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유럽 여행] #5.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아트마켓, 야바위 도박 사기, 베를린 돔, 텔레비전 탑, 학센 맛집 슈텐디게 페어트레퉁(Ständige Vertretung)
TRIP/2023 독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2023. 10. 22.
[독일 동유럽 여행]
#5. 베를린: 박물관 섬 아트마켓, 야바위 도박 사기, 베를린 돔, 텔레비전 탑, 학센 맛집 슈텐디게 페어트레퉁(Ständige Vertretung)
2023. 9. 24.
페르가몬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화창했고 사람들도 아침보다 훨씬 많아졌다. 어두침침하던 베를린에 활기가 돌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을 지나 계단을 내려오자 클래식 음악이 들렸다. 한 아저씨가 다리의 돌 난간에 걸터 앉아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클래식이 함께하는 길거리에서 내가 정말 유럽 여행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아트 마켓
이른 아침만 해도 분주하게 준비중이었던 마켓이 강변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저 노점상 몇 개가 여는 줄로만 알았는데,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이렇게 박물관 섬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아트 마켓이었다.
전시품들이 잔뜩 있는 박물관섬에서 열리는 아트마켓이라니.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위치였다. 물론 이런 곳을 버려두고 갈 이유는 없으니 구경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화 작품도 많았지만 실용적인 물건들도 많았다. 액세서리라거나, 파우치라거나, 가방이라거나. 여행자들을 위한 기념품도 팔고 있었고 말이다. 생각보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홍대 앞에서 열리는 마켓이랑 비슷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가게. 귀여운 고양이를 테마로 이것저것 굿즈를 판매하고 있었다.
인스타 아이디는 RYOKO_NAGARA 였지만 일본분은 아니셨다.
나는 고양이가 왜 이렇게 좋을까? 결국 베를린 느낌이 물씬 나는 고양이 엽서를 몇 장 샀다.
엽서를 사고 나서 촬영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는데 액션캠을 들고 있으니 유튜버냐는 질문을 들었다. 이 액션캠 덕분에 유튜버냐는 이야기 정말 은근하게 자주 들은 것 같다.
나보고 일본에서 왔냐고도 했는데 한국에서 왔다 하니 미안해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물어볼 거라면 그냥 어느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봐주세요!!
이 귀여운 고양이 가방도 사고 싶었는데 가게 주인도 안 보이고 생각보다 천이 얇아서 포기. 지금 봐도 귀엽긴 귀엽다.
뒤로 베를린 돔이 보이는 아트마켓. 베를린은 비교적 유럽 느낌이 덜한 도시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온 나는 이런 것만 봐도 유럽 느낌이 물씬 나서 부러웠다.
뒤늦게 발견했던 안내 간판. 아트 마켓은 매주 토요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리고 있었다.
거리를 따라 이어지는 아트 마켓의 끝자락에는 커리 부어스트를 파는 노점상도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꽤나 많았다. 이날 베를린에서 커리 부어스트를 못 먹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여기에서 먹고 갔을 텐데.
야바위 사기
그리고 다리를 건너 베를린 돔으로 이동하려던 때, 다리 옆에 떠들썩하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봤다. 자세히 보니 소위 야바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 상자 세 개 중 하나에 흰 돌을 넣고 섞어서 돌이 어디에 있는지 맞히는 게임. 사실상 놀이나 게임이 아니라 돈이 걸려 있으니 도박이었다. 나느 그런 풍경은 별로 본 적이 없어서 구경이나 할 겸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 결코 그래서는 안 됐다. 여기서 돈을 잃고 왔으니까…….
옆에서 그냥 조용히 보고 있었는데 판을 주도하던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얕은 영어로 이해한 바로는 '네가 이긴다, 돈 좀 줘 봐라'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라 판을 둘러싸고 있던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부추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당시에는 '어, 어?' 하다가 지갑에 있던 돈을 건넸다. 흘러가는 분위기에 그만 휩쓸리고 만 것이다.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휩쓸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곧이곧대로 돈을 내밀었고…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상자를 골라보라는 말에 상자를 골랐고 글의 내용에서 예상이 가는 대로 그 안은 텅 빈 상자. 그렇게 돈을 잃었다. 사실 내가 내 돈 스스로 내민거니 누굴 탓하기도 참. 판을 연 사람이 상자를 섞고 건드릴 때 간간이 흰 돌이 보였는데 이게 일부러 사람을 현혹시키려고 보인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도 분위기를 유도하려고 일부러 모여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황망하게 자리에 서 있으니 한 독일인 남자가 이리 와보라고 손짓했다. 뭐지? 하고 따라갔더니 다리 위를 걸으며 다음에 저런 도박 하지 말라고, 그런 말을 했다. 아무래도 내가 거기서 도박을 더 할까봐 빼내준 모양이었다. 그 친절함에 조금 고맙긴 했지만 당시는 꽤나 혼란스러웠다.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그것도 여러 나라에 여행을 다닌 경험이 적은 사람도 아니면서. 그리고 나는 주변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1930년대의 독일에 태어났더라면 다른 사람들처럼 나치의 선동에 휩쓸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199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이라 참 다행이다).
진한 자기반성과 함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런 건 손해 없이 스스로 잘 깨쳤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친구 말대로 잃어버린 돈은 원래부터 나의 돈이 아니었다고 마음을 다잡아보려 했지만 솔직히 쉽지 않았다.
강을 건너 도착한 다리의 막바지에도 야바위꾼들이 보였다. 이것들… 상당히 자주 보였다. 분명 다 한통속이겠지? 보는데 열이 부글부글 차올랐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베를린 돔으로 향하는데 남자 둘이 말을 걸어왔다. 서양인과 아시아계 남자였는데 아까 게임 하고 왔냐고 묻더라. 어땠냐고 묻는데 이미 스트레스를 받아버린 이후라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왜 그걸 나한테 묻냐고 (아마도 차갑게) 대꾸했는데 아까 무리에 내가 끼어 있는 걸 봤던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대로 말했다. 속상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긴 했는데 '내가 한 게임이 어떤 게임이고 사람들이 막 돈을 달라고 부추겨서 줬고 돈을 잃었다'의 요지를 전하니 진심으로 위로해주었다……. 유럽에 그렇게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고, 다음에는 조심하고 베를린에서 여행을 잘 했으면 좋겠다고 다독여주었다. 그 과정에 한 명이 나를 중국인으로 알았는지 내 국적을 물어보지도 않고 중국어로 말을 거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하하.
베를린 돔
고맙다고 인사한 이후 루스트 정원으로 향했다. 이 정원 근처에 베를린 돔과 베를린 구 박물관이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고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슬프게도 내 기분은 처참하게 망가져서 비련의 주인공마냥 '난 이렇게 슬픈데 세상은 평화롭구나…….'의 감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유럽의 느낌이 물씬 나는 베를린 돔(베를리너 돔). 19세기에 세워진 성당이라고 한다. 사실 이 베를린 돔을 제외하면 베를린에서 유럽 느낌이 많이 풍기는 곳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행히 베를린 돔은 전쟁 당시 폭격으로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를린 돔 앞, 루스트 정원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분수. 반려견을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독일은 유독 큰 개를 선호하는 것 같았다. 건물도 크고 도로도 넓고 큰 개를 좋아하고. 독일 사람들이 보통 뭘 좋아하는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건물을 꾸미고 있는 하늘색이 꽤 독특하다. 이번 여행을 다니며 독일에 세워진 많은 건축물을 보며 생각한 바로는, 독일의 건축물들은 유독 승리와 전진의 느낌이 강하다는 것? 대체로 조각상들이 다른 나라의 조각상보다 더 힘차보였달까.
베를린 돔의 뒤편으로 보이는 저 뾰족한 탑은 텔레비전 탑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남산타워 같은, 독일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 높이가 상당한 탓에 굳이 방문할 계획이 없더라도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다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베를린 돔으로 가까이 가는 길에 또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왔다.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서명을 부탁했는데 그냥 서명이나 해주고 갈 길 가야지 하는 마음에 서명을 해주었더니 후원 강요를 시작했다. 가뜩이나 돈도 잃고 왔는데! 내가 지금 돈을 잃어서 돈이 없다, 이러면서 거절을 하니 다른 곳에서 잃고 온 게 자기랑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오히려 역정을 냈다. 그나마 여자여서 무섭지는 않았는데, 다른 곳에 서 있는 여자까지 불러오더라. 하여간 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하구나. 무시하고 갈 길을 갔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 입구의 아치도 상당히 정교하게 꾸며져 있었다.
입장을 할까 고민하다가 외관만 보고 내부는 건너뛰기로 했다. 시간도 없었고 기분도 영 내키지 않았다. 큰 돈을 잃고 왔는데 여기서 돈을 더 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루스트 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유럽은 대체로 이렇게 사람들이 앉아서 쉴 공간이 많다는 점이 참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카페를 가지 못하면 이야기를 나눌 공간조차 찾기 힘든 현실이니까.
독일에서 유독 많이 볼 수 있었던 시베리안 허스키. 독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견종인가보다.
베를린 돔으로 떠나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발견했던 정체불명의 조형물.
여행을 떠나기 전, 예전에 베를린에 다녀왔던 지인이 베를린을 두고 '혼란스러운 도시'라고 지칭했던 때가 생각났다. 정말 혼란스러운 조형물이었다. 유럽의 양식도 아니고, 대체 어디의 문물인지 모를 조형물이 왜 길거리에 떡하니 세워져있을까? 싶었는데,
알고보니 조형물 뒤편의 건물이 아시아 미술 박물관이었다.
ㅎㅎ 또 어디선가 약탈해 온 물건들이겠죠?
레스토랑으로
미리 예약해두었던 레스토랑 슈텐디게 페어트레퉁Ständige Vertretung의 예약시간이 다가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알렉산더 광장은 시간이 많지 않아 관광을 패스하려고 했는데, 베를린 돔 근처에서 바로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이 없는지 알렉산더 광장역까지 향해야 했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동선인가?
그렇게 열심히 걷기 시작한 거리. 날씨는 참 좋았다. 가는 길에도 몇몇 야바위꾼이 보였다.
길을 가다가 보았던 기념품 샵. 베를린의 상징 동물은 곰이라고 한다. '베를린(Berlin)'이라는 이름 자체가 '어린 곰'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사실 대부분이 가설이고 확실한 답안은 없는 것 같았다.
텔레비전 탑도 가까이 갈 생각이 없었는데 동선 때문에 점점 나의 시야에 크게 들어왔다. 탑 앞에 보이는 작은 교회는 고딕 양식을 갖춘 마리엔 교회다. 구글 지도에는 St. Mary's Church라고 표기됐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동베를린의 붉은 시청.
아침에 보았던 거리보다도 훨씬 더 광활해보이는 차도. 베를린의 차도는 이런 경우가 정말 많았다. 거의 공터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너비로 설계되어 있었다.
이런 도로의 구조가 텅 비어보이는 베를린의 느낌에 일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횡단보도의 신호등도 상상 이상으로 빨리 바뀌면서 도로는 넓어서, 초록불로 바뀌는 순간 정말 바쁘게 걸음을 옮겨야 했다.
교회의 앞을 지키고 있던 루터의 동상을 지나 역으로 이어지는 정원으로 향했다.
공원의 중심에 세워진 아름다운 분수. 그리스 신화의 넵튠을 조각한 바로크 양식의 '해왕성 분수'로,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수라고.
분수와 그 앞의 붉은 시청. 주변에 사람들도 꽤 많았다(사진상에는 많아보이지 않지만….)
마리엔 교회를 지나 쭉쭉 이동했다.
결국 가까이 와버린 텔레비전 탑. 생김새야 뭐 큰 감흥이 없지만, 냉전시대에 동독의 방송 송수신탑으로 선전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꽤 흥미로웠다.
어딜 가나 광활하다는 느낌이 드는 베를린 시내.
알렉산더 광장역(Alexanderplatz Bahnhof)
U반을 타기 위해 알렉산더광장역에 도착했다. 이날은 베를린 시내를 전부 돌아볼 생각이었어서 전날 트램을 탈 때 24시간권을 끊어뒀으므로 교통권 걱정 없이 바로 역으로 올랐다.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역과 지하철(지상철?).
해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떄에는 언제나 방향을 주의깊게 확인하게 된다.
U반에 올라타 구경한 시내 정경.
금방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 내렸다.
독일은 역에 샌드위치 등을 파는 가게가 참 많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는 동안 어디선가 지린내가 났다. 이게 다 화장실이 많이 없어서겠지. 우리나라를 사랑하게 된다.
역 앞을 흐르는 슈프레 강도 아침에 느꼈던 우중충한 분위기를 깨끗이 벗었다. 강가를 따라 음식점의 야외 좌석들이 즐비했고,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이 다녔다.
강을 건너 바삐 음식점으로 향했다.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는 분위기가 참 부럽다. 이것도 다 땅이 넓어서 가능한 거겠지? 우리나라, 특히 상권이 몰려 있는 서울의 가로수길 같은 곳은 차가 지나다니기도 힘든 게 현실이니까. 게다가 매연까지 생각하면 한국에서는 그다지 야외에서 식사를 하고 싶지 않다.
베를린에서의 첫 끼, 학센으로 유명한 슈텐디게 페어트레퉁(Ständige Vertretung)
이 때까지 베를린에서 단 한 번도 식사를 하지 않았던 나. 드디어 첫 끼를 먹으러 슈텐디게 페어트레퉁(Ständige Vertretung)에 도착했다. 당시 나는 유럽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있는 수준이었는데, '어차피 맛집에 줄 서봤자 맛없을 건 뻔하니 아무데나 가서 먹자' 싶다가도, 음식을 너무 좋아하는 나로서는 또 음식점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고 싶진 않았나보다. 결국 여행 준비를 하면서 온갖 음식점을 다 찾아보고 갔는데, 실제로 베를린에는 괜찮은 음식점이 몇 없어 보이기는 했다.
이곳저곳 열심히 찾아본 결과 가장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은 Zur Haxe라는 독일 음식점이었다. 맛도 훌륭하고 가장 걱정스러운 문제 중 하나인 인종차별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리뷰도 없었다. 다만 지도로 찾아보니 홀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가 시간이 많았더라면 당연 이곳으로 갔을텐데 베를린 체류일이 하루밖에 없는 빡빡한 스케줄에서 도저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 도심에서 30분 이상 떨어져 있는 음식점에 갈 수가 없었다.
이런 문제로 베를린 시내에 한정해 고른 음식점이 슈프레 강 옆에 위치한 슈텐디게 페어트레퉁이었다. Zur Haxe보다 평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정도로 만족하기로 하고 야외 테이블을 예약했다.
메뉴판을 자세히 볼 것도 없이 라들러와 학센을 시켰다. 여행을 준비할 때만 엄청난 계획형이 되어버리는 나는 여행을 가기 전 어떤 음식을 시킬지까지 다 정해두고 갔었기 때문에.
원래는 러시아수프라는 Soljanka도 시키려고 했는데 '돈도 잃었는데 무슨 사치를 부려' 싶은 마음에 슈바인학센만을 시켰다. 다들 학센의 양이 많다고 해서 양이 부족할 것 같지도 않았고. 라들러는 레몬 맛이 첨가된 맥주라고 하는데, 이곳 라들러가 맛있다고 해서 골랐다. 술을 잘 안 마시는 나로서는 일반 맥주보다 과일향이 첨가된 라들러가 나을 것 같기도 했고.
유럽의 음식점들은 우리나라나 미국처럼 손님이 웨이터를 부르는 방식이 아니라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라 하염없이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례를 심심찮게 접했는데(거기에 인종차별까지 더해지면 고의로 주문을 안 받으러 오기도 한다고.), 다행히 이곳은 직원이 금방 주문을 받으러 와 주었다.
그리고 음식또한 금방 나왔다. 아무래도 미리 만들어둔 학센을 파는 것 같은데? 코스터와 라들러 잔, 그리고 학센 접시까지 전부 다 레스토랑에서 자체 제작한 식기였다. 메뉴판을 보면 굿즈까지 팔고 있기도 했다.
독일 전통 요리인 슈바인학센. 튀긴 족발 요리에 가깝다. 한국에서도 먹어보고 싶었던 메뉴였는데 이걸 본토에서 먹게 되었다. 다들 그렇게 양이 많다 많다 하더니, 솔직히 말해서 음식을 눈 앞에 두고 보니 그렇게 양이 과하게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이번 여행을 다니며 물보다 더 많이 시켰던 맥주. 어쩔 수 없다. 가격이 그게 그거라서 물을 시키면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
내가 앉은 야외 테이블은 아쉽게도 강변이 아니라 가게 앞, 도로 옆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강의 경치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쪽 자리는 다 만석이었다.
사진을 찍고 있으
니 금세 조금 흐릿했던 하늘이 걷히며 화창해졌다.
내가 시킨 슈바인학센은 머스타드 소스와 양배추 절임인 자우어크라우트, 그리고 감자가 함께 나왔다. 독일에서 먹은 음식에는 감자가 정말 빠지지 않고 나오기 일쑤였다. 그렇게나 감자를 좋아하는 독일인이지만 처음부터 감자가 대중화된 음식은 아니었다고 한다. 일부러 감자를 귀족만 먹을 수 있는 식재료로 제한하는 방식을 이용해 감자의 가치를 높인다음 대중화시켰다고 한다.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어지는 법이긴 하지.
자우어크라우트는 시큼한 맛이 강한데(sour!) 이게 또 느끼한 슈바인학센과 찰떡궁합이다.
맛이 꽤 강하고 짜긴 하지만, 이 새콤한 맛이 없었더라면 느끼한 부위인 족발을 튀기기까지 한 슈바인학센을 많이 먹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느끼해서 몇 입 먹고 금세 질려버리지 않았을까?
학센은 족발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친숙한 맛이었다. 지금 내가 찍었던 학센 사진을 보아도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는데… 어떻게 이걸 둘이서 먹고 남길 수가 있는 걸까?
처음 내가 썰어먹기 시작한 부위는 살코기 부위였다. 그 때문에 기름기가 덜하고 조금은 퍽퍽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부위였는데, 뼈를 돌려 반대쪽을 먹으니 그부분은 또 기름기가 많고 껍데기가 있는 부분이었다. 덩이 하나가 크다보니 이곳저곳의 부위가 섞여있었다.
와! 너무 맛있다!! 싶을 정도의 대단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햇살을 받으며, 활기찬 주변 분위기와 함께 한 끼 식사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무난한 맛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유럽이라는 걸 감안하면 다른 가게보다 훌륭한 맛일지도? 굳이 별점으로 따지자면 ★★★★ 되시겠다.
한 가지 힘들었던 점을 말하자면, 주기적으로 벌의 공격이 있었다는 거….… 레몬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내 라들러를 공격하려고 했다. 혹시나 쏘일까봐 쫓지도 못하고, 곤충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나는 이 점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ㅠ. 한 입 먹을 때마다 마음졸이며 먹고 벌이 접시에 앉아도 손을 휘저어 내쫓지도 못하고, 너무 무서울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길에 우뚝 서있기까지……. 야외석 식사는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결국 나 홀로 학센을 다 해치웠다. 라들러도 한 잔을 다 비웠다. 맛만 따지면 술을 안 마시는 나는 그렇게 엄청 맛있다! 까지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저 한 잔을 다 마실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훌륭한 맛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라들러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도 했다. 한국에서 마시는 거랑은 엄청 다르고, 술을 싫어하는 나조차도 음료수처럼 왕창 마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맥주는 맥주였다.
해가 직빵으로 내리쬐면서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속으로 연신 덥다는 생각을 하며 결제를 위해 직원을 기다렸다.
주문을 받을 때만 해도 금방 왔던 직원은 계산을 할 때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 왔다. 계산을 원한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데에도 한참, 알겠다고 하고 영수증을 갖다주기까지도 한참.
주문도 빨리 받고 음식도 빨리 나와서 1시간 정도면 떠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결국 계산을 마쳤을 때에는 2시 19분이었다. 계획을 짤때 음식점에 1시간 30분 정도를 잡아놔서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만 그냥 자리에 앉아 결제를 기다린 시간이 아깝기는 했다. 학센 20.90유로, 라들러 5.90유로, 총 26.8유로가 나왔는데 직원이 중간에 맛이 어떠냐고 물어봐주기도 하고 친절함도 느껴져서 팁까지 더해 29유로를 주고 왔다.
식사를 마치고 이동하는 길. 계산을 기다리며 이후의 일정을 조금 수정했다. 원래는 베를린 3대 카페 중 하나라는 Distrikt coffee를 갈까 했지만 배가 부르기도 했고 명성만큼의 맛은 아닌 것 같아 포기. 다시 역으로 향하면서 액션캠을 들고 촬영을 하고 있으니 식사를 하던 손님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슈프레 강을 다시 지나가는 길.
좋은 차를 보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슈텐디게 페어트레퉁.
역으로 향하는 길. 왠지 운동용 런닝 셔츠를 입고 뛰거나 걷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당시에는 그냥 '무슨 마라톤 행사가 있나보다' 하고 말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큰 베를린 마라톤 대회였다는 사실은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역사.
우리나라보다 쉽게 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개들은 크기 상관없이 모두 귀엽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U반을 타러 승강장으로 올라왔다.
다음은 하케쉐 회페Hackesche Höfe라는 쇼핑몰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