청 기다린 것도 아니고 다른 뮤지컬 소식 때문에 EMK 인스타를 보다가 개봉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뮤지컬을 보는 친구들이랑 함께 보게 됐다. 아무래도 음악이 중요한 뮤지컬이니 일부러 멀리 있는 코엑스까지 가서 보고 왔다. 저녁으로 니뽕내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상영시간이 다가와 후다닥 메가박스로 향했다.
엘리자벳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게 없는데 심지어 마리 앙투아네트와 모차르트, 베르사유의 장미와 같은 서양드레스물이랑 헷갈리기까지 해서 이 넘버가 어디 넘버인지, 이 연출이 어디 연출인지 아는 게 없었다. 춤추겠다는 게 마리 앙투아네트인지 황금별이 엘리자벳인지······. 그~나마 이제부터 난 마음껏 춤을 추겠다는 노래가 엘리자벳인 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너무 어렴풋이 알아버린 바람에 엘리자벳의 내용을 부모님과 가족의 압박 속에서 구혼자를 정해야 하는 상황에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스토리일 것이라 제멋대로 상상했다. 대체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몇 가지는 맞히긴 했다.
뮤지컬인 만큼 러닝타임은 거의 3시간에 달했는데, 때문에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중간에 인터미션이 7분 가량 있었다. 인터미션이 있는 영화라니 너무 센세이션 하지 않나? 부디 다른 영화들도 공연 실황이 아니더라도 중간에 인터미션을 넣어주길 바란다.
제작사 로고가 뜨고 나서 나오기 시작한 오버츄어에서는 그래도 영화로 나온다고 공을 들이기라도 했는지 텅 빈 무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부채나 엘리자벳의 사진의 나열 등 엘리자벳과 관련된 영상이 나와서 좋았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돌비 시네마인 만큼 자리는 편안했고(27,000원짜리인데 좌석도 불편하면 그건 쓰레기지) 음향은 다른 영화관보다 좋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좋아서인지? 소리가 너무 커서인지? 너무 울려서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리는 부분이 많았다. 때문에 처음부터 루이지 루케니와 목소리가 대화하는 내용을 거의 다 알아듣지 못하는 바람에 그가 엘리자벳을 암살한 범인이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관람을 시작했다(레전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역사를 그대로 담아낸 뮤지컬이라 스토리 자체에 대한 각색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 뮤지컬의 특색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오스트리아 황후였던 엘리자벳이 일생에 걸쳐 느낀 죽음에 대한 유혹과 우울감을 하나의 시각적으로 재창조했다는 점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황후의 내적 갈등을 단순히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마지막 황후'라는 문구로 뮤지컬의 스토리를 단순히 엘리자벳과 죽음의 로맨스로 일축시켜 버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제작사의 입장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생처럼 한국에서도 유명한 세계사가 아닌, 어찌 보면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오스트리아 왕가의 이야기는 주된 셀링 포인트가 될 수는 없기에 비교적 대중적인 로맨스로 초점을 돌린 선택은 상업적으로 이해가 가긴 한다. 물론 작품성만을 따지면 매우 아쉽긴 하다.
반대로 말하자면 죽음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을 제외하면 스토리는 개인의 인생사를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뮤지컬의 내용은 사실상 다른 뮤지컬만큼의 큼지막한 임팩트가 없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느낀 가장 굵직한 사건은 엘리자벳이 억압받는 처지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순간, 그리고 아들이자 황태자인 루돌프가 아버지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다가 끝내 어머니의 인정마저 받지 못하고 자살하는 순간 두 가지였다. 그러나 남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대공비 소피에서 벗어난 엘리자벳은 사실상 주체적으로 살았다기보다는 몇십 년간 여행을 떠나고 자식들을 방치하는 등 사실상 주체적이라기보다는 회피적인 삶을 살았고, 황태자 루돌프가 자살하는 순간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엘리자벳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아무래도 진짜 있었던 일들을 뮤지컬로 풀어낸 작품이다 보니 큰 변화를 주지 못했겠지만, 뮤지컬로 역사 공부를 하러 온 게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러 왔던 나에게는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심심하긴 했다. 황실의 억압을 이겨내고 대단한 무언가를 해낸 것도 아니고, 황태자가 정치 체제를 성공적으로 바꿔놓은 것도 아니고, 황제 요제프와 엘리자벳이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용서하고 사랑을 되찾는 해피엔딩을 맞은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스토리를 다 보고 나서는 아니, 엘리자벳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는 거 말고는 정치적으로는 칭찬받을 만한 일을 조금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오스트리아에서는 왜 씨씨 박물관까지 만들어 둘 정도로 인기가 많은 거지?라는 크나큰 의문이 남았을 뿐이다. 실제로 다음 날 엘리자벳 황후에 대해서 찾아봤는데 정말 뮤지컬 대로 정치적으로 한 게 별 거 없어서 진짜 예쁘다는 이유 하나로 그래놨나? 하는 생각만 강해졌다.
결국 이 뮤지컬이 다른 뮤지컬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바로 '죽음'이라는 캐릭터인 것이다. 나는 엘리자벳이 황실에서 억압받는 생활을 하며 느끼는 깊은 우울감에서 비롯된 죽음에 대한 충동을 이렇게 실체화로 만들어냈다는 창작자의 시도를 매우 매력적으로 생각한다. 이 '죽음'이라는 캐릭터는 삶을 포기하고 죽고 싶어 하는 엘리자벳의 우울한 감정이나 세상에 만연한 현상으로 파악해야지, 스스로 자아를 가지고 있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결국 죽음이 엘리자벳을 갈구하며 유혹하는 것도 사실상 죽음이 아닌 엘리자벳이 죽음에 대한 충동을 느낀 감정을 의인화한 것이다. 처음 죽음이 등장했던 순간은 엘리자벳이 추락하며 목숨을 잃을 뻔했던, 죽음과 가장 가까웠던 순간. 그 이후로 죽음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은 황실의 억압이나 황제의 외도로 인해 그녀가 삶의 회의감을 느꼈을 순간들이다. 아마 황태자 루돌프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홀로 침대에 있을 때 부모 대신 죽음이 찾아왔던 것도 아이가 당시 느꼈을 회의를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시대적으로도 황제 요제프의 재위 기간은 한 나라가 분열하고 굶주리는 이들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캐릭터들 말고도 유흥 살롱이나 카페에 죽음이 어느새 나타나 모습을 드러내는 연출도 세상 사람들을 뒤덮은 무기력과 권태, 비관을 나타낸 것 같았다.
난 이러한 죽음이 무대 소품 뒤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나타나는 연출도 세상에 죽음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며, 마치 삶에 스며들듯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해서 마음에 들었다. 날개의 표현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단순히 무대 소품으로 가짜 날개를 착용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날개 하나하나를 연출해 날개가 진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주는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죽음이 걸으면 날개 또한 따라온다거나, 엘리자벳을 날개로 감싼다거나, 세 쌍의 날개가 되었다가도 아주 큰 한 쌍의 날개가 된다거나 하는 지점들. 문제가 있다면 이 '죽음'이라는 캐릭터의 표현 방식인데, 마치 다프네에게 안달 난 아폴론처럼 엘리자벳을 가지고 싶어서 안달 난 자아 있는 느낌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상이 현상을 넘어 인격체가 되어버린 느낌. 이게 또 작품 자체의 설정이 아니라, 원작은 그렇지 않은데 작품이 한국으로 넘어오며 수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죽음이 변질되어 버린 것 같아 아쉬웠다. 하필 또 비주얼적으로도 아이돌처럼 생긴 남자(나쁜 뜻 아님)를 아이돌처럼 꾸며놔서 더욱 심해지기도 한 듯. 이번에 외국에서 공연했던 엘리자베스 영상들을 살펴보니 분위기가 더 스산하고 비교하자면 오페라의 유령 같은 느낌이긴 하더라. 친구들이 죽음 캐릭터가 내 취향일 거라고 궁예한 김에(사실 맞았음. 내 발더게 캐릭터가 딱 이렇게 생김) 말하자면 내 취향 죽음은 아이돌의 순한 느낌보다는 더 스산하고 섹시하고 키가 더 커야 합니다.
나와 함께 보았던 친구들은 죽음이 나올 때마다 너무 웃겼다며······. 근데 또 그게 납득가지 않는 부분도 아니라서 다 보고 나와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포복절도했다. 하지만 엘리자벳 원작도 마지막 결말이 그렇게 끝나는지 궁금하기도 한 바이다. 솔직히 나도 엘리자벳이 암살범에게 찔리고 나서 죽음이 등장할 때, 그가 새하얀 턱시도를 차려입고 후광과 함께 걸어나오는 순간 '이거 너무 작정하고 준비한 거 아니냐. 이미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해 줄 거라고 김칫국 드링킹 완료한 사람처럼.' 싶어서 웃기기는 했으니까. 물론 그런 연출이 이미 엘리자벳이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걸 묘사한 것이겠지만 그··· 작정한 듯한 모든 조온습이 웃겼다. 친구 말대로 후반부는 좀 시들시들하게 끝날 거라 예상했었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의 화려한 등장으로 그런 것도 잊어버리긴 한 듯 ㅠ 2부부터 옆에서 죽음 등장할 때마다 너무 '아 쟤 또 나왔어 ㅋ' 같은 반응이 보여서 웃기기도 했음. 하지만 나는 그런 마지막의 과한 표현 말고는 죽음의 등장을 잘 본 편이긴 하다.
하필 이 뮤지컬 영화를 함께 본 친구들과 채식주의자에 대한 감상을 교류하고 난 이후에 봐버려서, 엘리자벳의 삶을 채식주의자 속 주인공의 삶과 많이 비교하고 대입하며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왜 황제를 택했어'라고 나무랄 수도 없을 만큼 어린 나이인 15살에 요제프와 결혼해 감금 생활에 가까운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엘리자벳. 언니와는 달리 아무런 준비 없이 자유롭게 자란 탓에 황궁은 더욱 숨막혔고, 특히나 시어머니인 대공비 소피의 간섭이 엘리자벳에게는 독과 같았다. 남편은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잠자리가 어땠는지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시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빼앗긴다. 함께 헝가리를 방문한다는 조건으로 아이와 함께 하지만 혹독한 날씨에 첫째 아이는 잃기까지 한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고통의 연속이었다. 결국 황제에게 대공비와 자신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해 자유를 얻어내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힘차게 노래한 것치고는 엘리자벳의 이후 행보가 아무래도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녀를 100% 탓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마냥 동정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상황. 그저 엘리자벳이 황궁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자유롭게 살았더라면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남을 뿐이다. 실제로 요제프에게 차이고 만 언니는 이후에 한동안 결혼을 못하다가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과의 연애결혼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세상사 참 모를 일이다.
또 다른 연출상 아쉬움이 있었다면 바로 카메라워킹인데 공연 실황 특성상 당연히 내가 원하는 장면에서 오페라글라스를 들며 시야를 조절할 수는 없지만 이번 엘리자벳 영화는 편집자의 자아가 너무 과도하게 들어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단순히 유튜브에 올라오는 클립 정도의 줌인, 줌아웃만 원했지 이렇게 과도한 편집을 원한 건 아니었다. 한 장면도 정말 여러 번 필요 이상으로 여러 각도로 보여주는 한편, 어떤 장면은 캐릭터들이 화면 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정작 그 화면 밖의 시선이 집중된 인물은 보여주질 않아서 '저 사람들 뭘 보고 있는 거야?' 싶기도 하고. 엘리자벳이 슬퍼하며 배를 띄울 때에는 굳이 떠내려가는 돛단배를 클로즈업해주기까지 한다. 저는 연기하는 옥주현 씨 얼굴이 보고 싶거든요? 캐릭터가 무대의 끝과 끝에 있을 때는 두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한 장면으로 합쳐서 보여주는데 그것도 제법 어색하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한 장면에서는 그렇게 두 사람을 확대해서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데 하필 죽음의 모습을 점차 커져가는 것처럼 편집해 놔서 엄청 이상해 보였다. 이미 친구들의 웃음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그 외에도 싱크가 안 맞는다고 느낀 지점이 다수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느낀 것 같았다. 가사도 잘 안 들리고. 유튜브 클립 영상들을 보면서 '아, 나는 다른 장면을 더 보고 싶은데 이걸 잡네'라는 생각을 그리 해본 적이 없는데 영화에서는 수 차례 등장했다. 내가 정말 대단한 영상을 원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실황만 보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편집자는 혹여나 다음에도 뮤지컬 라이브 편집을 맡는다면 제발 자신의 자아를 삭제해 주길 바란다. 유튜브 쇼츠만큼만 편집해도 평타를 칠 상황에 대체 왜 그런 짓을 해서 완성도를 깎아먹는 것인지. 그리고 싱크 안 맞는 건 진짜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웠던 건 역시나 노래. 내가 들어본 유명한 곡들이 많이 나와서 너무 좋았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라거나 '나는 나만의 것'이라거나 '그림자는 길어지고'라거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좋다고 느꼈던 음악들이 사실은 엘리자벳에 나오는 음악들이라는 걸 이제서야 제대로 알았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내가 유튜브에서 들었던 '나는 나만의 것'은 음이 엄청 높았는데 옥주현 씨는 낮춰서 불렀다는 것 정도? 음악 자체는 너무 좋았고 이 넘버가 나올 때 무대가 어떻게 연출되는지 직접 보게 되어 벅차오르기도 했다.
이런저런 연출도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이 많았다. 처음 시작할 때 마치 침몰한 바닷속에서 시작하는 듯한 연출이나, 뮤지컬의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나오는, 회전하는 무대로 보여주는 다양한 연출들, 엘리자벳의 황궁 생활을 인형극으로 연출해 그녀의 삶이 시민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과 동시에 그녀 자신은 인형이 되어버렸다는 표현, 루이지 루케니가 관객석 통로로 등장하며 엽서 따위를 뿌려 관객들마저 당시 사회가 황실의 가십을 소비하는 것처럼 작품 속에 포함시키는 설계 등등.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이전에 말한 죽음의 날개 연출과, 황태자 루돌프가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무릎 꿇은 채 노래를 부를 때, 거울 속에서는 마치 어머니를 앞에 두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출. 이때의 장면이 커튼으로 만들어진 어머니의 실루엣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도 좋았다. 루돌프가 심적으로 어머니에게 얽매여 있다는 게 보이는 것 같아서.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다 좋았다. 옥주현 씨는 사실 처음 어린 엘리자벳의 모습으로 나올 때는 배역의 적합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는데 대표 넘버를 부를 때 왜 엘리를 맡았는지 알겠다, 싶었다. 2부에서 나이를 먹은 이후에 목소리 톤이 바뀐 것도 좋고 무엇보다 연기에서 묻어나오는 삶에 대한 권태가 명확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미지 상으로는 이지혜 씨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내가 '옥주현=댄버스부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을지 몰라도.
특히 대공비 소피를 맡으신 주아 씨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비록 그녀는 악역을 맡았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 무대를 압도해버릴 만큼의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에 반해 요제프는 정말 뭘까? 완전 키링남······. 근데 엄마 말 잘 듣고 쓰레기······. 엘리자벳이 각성하고 다가오지 말라고 손짓할 때는 키링남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더니 외도는 함······. 결국 가장 불쌍한 건 루돌프였다. 나는 혁명이 좋은데······. 황태자 신분임에도 고착화된 위계질서를 깨부수려 했던 시도가 좋았는데 결국 자살해서 안타까웠다. 그런데 자살 연출이 와우. 이거 정말 오타쿠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나와서 서치해보니 두 남정네를 그려둔 팬아트가 꽤 많았다.
엘리자벳이 제국의 마지막 황후라는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건 알겠지만 사실 그녀의 삶만 놓고 보면 그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다. 황궁에서의 고통, 자녀마저 외면하고 회피형 생활하다가 피살.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엘리자벳이 겪은 고통이 단순히 고부갈등으로만 압축되었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었는데 원작을 모르니 무어라 말을 얹지는 못하겠고.
아무튼 다시 보겠느냐고 묻는다면 흠. 노래는 참 좋아서 음악만 다시 듣고 싶다. 죽음 연출도 다시 봐보고 싶긴 하지만(그놈의 날개) 그걸 위해 17억을 태우고 싶진 않다. 나중에 OTT에 들어오면 그때나 다시 보고 공연 자체는 보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연출과 시대상의 화려함, 그리고 음악은 취향이었으나 다소 밋밋한 스토리가 3시간을 투자하기에는 아까운 느낌이었다. 그러니 EMK는 어서 엘리자벳 오슷을 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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