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유럽 여행] #4. 독일 베를린: 여행의 하이라이트, 페르가몬 박물관 관람 일지
TRIP/2023 독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2023. 10. 20.
[독일 동유럽 여행]
#4. 독일 베를린: 여행의 하이라이트, 페르가몬 박물관 관람 일지
오전 6시 30분
둘째날 아침이 완전히 밝기도 전 잠에서 깼다. 평소에는 잠이 많은 편인 나는 여행만 갔다 하면 아침에 일찍 깨고는 했다. 다시 잠이 들려 하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달아나고, 결국 침대에서 느적거리다가 원래 계획했던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같은 방의 두 명은 이미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와 다시 잠든 이후였다. 우연인지 일부러인지, 내가 있던 여성 전용 도미토리에는 함께 사용했던 네 명이 다 동양인 여성이었다. 사실 나로서는 이런 점이 편하긴 했지만 이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잘 모르겠더라.
제너레이터 베를린 미테는 각 객실 내에 화장실과 욕실이 별도로 있었다. 누구 한 명이 씻고 있어도 화장실은 따로 있어서 이용하기 편한 구조. 미국에서 하루 이용했던 도미토리처럼 층 공용 욕실이 아니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준비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최대한 조용히 씻으려고 했지만 뒤늦게 알람이 여러 번 울려버려서 본의 아닌 알람 테러를 해버렸다. 거기에다가 머리 모양을 잡느라 엄청 오랫동안 드라이기도 쓰고. 어쩌겠나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가격이 싸니까 도미토리를 이용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분명 1시간 이상 일찍 일어났으면 밖으로 나오는 시간도 그만큼 일러야 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준비가 오래 걸려서 결국 나오기로 예상했던 시간에 나오게 되었다. 오늘 안에 베를린에 있는 모든 관광지를 돌아볼 계획이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페르가몬 박물관. 내가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 된 가장 핵심적인 관광지였다. 하지만 박물관으로 바로 가기 전에 1층 로비로 내려가 건물의 구조를 구경했다.
독일에는 ㅁ 모양의 건물들이 많다. 지도를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는 구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당연하지! 우리나라는 땅도 좁아서 건물 빽빽하게 세우기도 급급한데.
이렇게 가운데에 뻥 뚫려있는 공간은 마치 건물 내 정원이나 휴게공간처럼 이용한다. 제너레이터 베를린 미테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전날에는 너무 늦은 시간 체크인하는 바람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4층에서 보면 이런 모습.
도미토리로 향하려면 입구에서 키로 인증해야 했던 제너레이터 베를린 미테. 보안이 다른 도미토리보다 확실해서 좋았다.
1층에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다. 나무 몇 그루, 쉴 수 있는 테이블과 벤치 등. 간단하게만 둘러보고 금방 빠져나왔다.
전날 찍지 못했던 숙소의 입구. 오른편에 보이는 가게가 펍이라서 엄청엄청 시끄럽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한다기보다는 음악소리 자체가 엄청 컸다.
아침의 날씨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늘에 끼어있는 구름 때문에 사진을 찍어도 영 예쁘게 나오지 않았고, 한국과는 달리 아침 공기가 쌀쌀했다.
한국에서 보고 왔던 유튜브 영상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의 도로가 엄청 넓었다. 뭐 이렇게 텅 비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거기에다가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고 하늘도 흐릿해서 꽤나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유튜버 말로는 마차가 지나다녔던 곳이라서 도로가 넓다는데, 그렇게 따지면 오스트리아의 도로도 엄청 넓어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오스트리아는 관광목적으로 말을 끄는 마부들도 여전히 많은데 말이다.
내가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독일어 중 하나인 슈트라세. 베를린 캠페인을 준비하며 용어들을 열심히 익혀뒀었는데 결국 내 머리속에 남은 건 슈트라세(도로)와 플라츠(광장)뿐이었다.
페르가몬 박물관이 세워진 박물관 섬은 강가의 작은 섬 내에 페르가몬 박물관을 포함한 베를린 구 박물관, 신 박물관 등의 박물관이 밀집된 지역이었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걸어서 10분~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얼마 걷지 않아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 강을 건널 수 있는 철제 다리가 나오고, 가까이 박물관 섬이 보였다. 섬의 끝에 세워진 보데 박물관이 보였다. 세계 2차 대전을 지나오면서도 박물관 섬이 남아 있는 건 독일 사람들에게는 참 다행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 박물관 섬에 있는 유물들이 거의 다 독일 밖의 나라에서 가져온 것들이라 좋은 일이라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어두침침한 하늘과 쌀쌀한 공기는 여행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적적함이 밀려오는 슈프레 강을 보고 있자면 바빌론 베를린이나 크툴루의 부름 베를린 캠페인의 분위기가 생각났다. 솔직히 이런 무거운 분위기가 내가 늘 상상해오던 베를린의 풍경과 훨씬 잘 어울리긴 했다. 혼란이 가득한 도시, 슈프레 강에 떠내려오는 시체들과 뒤숭숭한 정세의 흐름…….
걸음을 재촉하다보면 보데 박물관 근처에 이른 시간부터 준비중인 노점상들이 보였다. 당시에는 '유럽 사람 치고 이런 이른 시간의 주말에 일을 하다니 부지런하군.' 정도의 감상이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박물관 섬에서 열리는 아트 마켓의 일부분이었다. 보데 박물관 앞에서 셀프로 전체샷 사진도 찍고(플립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 길을 마저 걸었다.
공사라도 하는지 길을 막아둔 곳도 보이고 페르가몬 박물관의 정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찍느라 그런가 생각보다 이동 시간이 지체되어서 늦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페르가몬 박물관의 입구는 생각외로 금방 찾아갈 수 있었다. 건물의 정면은 폐쇄된 것 같아서 입구를 잘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가는 길목에 바로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향하는 방향이 표시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표지판의 화살표를 따라 계단을 올라 건물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보이는 돌사자상을 지나 미리 예약해두었던 티켓을 들고 전시실 입구로 향하자, 아래층에 있는 락커에 물건을 보관하고 오라고 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어떤 곳은 큰 가방만 보관하면 괜찮았는데 심한 곳은 허리에 매는 작은 가방마저도 다 보관을 하고 와야 했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가방과 삼각봉만 맡겨두면 되었다. 전시실 입구 앞에 서 있던 직원이 내 오즈모액션에 연결된 쇼티를 보고 이게 삼각봉인지 아닌지 상당히 고민하길래 그냥 맡기고 오겠다고 했었다.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는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입장하기도 전인데 >깨끗한< 무료 화장실이 있었다. 짐을 보관하려고 보니 락커를 이용하려면 동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어제 지폐만 챙겨들고 이곳에 왔는걸. 직원에게 유로 지폐를 꺼내들고 돈을 교환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보드게임 토큰 같은 동그란 플라스틱을 줬다. 동전 대신 그것을 사용해서 짐을 보관하고 내부로 입장했다.
페르가몬 박물관
페르가몬 박물관 내부마저도 베를린마냥 어둑한 분위기였는데, 뒤늦게 사람들이 저마다 무언가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유물 앞에 서서 검색해보니 페르가몬 박물관은 오디오 대여가 무료란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았다. 영어를 잘 못하면서도 그래도 들리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입구로 나가 직원에게 오디오 대여를 하고 싶어서 잠깐 나갔다 와도 되냐고 물으니 허락해주었다. 보통 유럽 박물관들은 이어폰 없이 오디오 기기만 빌려주는 것 같았는데 특이하게도 이곳은 헤드셋까지 함께 제공됐다. 대여를 마친 후 다시 입구로 돌아가니 직원이 패스트 트랙이라면서(ㅋㅋ) 출구 줄로 빠르게 지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페르가몬 박물관의 관람을 시작했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박물관과는 사뭇 다른 전시 방식을 보이고 있었다. 당연하다. 여기는 징글징글할 정도로 다른 나라의 유물을 밑바닥까지 싹싹 뜯어왔으니까 말이다. 괜히 박물관의 이름이 페르가몬 박물관이 아니다. 이 박물관이 페르가몬 박물관인 이유는 페르가몬 대제단을 통째로 뜯어왔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무식한 도둑질인가?
들어가면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새 모양 석상. 텔 할라프 성의 기둥으로 쓰였던 '기도의 새'라고 한다. 1층에 있는 전시실 대부분이 다 이런 식으로 큼지막한 전시품이 많고, 다 어디선가 덜렁 들고 온 느낌이었다. 많은 전시품에 오디오 가이드 표시가 붙어 있었는데, 하나하나마다 꽤나 자세한 설명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내가 계획해 둔 관람 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기에 전부 들어보진 못했다. 물론 영어의 장벽이 크기도 했다.
그런 잘 되어 있는 설명과는 별개로 다른 나라에서 떼온 유물들을 시멘트 벽에 붙여둔 모습들. 아주 그냥 건물에 붙여두었다. 보통 일반적인 박물관에서 흔히 보기 힘든, 아주 오래된 유물이었지만 과연 이렇게 취급하는 것이 옳을까 싶기도 했다…. 괜히 10년 이상의 장기 리노베이션을 하겠다고 계획한 게 아닌가보다. 부탁인데 대규모 개선 공사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보다 깔끔하게 유물들을 전시해주었으면 좋겠다.
페르가몬 박물관에 입장하면 이 크나큰 석상이 눈에 들어온다. 날씨를 관장하는 신 하다드의 석상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보면 엄청 크다. 석상의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대에 사용했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관람의 몰입감을 위한 연출이었겠지만 어디에선가 석상에 붉은 빛을 쏘고, 눈에는 흰 빛이 비쳤다. 어디에선가는 '두두두두두…….'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연출은 오히려 나에게 몰입감을 떨어트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물론 큰 유물 말고도 고대의 작은 유물들도 알뜰살뜰하게 챙겨왔단다.
꽤나 귀여웠던 토기.
다음 구역으로 향하면서 더 자세하게 보았던 돌사자. 사말이라는 도시의 입구에 있는 기둥의 받침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과 융화되었다. 이제는 페르가몬을 받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이걸….
에사르하돈의 전승 기념비. 어두운 공간에서 이렇게 붉은 빛을 쏘여주기까지 하는데 난 그냥 원래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다만 한 가지 좋았던 건 이 유물의 연출이었다. 원래는 이렇게 색이 없는 돌로 된 유물이지만,
빔 프로젝터를 사용해서 이렇게 색을 입힌 모습을 재현해주었다. 옛날 유물 중에는 원래 색이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 색이 다 바래 없어져버린 유물이 있었다고 하지 않나. 사실 이것도 오로지 색이 있는 모습만을 보여주었다면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텐데, 시간 간격을 두고 원본의 모습과 색을 덧씌운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어서 좋았던 것 같다.
알뜰살뜰하게 다 뜯어온 이 도둑들은 심지어 이슈타르 신전의 기단까지 뜯어왔다. 이 아주 거대한 돌의 표면에도 고대에 사용했던 문자가 빽뺵하게 새겨져 있었다.
비교적 예쁘게 꾸며져 있었던 공간. 이 내부도 어딘가의 내부를 재현하려고 이렇게 설계된 곳이었는데 오디오로 들은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여전히 무자비하게 벽에 붙어 있는유물들. 박물관 곳곳이 약탈의 흔적들이다.
앞에서 본 유적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 페르가몬 박물관에는 독일 고유의 유물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독일 내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이라는 점.
아주 그냥 문으로 쓰고.
청색 무늬가 들어간 벽돌이었으나 지금은 색이 바랜 상태. 벽돌 위에는 발굴 당시에 적은 듯한 표시가 있었다.
고대 쐐기 문자가 새겨진 돌. 그냥 이렇게 시멘트에다가 붙여놨다니까?
벽의 모자이크도 열심히 떼어와서 박물관 벽에 붙이고.
이슈타르 신전의 벽도 일부분 가져와서 벽에 박아두고 불빛을 쏘이고.
당시에 이걸 세우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이 유적이 약탈당해 엉뚱한 곳에서 이런 취급을 받으며 전시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지.
고대도시 바빌론의 모형. 페르가몬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 세 가지 중 하나이자 내 베를린 여행의 목표였던 이슈타르의 문은 이 바빌론에 진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문 중 하나였다. 저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정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 사실은 경제와 관련된 조항이 더 많았다고는 한다. 아니 심지어 함무라비 법전까지 이곳에 있다고!? 싶었는데,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는 함무라비 법전은 복제본이고 원본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이 약탈자들아.
아무튼, 사실 함무라비 법전에 대한 건 내용만 대충 알 뿐 나의 얕은 지식으로 책의 형태겠거니 했는데 매끈한 돌기둥에 새겨진 형식이어서 신기했다.
…그리고 대망의 이슈타르의 문.
사실 첫 번째 공간의 돌사자상을 지나가면 바로 이 바빌론으로 향하는 행렬의 길로 이어지는데 아껴보고 싶은 마음에 옆으로 빠지는 전시관부터 확인했더랬다. 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성벽과 저 멀리 살짝 엿보이는 이슈타르의 문.
지금 보면 별거 아닌 건축물이겠거니 싶겠지만 기원전에 이런 거리를 자그마치 800m 넘게 세웠다고 생각하면 엄청나지 않은가.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었겠지?
잠깐 마주한 황당한 풍경.
편안하신가요?
행진의 거리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사자 타일을 볼 수 있다. 각 사자의 생김새는 각기 다르다. 페르가몬 박물관의 행진의 거리에서는 사자 타일만을 볼 수 있었는데 원래는 무슈후슈나 황소 벽돌 타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타일들은 페르가몬 박물관뿐만 아니라 루브르,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이라크 박물관 등 각지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 행진의 거리를 지나 앞으로 나아가면 대망의 이슈타르의 문이 나온다.
사진으로도 잘 담기지 않는 거대한 크기. 라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좁은 공간에 쑤셔넣은 터라 카메라 각도가 제대로 안 나오기도 했다.
워낙 나는 이집트 문명 등의 고대 문명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지식이 많지는 않아서 이슈타르의 문은 베를린 캠페인 후에 알게 된 문이었다. 활자와 이미지로만 접했던 문을 직접 내 눈 앞에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식이 얕기에 여행을 가기 전 이슈타르의 문에 대한 내용을 열심히 찾아보고 갔었다. 조각된 타일은 황소와 상상속의 동물인 무슈후슈(용). 원래는 더욱 커다란 문이었으나, 이후에 나올 밀레토스의 시장문의 크기에 맞추어 설계된 페르가몬 박물관 안에 쑤셔넣느라 원본의 사이즈 그대로 복원하지 못했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실제 사이즈는 아니다. 심지어 원래는 이중문이었으나 공간상의 한계로 하나는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던가.
당시 바빌론은 푸른색 돌인 라피스라줄리를 아주 귀하게 여겼는데 성 전체를 라피스라줄리로 만들 수는 없으니 대신 도기 기술을 이용해 벽돌을 푸른 색으로 구워냈다고 한다. 거의 나무 따위로만 불을 지폈던 고대 사람들이 어떻게 푸른 색으로 구워낼 수 있을 만큼의 높은 온도를 만들어냈느냐가 오랜 기간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천연 아스팔트인 역청으로 구워낸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고.
색도 참 화사하니 예쁘다. 지금까지 이런 색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복원을 하면서 색을 덧입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일 주변의 벽돌이 비교적 깨지고 바랜 걸 보면 저렇게 진한 색은 복원하면서 색을 덧입힌 것 같기도 하다.
음. 상태의 차이가 큰 걸 보니 복원하면서 다시 색을 입힌 게 맞는 듯.
고대하던 유적인만큼 사진도 한 컷. 처음에는 외국인 분에게 사진을 부탁드리고, 조금 아쉬우던 차에 한국인 분들을 발견했는데, 그분들이 먼저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셔서 찍어드린 이후에 나도 사진을 부탁했다. 역시 외국에서는 한국인끼리 사진 찍어주는 게 짱이다. 이곳에서는 외국인 분도 한국인 분도 모두 잘 찍어주셨다만.
동양인이 별로 없는, 거기에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은 별로 없는 이 베를린에서, 그것도 페르가몬 박물관의 이슈타르의 문 앞에서 한국분을 만나니 꽤나 반가웠다. 어머니와 딸 두분, 그렇게 셋이서 여행하는 중이셨는데 이분들도 이 여행의 목적이 이슈타르의 문이었다고 했다. 이 문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액자를 만들거라고 신나게 말씀하시던 모습이 행복해보이셨다.
이슈타르의 문 앞에 있던 복원 예상 조형물. 작은 모습으로만 보아도 실제의 모습이 얼마나 웅장했을지 상상이 갔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실제 보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겠지.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더라면 더욱 대단한 웅장함을 느꼈을 텐데 비좁은 공간 안에 숨막힐 듯이 꾸역꾸역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문 앞에 서서 나의 베를린 캠페인 세션을 떠올렸다. 발터 안드레이를 만나기 위해 모두와 함께 페르가몬 박물관에 들렀을 때 꿈 속 브란덴부르크 문을 대체한 거대한 일곱 개의 관문이 이슈타르의 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중에 극장에서 아니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림자 도시로 향하는 문을 이야기한다. 그 사이에 기억의 왜곡이 생겨 우리가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 이슈타르의 문으로 향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 세션로그를 살펴보니 우리가 향한 곳은 프리드리히 슈트라세를 지나 바이덴담머 다리를 건너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했다. 그 문을 지나 뒤를 돌아보면 우뚝 서 있는 이슈타르의 문이 보였다.
그 때를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이슈타르의 문을 지나갔다.
이슈타르의 문 바로 뒤편에 세워진 밀레토스 시장문. 페르가몬 박물관의 높이는 바로 이 밀레토스 시장문에 맞춰 설계되었다. 기원전 2세기 로마 시대의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이 건물 자체를 뜯어와 박물관 안에 집어넣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전부 옮겨와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해놓은 것도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유적을 통째로 뜯어오는 모습이 징글징글했다.
웅장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천장이 답답해보이기도 한다.
그 옛날에 그 기술을 가지고 어떻게 이런 제단을 만들어냈을까?
밀레토스 시장문을 잘 관람할 수 있는 맞은편의 유적 Funerary Monument of Cartinia (기원전 1세기). 사실 이부분을 보고 페르가몬 대제단인가 했는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페르가몬 대제단이 아니었다. 분명 미리 페르가몬 대제단의 사진을 보고 갔는데도 이걸 페르가몬 대제단이라고 착각하다니….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페르가몬 박물관에 페르가몬 대제단이 보수공사중이라 관람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가서 이것이 대제단이 아닐까 하는 큰 오해를 하고 말았다(홍철 없는 홍철팀).
이 위의 발코니에 올라서면 밀레투스 시장문을 더욱 잘 구경할 수 있었다.
당시에 보면서 무슨 바닥까지 뜯어오나 싶었는데, 로마 가정직 식당 바닥 모자이크를 뜯어왔다는 정보를 뒤늦게서야 알았다. 상상보다 더 지독하다, 독일 놈들.
묘사된 모자이크는 디오니소스를 묘사한 것이라고.
이곳에도 이곳저곳 오래된 유물들이 있었다.
아래에서 바라본 모습. 발코니에서 맞은편의 밀레투스 시장문을 관람하는 사람들.
조각상의 옆에 보이는 저 닫힌 문이 보수공사중인 페르가몬 대제단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사진을 보니 그렇네.
너무 오래 감상에 젖어 있었던 탓에 시간이 훌쩍 가버렸었다. 1층을 보는 데만 2시간이 소요되었고, 결국 2층의 전시품들은 정말 빠르게 휘리릭 보고 올 수밖에 없었다.
2층의 전시품들은 1층과는 조금 다르다. 바로 이슬람 문화와 관련된 전시관이다.
시간이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힘이 빠져버린 사진.
그중에서 가장 화려했던 것은 바로 이 유물. <미라브>라고 하는데, 구운 타일에 금, 은, 동으로 상감을 한 후에 말씀을 적었다고 한다. 언뜻 보면 장식 같기도 한 무늬들이 사실은 글씨다.
난 이 글씨가 참 아름답다. 사실 무슨 내용인지, 어떤 철자인지도 모르니 글씨보다는 그림이나 문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빼곡하게 새겨진 문양들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슬람 사원의 기도처. 나는 이런 화려한 이슬람 문화의 예술이 좋다.
기도처 옆에 놓여 있던 이 거대한 목재 예술품은 사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놓는 받침대이다. 사진상으로는 그다지 커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엄청 크다. 내 가슴까지 올라올 사이즈?
어느 왕궁에서 가져온 지붕이라고 하던가. 기하학적인 무늬가 정말 정교하다.
가다가 발견한 유리창 너머에는 여전히 복원중인지, 아니면 보수중인지, 아니면 당시의 복원 환경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전시해둔 것인지 모를 공간이 남아 있었다.
화려한 무늬의 양탄자. 사진이 흔들려서 아쉽다.
오스만 제국 시기 귀족 응접실이었던 알레포 방(Aleppo Room). 이슬람 전시실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데, 사실 이때 시간이 촉박해서 자세히 보지 못하고 왔다.
17세기 목판 그림으로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사실 대충 봤을 때는 카펫을 구경하다 와서 이것도 카펫인가 했다.
오히려 뒤늦게 사진을 정리하면서 벽의 무늬를 더욱 주의깊게 관찰하게 된다. 빼곡하게 그려진 무늬와 세로로 긴 각각 다른 패턴들. 정말 섬세하고 화려하다. 이래서 이슬람 문화 예술을 좋아한다.
그렇게 뒤로 갈수록 급해졌던 페르가몬 박물관 관람을 마쳤다. 좀 더 오래 있고 싶긴 했지만 이후의 일정도 빡빡한 관계로 아쉬운 마음을 안고 떠났다.
맡겨두었던 짐을 찾고 플라스틱 토큰까지 반납하고서, 이어진 기념품 샵으로 향했다. 이것저것 다양한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는데 내 목적이 이슈타르의 문이었던 만큼 그에 관련된 기념품들이 눈에 더 잘 띌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사진상의 이 이슈타르의 문 모형과 종이접기를 보면서 베를린 캠페인 오프탁을 한다면 소품으로 쓰기 좋아보인다는 생각이나 한 나는 진정한 티알피져.
박물관 어딜 가나 팔고 있는 기념 엽서. 이슈타르의 문 색이 예쁜 덕에 엽서 색도 참 예쁘다.
마그넷도 있었다. 이슈타르의 문으로 향하는 행진의 길에 조각된 사자들. 베를린 신 박물관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페르티티의 흉상 마그넷도 팔고 있었다(이 도둑놈들아).
여기까지 왔으니 기념품을 하나쯤 사고 싶은 열망도 있었지만, 어차피 집으로 향하면 쓸모없는 물건이 될 것만 같아 충동구매의 욕구를 내리눌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다지 아쉬움이 없으니 잘한 결정이었던 셈이다.
기념품 샵 창문 너머로 본 풍경. 꾸리꾸리했던 하늘은 어느새 맑게 개고, 화창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흐린 시간을 실내 관람으로 보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오래되고, 박물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거대한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으나 정작 '자신의 것'은 하나 없이 모두 약탈해 온 유적만을 품고 있었던 페르가몬 박물관. 물론 타국에서 '선물'로 보내온 유물도 있었으나 과연 이 선물이 정당한 관계 속에서 주었던 선물인지는 꽤나 의심스러웠다. 베를린 캠페인 시나리오 <악덕과 공포, 황홀경의 춤>을 진행하다 보면, 익명의 전화가 걸려와 이렇게 말한다. "발터 안드레이는 좋은 사람이에요."
물론 서구권이었던 탐사자들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으나(비록 짜증을 내기는 했지만?), 독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약탈로 세워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 비록 나 또한 유적들을 보기위해 유적들이 원 주인이 아닌 독일에게 돈을 쥐여주었지만 관람하는 내내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감정이 끊이지 않았다. 나 또한 약탈당한 나라의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와 반대로 침략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유물을 보면서도 별 생각이 없으려나 싶기도 하다.
실제로 페르가몬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약탈품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여느 서구열강이 그렇듯 독일 또한 문화재의 반환 요청을 묵살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페르가몬 박물관은 2023년 10월 23일에 대규모 리노베이션 공사에 들어간다. 재개장 예정일은 무려 2037년. 막바지 관람을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정작 페르가몬 박물관에 가서 페르가몬 대제단은 보고 오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 2014년부터 보수공사에 들어간 모양이었는데 이에 이어서 2037년까지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해버리면 대체 어쩌자는 말인지?
다른 박물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거대한 문화재와 유적 자체를 관람하는 일은 경험하기 힘든 가치있는 일이 분명하지만 이들이 원래 자리가 아닌 엉뚱한 자리에 끌려와 있는 것만 같은 부조화는 관람을 끝낼 때까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최소한 리노베이션이 끝나면 성의없이 벽면에 박혀 있는 유물들이라도 깔끔하게 전시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