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드라큘라」 관람 후기 (2024. 2. 17. | 신성록, 아이비, 박은석, 임준혁, 최서연, 김도하)
REVIEW/PERFORMANCE·EXHIBITION REVIEW 2024. 7. 30.
뮤지컬 드라큘라를 보고 왔···었다. 무려 프랑켄슈타인을 보기 5개월 전에. 왜 후기 쓸 생각을 안 했는지, 진작 썼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내용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해서 얼마 기억나지 않는 내용이라도 가지고 감상을 쓰려 블로그를 켰다.
드라큘라는 2021년 뉴욕에서 뮤지컬을 연속으로 보고 온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뮤지컬이었다. 원래는 드라큘라가 공연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드라큘라라는 소재 자체에도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자신이 표값을 내줄 테니 함께 보러 가자는 제안을 해줬다. 그 비싼 뮤지컬인데 당연히 봐야지!! 게다가 최근에는 뱀파이어가 나오는 TRPG 룰을 많이 플레이했더니 예전처럼 드라큘라 노관심. 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뮤지컬에서는 어떻게 흡혈귀를 묘사하는지 궁금했고 어딘가에 참고할 생각 만만이었다.
드라큘라에 관심이 없었던 건 단순 소재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오리지널 팀'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국 작품이면 외국 오리지널 팀이 내한했을 때나 봐야하지 않냐는 얄팍한 생각······.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ㅋㅋ ㅠ. 그런 의미로 드라큘라는 내 편견을 깨 주고, 이후로도 다양한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게 해 준 작품이다. 드라큘라가 아니었더라면 얼마 전에 본 프랑켄슈타인에도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또한 다 내가 드라큘라를 너무 재밌게 보고 왔기에 가능해진 일들이었다.
내가 본 드라큘라 배우 캐스팅
마침 딱 두 분이서 찍은 포스터가 있다!
캐스팅은 나의 선택권이 없었는데, 애초에 엄마가 드라큘라를 보러가자고 했던 이유가 친한 친구분이 드라큘라 재밌다고, 신성록 너무 잘한다고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드라큘라는 무조건 신성록으로 봐야 했고, 엄마와 내가 되는 일정을 맞추다 보니 신성록&아이비 조합으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쓰면 마치 원치 않은 캐스팅을 보게된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당시에는 어떤 배우가 배역을 맡든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때이기도 했고(옥댄버 제외) 막상 뮤지컬을 보았을 때 두 배우 다 너무 노래를 잘했기 때문에. 아이비 씨는 지금 생각해 보면 가수 출신이라서(아이돌 출신이 아니긴 하다) 만약 내가 현시점에 드라큘라를 예매한다고 하면 색안경 끼고 피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분도 그냥 본투비 뮤지컬 배우처럼 노래를 잘하셨다는 거.
신성록 배우도 노래를 참 잘했다. 사실 위층 자리여서 연기가 그렇게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는데, 정말 그 먼 거리에서도 우월한 기럭지는 너무나도 눈에 잘 들어왔다. 드라큘라가 긴 코트를 휘날리며 등장하거나 사라지는 연출이 꽤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신성록 씨의 장신의 몸이 너무 잘 들어와서 좋았다. 역시 남자는 키빨이구나. 찾아보니 키도 키지만 워낙에 다리가 긴 체형에다가 늘씬한 편이라 보기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것 같다.
노래 들으러 온 뮤지컬에 웬 기럭지?? 싶지만 당시에는 꽤 인상 깊었다. 뮤지컬 배우들은 당연히 다 노래를 잘할 것이라 믿고 있었기에 누가 누구보다 잘하고 따위의 생각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2층이다 보니 얼굴도 잘 안 보여서 기럭지가 더 눈에 들어왔던 듯.
생각 외로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루시였다. 정말 잠깐 등장하고 마는 조연일 줄 알았는데 노래도 너무 잘하시고 주연급의 임팩트가 있었다. 오히려 나는 주인공인 미나보다도 루시라는 캐릭터에 더 매료되었던 것 같다.
드라큘라의 하수인인 랜필드를 연기한 김도하 배우도 미쳐버린 광인의 모습을 너무 잘 연기했다. 주인에게 맹목적인 광기를 너무 생생하게 잘 살리셨었다.
반 헬싱과 조나단은 위의 두 조연보다 비중이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내 눈에는 드라큘라의 순애를 방해하는 장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히 임팩트가 크지 않은 캐릭터들이라서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물론 두 분 다 노래를 잘하셨지만!! 신기한 건 반 헬싱을 맡은 박은석 배우가 예전에 드라큘라 역할도 맡았었다는 것이다.
감상 후기
엄마랑 점심식사하고 휘리릭 캐스팅보드만 대충 찍고 들어간 드라큘라. 지금 보니 루시에 대놓고 섹시한 뱀파이어 사진이 걸려 있는데 이때는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알아서 스포당하지 않았다는 점이 웃기다.
뮤지컬을 보러갈 때면 왜 항상 그전 시간에 너무 바쁜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안으로 들어가 앉은자리는 2층 중블 9열, A석이었다. 무대 전체가 한눈에 보이지만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을. 그때는 어차피 볼 예정도 없던 뮤지컬 공짜로 보게 되었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는 것이지.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첫 시작에 스크린 영상이 있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후에 그런 영상을 몇 번 비춰주는 떄가 있었는데 프랑켄슈타인 후기에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이런 연출을 엄청 좋아하진 않는 듯. 하지만 그거 안 쓰고 거대한 모형 배를 무대에 올린다면 제작비가 엄청 올라가겠지?
시작은 조나단이 드라큘라의 새로운 변호사로서 그의 저택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떄만 하더라도 나는 신성록이 대체 누군지 당최 알아볼 수가 없었다(ㅋㅋㅋ). 드라큘라라는 뮤지컬에 대해 정말 조금의 지식 없이, 오로지 들어보기만 했던 'Fresh Blood' 넘버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드라큘라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몰랐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와 엄청 늙은 남자가 함께 나오는데 가뜩이나 신성록 배우의 목소리도 잘 모르고 좌석이 좋지 않은 자리다 보니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관심을 탑재하지 않고 보게 된 뮤지컬이라 오페라글라스는 나와 떨어진 자리에 앉은 엄마에게 줘버렸고. 그래서 저 늙은 목소리가 드라큘라인지? 아니면 지금 막 방문한 청년이 저 늙은이한테 물려서 드라큘라라는 존재가 되는지? 한참을 알지 못하고 쳐다봤다. 이후에 Fresh Blood를 부르기 시작하고 나서야 알아봤나? 아니면 그 이전인가? 너무 오래되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자주 들었던 광기의 뮤지컬 넘버 모음 플리에 Fresh Blood도 포함되어 있어서 이 노래를 자주 들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초반 넘버여서 이것도 제법 놀라웠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클라이맥스 정도에나 나오려나 싶었던 노래라서. 그리고 생각보다 연출이 너무··· 야했다. 여자 조연들이 헐벗은 조나단 몸을 만지고 난리가 났다. 차라리 엄마와 좌석이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었을 수도? 처음에는 이 조연들도 흡혈귀일까 싶었는데 나중에 루시를 '첫 창조물'이라고 일컫는 걸 보면 흡혈귀보다는 저급한 존재인 듯. VtM적 사고를 해보자면(ㅋㅋ) 구울에 가까우려나 싶지만 그렇다고 인간은 아닌 것 같아서, 아마 발더스 게이트 3의 아스타리온처럼 뱀파이어 스폰 정도의 위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늙은 노인이었던 드라큘라는 조나단의 신선한 피를 마시고 다시 젊음을 되찾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노래를 들으니, 피를 마시고 나서 젊어지는 목소리가 더욱 확연히 느껴졌다. 분명 몇 번이고 들었던 노래인데 아무 생각없이 흘려듣다 보니 이전까지는 목소리의 변화를 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중에 유튜브로 같은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부터는 흡혈 이전과 이후의 목소리가 다르게 느껴지더라.
정말 피를 마셔서 젊음을 취하는 노래 하나만 제대로 알고 갔었기 때문에 드라큘라가 이런 절절한 사랑 이야기일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랑하던 아내가 죽어버리고 만 좌절감에 신을 저주하고 햇빛을 보지 못하며 영생을 살게 된 드라큘라. 가뜩이나 나는 요즘 뱀파이어가 나오는 TRPG 룰을 플레이하고 있다 보니 다른 인간들보다는 드라큘라의 감정에 극히 이입하게 되었다. 내가 특히 심했을 뿐이지, 드라큘라가 안고 있는 가슴 아픈 사연과 주인공 보정으로 우리 엄마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드라큘라를 불쌍하게 여겼을 듯? 거기에다 나는 절절한 짝사랑을 하고 있는 뱀파이어 캐릭터를 가지고 놀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자길 좀 봐달라고 무릎 꿇고 애절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뮤지컬에 나오는 신은 또 왜 이렇게 불공평하고 얄미운지 모른다. 늘 신을 신실하게 믿고 신을 위한 전쟁까지 참가해 몸과 마음을 바쳤는데 정작 돌아온 것은 아내 엘리자베스의 죽음뿐. 사랑하던 소중한 사람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는데 제정신을 잃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고작 십자가에 칼을 꽂고 교회를 부수었다는 이유로 드라큘라는 뱀파이어가 되어버리는 저주를 받았다. 진짜 평생동안 신을 믿었어도 그 잠깐의 순간으로 햇빛을 보지 못하는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옹졸한 마음인지? 사실 나는 요즘 워낙 뱀파이어 캐릭터를 많이 가지고 놀고 있어서 이게 최악의 저주? 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드라큘라는 엘리자베스를 그리워하며 수백 년을 살아가게 된다. 무릇 생명이라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들이 있을 테니 스폰과 랜필드 같은 자들을 부리는 것도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지 않나. 어차피 인간도 시종을 부리고 동물을 부리는데 말이다. 저 너무 뱀파이어적 사고만 하나요? 하지만 몇백 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드라큘라의 슬픔과 고독이 너무 절절해서 편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단 말이다. 영겁 같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된 교류도 하지 못하고 트란실바니아의 어두운 저택에 처박혀 세월을 보내다가 엘리자베스의 환생인 미나를 맞닥뜨렸을 때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지. 정말 오랜 기간을 보내고 나서야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인데, 심지어 완전한 남남도 아니고 오래전 사랑했던 사이인데, 당연히 사랑하는 이를 손에 넣고 싶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운명적인 만남까지 이루어질 정도의 인연이라면 응당 뱀파이어와 미나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런지 처음 드라큘라가 조나단의 피를 흡혈만 하고 목숨을 붙여둔 게 너무 아쉬웠다(?). 물론 그렇게 됐더라면 스토리를 짤 수 없었겠지만. 괜히 조나단이 살아 있으니 미나가 드라큘라와 조나단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들어버렸잖아. 조나단만 없었더라도 미나가 주저하다가 결국 좀 더 쉽게 드라큘라를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드라큘라가 예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미나 또한 제 전생의 과거를 어렴풋이 깨달을 때 나는 제발 미나가 저렇게 절절한 애정을 보내오는 드라큘라를 선택해주길 바랐지만 조나단을 선택하더라. 조나단이 없었더라면······!! 하고 아쉬워하게 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미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약혼자랑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흡혈귀가 나타나서 자길 사랑한다고 하는 꼴이니, 어느 정도 기억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드라큘라를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말이다. 왜 사랑은 주는 만큼 보답받기 어려운 감정인지 ㅠㅠ
이후로 내가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미나와 조나단의 결혼식이 바로 이어지고, 드라큘라는 결혼식에 제대로 참석하지도 못한 채(당연한 거겠지만) 먼 발치에서 결혼식을 바라보다가 루시 대신 부케를 받고 자리를 떠난다. 사람들의 무리에 어울리지도 못한 채 외롭게 서서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와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다가 쓸쓸하게 퇴장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다.
드라큘라는 미나의 친구 루시를 물어버리고, 죽음을 맞이한 듯 보였던 루시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 무덤에 나타나 그녀를 다시 부활시킨다. 그때 루시와 함께 부르는 노래, life after life가 너무 좋았다.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루시는 노래도 너무 잘 부르고 매력적이었다. 사실 나는 착하고 순하기만 한 느낌의 미나가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에 루시에게 더 마음이 갔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어? 드라큘라가 좋다는데.
이야기가 나온 겸 캐릭터에 대해 말한다면 위처럼 미나는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고, 반 헬싱과 조나단도 특징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워낙 주도적인 캐릭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루시가 더 좋았고(같은 말 반복) 랜필드는 캐릭터가 좋다기보다는 배우의 열연이 너무 진짜 같았다. 랜필드는 뱀파이어 스폰 같은 존재도 아닌 것 같던데, 영생을 위하여 드라큘라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다면 역시 VtM의 구울 같은 존재 아닐까 싶기도?
드라큘라는 행동 하나하나에 과거 왕자 출신이었으며 몇 백년이나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오만함과 고풍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그러면서도 미나에게는 한없이 여린 모습을 보이는 점이 나의 무언가를 자극했다. 그에 더해 내가 저번 프랑켄슈타인 후기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신에게 대항하려고 발버둥 치는 인간 캐릭터를 참 좋아해서 십자가에 칼을 꽂아버린 것만으로도 마음에 들었었다. 등장하거나 퇴장할 때 긴 코트를 휘날리는 연출이 정말 오타쿠 같고 좋다;;
이런 스토리를 통해 1부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내용은 잘 몰랐지만 어떤 뮤지컬에 수록되었는지도 모르고 들었던 플레이리스트에서 접한 노래가 엄청 많았다. 전반적으로 뮤지컬에 수록된 넘버들이 대체로 마음에 들었다. 드라큘라가 부르던 넘버든, 미나가 부르든 넘버든간에. 1부만 보고 나서도 진짜 머리 뜯다가 머리털이 다 빠져버릴 것 같았다. 제발 드라큘라가 마음껏 사랑하게 해 주면 안 될까요!?!? 하고 홀로 부르짖다가 다시 2부를 보러 들어갔다. 엄마에게서 오페라글라스까지 가져와서.
2막의 내용은 본격적으로 루시와 드라큘라를 사냥···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개 멋있게 다시 살아났던 루시는 2막에서 약혼자였던 상대의 손으로 죽게 된다. 뱀파이어는 사랑하는 이의 손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정 때문에 그렇게 죽은 거라는데, 뮤지컬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고 과연 소설 원작에 이런 내용이 나올지 확인을 좀 해봐야겠다.
인간들도 자기네들에게 피해를 끼친 부분이 있으니 드라큘라를 죽이려 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면 우선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만든 신부터 탓해야 하는 게 아닌가. 드라큘라에게 감염되어버린 미나와 드라큘라의 정신은 이어져버리고, 미나를 지키려 하는 이들은 이어진 정신을 이용해 드라큘라를 추격해 죽이려 한다. 하지만 저택까지 쫓아온 이들은 드라큘라의 힘에 당해내지 못하고, 애꿎은 반 헬싱의 부인인 줄리아가 반 헬싱의 손에 살해당한다. 반 헬싱이 드라큘라에게 네가 죽였다며 탓할 때, '의도한 게 아니었어'라고 중얼거리던 드라큘라의 목소리에서 그가 과연 무자비하게 인간을 조종하고 학살하는 괴물 같은 존재이기만 했을까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진짜 극을 보는 내내 생각했던 거지만 이거 드라큘라의 이야기도 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진짜 너무 불쌍한 캐릭터다. 한 순간의 감정에 흔들려 십자가에 칼 꽂았다고 수백 년을 고통받고, 다시 만난 사랑에게도 거절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들면 누가 '오케이~' 하고 받아들이겠는가. 뱀파이어도 생명이다! 존중 좀 해줘라!!!
하지만 인간들이 저택까지 쫓아온 것도 무색하게 그들을 어렵지 않게 물리치던 드라큘라는 결국 심경의 변화가 생기고 만다. 자신의 이런 행동이 과연 미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생겨버린 것이다. 왜 의문을 가져······. 둘이서 평생 사랑하면서 영원히 살면 되잖아. 신과 구원이 그렇게 중요한 거냐고!! 정말 기독교 중심적인 뮤지컬인 것 같아······.
결국 미나는 드라큘라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드라큘라와 함께 살겠다고 말하지만··· 이미 드라큘라의 마음은 변해버린 이후였다······. 아마 드라큘라가 생각한 게 맞겠지. 스토리적으로도 아마 드라큘라와 미나가 둘 다 뱀파이어로서 살아가게 된다면 좋은 그림이 안 나왔을 수도 싶지만··· 그냥 둘이 오손도손 살면 안 되는 거였냐고. 미나가 사랑한다고 해줬는데도 됐다고 하면서 미나를 놓아줄 필요가 있었냐고. 진짜 답답해 죽겠어··· 특히 나는 로맨스에서의 새드 엔딩을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라 더 그랬다. 미나야 그냥 진작에 드라큘라가 좋다고 하지 왜 '이러면 안 돼'라는 생각을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거니······.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 한들 뮤지컬은 정해진 극본을 따라 진행될 뿐이다. 드라큘라는 십자가를 찔렀던 검을 미나의 손에 들려주고 자신의 심장을 찌른다. 그가 들어간 관이 천천히 바닥에 눕혀지고, 미나는 이제 그를 용서해 달라고 신에게 간청하며 극은 끝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게 된 뮤지컬이었기에 공연을 감상하고 난 후유증이 더 심했다. 정말 이게 최선이었나?? 저렇게 사랑하는데 햇빛 좀 못 보고 피 마셔야 하는 게 뭐라고!! 물론 내 일이 아니라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겠지만 드라큘라는 결국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슬픔과 외로움에 오랜 시간 고통만 받다가 잠든 느낌이라서 더욱 그의 인생이 쓰라렸다. 안식을 얻었다? 만약 신을 위한 전쟁에서 엘리자베스가 죽지만 않았어도 두 '사람'은 아무런 문제 없이 편히 살다가 함께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가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발생한 인명피해들은 결국 그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신 때문이다. 만약 십자가에 칼 꽂은 꼴이 그리도 보기 싫었으면 전지전능한 힘을 이용해 드라큘라를 그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었겠지만 신은 그러지 않았다. 정말··· 신에게 농락당한 기분이다.
이쯤 되니 키르케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오른다. 신은 괴물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괴물이 인간에게 해악을 끼칠수록 절망에 빠진 인간들은 신을 위해 더 많은 공물을 바치고 그들을 더욱 추앙하기 때문이라고.
미나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드라큘라는 행복했을까? 반대로, 원치 않게 드라큘라를 찔러야 했던 미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조나단과의 결혼생활 속에서 그림자를 볼 때마다 한때 그녀를 몇 백년이나 사랑했고 끝내 그녀를 위해 죽음을 맞이했던 드라큘라를 잊을 수 있을까? 나조차도 미나를 올려다보던 드라큘라의 애절하고 비참한 노랫소리가 선한데, 눈앞의 즐거움만을 바라보고 인생을 기뻐할 수 있을까.
사랑은 좋다. 하지만 슬픈 사랑은 싫다. 나는 여전히 드라큘라를 선택한 미나가 영생을 누리는 뱀파이어가 되어 그와 함께 새벽을 향해 춤추고 사랑하는 순간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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