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별빛야행」 후기 (2024. 10. 2.)
DAILY 2024. 11. 12.
경복궁 「별빛야행」 후기 (2024. 10. 2.)
친구와 함께 경복궁 별빛야행에 다녀왔다! 예전부터 참가하고 싶었던 행사였는데 이번 24년 하반기에도 행사가 열려서 운 좋게 다녀올 수 있었다. 상반기와 달리 하반기는 추첨제였는데 나중에 쓰게 될 창덕궁 달빛기행은 운 좋게 당첨되었고, 별빛야행은 추첨제는 떨어졌지만 다행히 잔여 표 선착순 판매에서 두 장 구매에 성공했다. 그나저나 이 두 콘텐츠 이름이 너무 헷갈린다. 별빛기행? 달빛야행? 경복궁 달빛기행? 창덕궁 별빛야행? 그나마 창덕궁 달빛기행에 갔을 때 달이 잘 보이던 날이어서 머리를 굴리면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두 행사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별빛야행 | 달빛기행 |
- 경복궁 소주방 및 북측 권역 - 60,000원 - (1회)18:40 ~ 20:30 | (2회)19:40 ~ 21:30 - 1시간 50분 - 외소주방 국악 공연, 도슭수라상(저녁식사) 제공 |
- 창덕궁 - 30,000원 - (1부) 19:00, 19:05, 19:10 | (2부) 20:00, 20:05, 20:10 - 1시간 40분 - 연경당 공연, 다과 제공 |
그 외로는 둘 다 각 관광 포인트를 해설해주는 해설사가 함께 하며 초롱을 들고 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봐야 하는 곳이 엄청 넓고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쫓아다녀야 했다.
창덕궁 달빛기행보다 먼저 갔던 별빛야행! (달빛기행 후기는 따로 쓸 예정)
위에서 말한 대로 추첨제를 하고 남은 잔여석을 선착순으로 잡을 수 있었다. 가격은 1인당 6만 원. 생각해 보면 저렴한 금액은 아니긴 했지만 한 타임에 많은 수의 인원을 받지 않고 직원들이 많이 들어가는 걸 보면 낼 만 하다 싶기도 하고. 일단 식사가 엄청 푸짐하고 정갈하게 나와서 음식 값만 해도 꽤 될 것 같았다······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창덕궁 달빛기행을 3만 원에 구경하고 나오니 '흠 좀 비싸긴 한 듯?' 싶긴 하다.
외소주방 식사를 하며 공연을 볼 때 좌석이 정해져 있었고, 우리는 추첨제 선예매를 하고 난 빈 자리를 구매해서 남아 있는 자리가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공연이 눈으로 보는 공연이라기보다는 국악 연주였어서 자리에 따른 편차가 심히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빨간색 박스가 우리의 자리였던 곳! 번호는 11~12번이었다. 구석탱이인 건 큰 상관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뒤쪽 줄이면 앞에 앉은 사람들이 시야를 가려서 비교적 자리가 안 좋기는 하다. 남의 등 보면서 밥 먹어야 함.
2024. 10. 2. 수요일
퇴근하고 나서 킹키부츠 굿즈를 사러(티셔츠 이슈) 블루스퀘어에 들렀다가 경복궁으로 향했다. 별빛야행은 경복궁 입구를 지나 오른편 주차장 쪽에서 입장해야 했는데, 보통 관람하게 되는 남쪽 구역도 야밤에 일반인들에게 열려 있는지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플립 3 미치겠다
갤 25로 꼭 바꿔줄게
별빛야행과 달빛기행에 참가할 때 한복을 입으면 기념품을 준다고 해서 한복을 챙겨 입고 갈 생각을 했다. 아니, 사실 기념품 없어도 입고 갈 생각이었다. 게다가 고궁들이 완전. 찐. 전통한복 아니면 한복 인정 안 해준다고 해서··· 조영기 디자이너가 제작한 내 nn 만 원짜리 한복도 인정 못 받으려나 하고 갔음. 이럴 때 아니면 한복 입을 기회가 많지는 않으니까! 결과적으로는 고궁 입장과 별빛야행 프로그램은 별개인지 기념품을 받기는 했다.
워낙 예매도 치열하고 암표가 나다닐 만한 행사인지라 입장할 때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했다. 표 양도도 직계가족까지만 가능하다.
접수할 때 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있게 수신기와 이어폰을 나누어준다. 수신기를 넣고 목에 걸 주머니까지 함께!
접수하시는 분들도 다들 한복을 입고 계셨는데 잠시 기다리다가 출발할 시간이 되자 내시 옷을 입은 분이 나와 설명을 시작했다. 연기하시는 것도 완전 사극에서 보던 딱 그 말투와 목소리여서 진짜 내시인 줄 알았다.
고궁을 어두울 때 와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이곳저곳에 초롱을 밝혀둔 모습이 참 예뻤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외소주방으로 가서 식사부터 했다. 외소주방이 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며 수라간이랑 차이가 있다고 했었는데··· 솔직히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해설사의 해설은 거의 생각이 안 난다.
아무튼 중앙의 빈공간에서 국악 공연을 하고 안쪽 건물 안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자리로 가면 안내 팸플릿과 보자기에 싸인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사실 국악 공연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시각적인 요소는 전혀 없고 정말 노래만 듣게 되는 공연이었던 터라 구석 자리여도 큰 상관은 없었는데, 앞줄이 아닌 뒷줄인 건 별로이긴 했다. 앞사람들 바로 뒤에서 그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식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ㅠㅠ
보자기를 까면 이렇게 3단 도시락 같은 놋그릇이 나오는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놋그릇은 다 가짜였나 보다. 뚜껑조차도 진짜 진짜 무거웠다. 이거 손목 괜찮은 거니?
촬영하면서 열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뚜껑을 열면 이런식으로 하나하나 메뉴가 나오고,
궁녀가 포트를 들고 다니면서 마지막으로 국물을 부어준다.
우리가 먹게 된 도슭수라상! 나는 일반식을 먹었지만 따로 채식 메뉴도 준비되어 있어서 신경 좀 썼구나 싶었다.
수라상답게 밥과 함께 곁들여먹을 수 있는 반찬이 엄~청 많다. 별빛야행 중에서 이 식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단순히 행사용 음식, 그러니까 퀄리티가 그리 높지 않은 음식을 생각하고 갔건만 상상 이상으로 너무나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가짓수도 많은데 맛까지 좋다?? 게다가 한식이다?? 싫을 수가 없다.
밥과 후식을 제외하면 총 13가지다. 진짜 장난 아니다. 6만 원이나 받으니 물론 기본적인 맛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정말 밖에서도 사 먹고 싶은 맛이었다. 행사에서만 접할 수 있는 메뉴일 테니 앞으로는 먹을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
먹으면서 진짜 감탄함. 산적처럼 생긴 너비아니도 겉보기엔 퍽퍽해보이면서 막상 먹으면 부드러웠고. 특히 가장 맛있게 먹은 메뉴는 좌측 하단에 보이는 전복초였다. 달콤한 소스에 전복을 저민 요리였는데 해산물과 달달한 맛이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생각과는 달리 너무 깔끔하게 맛있었다. 전복초 사 먹고 싶어요.
후식까지 3종으로 나온다. 전복초의 임팩트가 워낙 컸던 탓에 후식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미자차는 내 취향이 아니었음! (와중에 오미자차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는 내 말에 놀란 문경 출신 친구)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내가 음식을 먹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 편인데 먹는 시간이 촉박했다는 거. 너무 맛있어서 음미하면서 먹고 싶은데 궁녀들이 나를 재촉했다. 사실 궁녀들은 양반이고(관용적 표현인데 이 표현을 궁녀들에게 쓰니까 좀 이상하다) 주변 사람들이 다 먹고 숟가락 딱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심적으로 빨리 먹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컸다. 나 아직 식사 중인데 디저트 받아서 먹고 있고. 여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ㅠㅠ
식사하고 나서는 사진도 찍었다
다들 저의 한복을 봐주세요
와중에 친구가 가로로도 찍어주려고 했는데 죄다 한 칸씩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모르는 사람 둘이랑 함께 3인 구도로 사진찍은 것처럼 찍혀버림
어이없고 웃겨
국악 공연을 하던 무대도 참 예쁘게 꾸며놨었다. 행사 준비하는 데 꽤 돈 많이 썼겠다 싶더라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초롱을 나눠준다. 이날 날씨가 좀 쌀쌀한 편이었어서 들기 쉽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이후로는 열심히 돌아다니며 예쁜 한복을 차려입은 해설사분의 설명을 들었는데 애석하게도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설명은 기억난다! 얼핏 보면 그냥 담같이 생겼으나 조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십장생으로 장식한 굴뚝이었다!! 보통 굴뚝이라고 하면 세로로 길쭉한 굴뚝을 상상하기 마련인데 이 굴뚝은 정말 모르고 보면 누가 벽을 갖다 놨나 싶게 생겼다. 결국 조대비는 그 당시에는 엄청 장수한 나이였던 8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여기도 예뻤는데 기억이 안 난다. 후기를 바로바로 쓰자······.
음식을 만드는 온갖 장을 저장해둔 장고도 구경했다. 전국 각지에서 오래된 장독대를 모은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장도 오랫동안 숙성해서 맛을 들여야 하니 와인 저장고와 비슷한 개념 아니었을까?? 장을 관리하는 궁녀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귀중함이 알 만하다. 두 사람이 연기하면서 액운을 쫓기 위해 장독대 위에 버선을 올려두고 하는 장면을 보여주셨는데 이후 우리가 자유롭게 장고를 구경할 때도 어디로 가지 않고 끝까지 연기에 임하셨다. 사실은 진짜 궁녀와 나인이었을지도. 아무튼 RP 좋아하는 티알피져로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다음은 집옥재. 임금이 책을 모아두고 독서를 하던 곳이라는데, 나중에 해외 문물이 들어와 한쪽에는 2층으로 된 이국적인 건축물이 붙어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우리나라 전통 양식인 온돌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보통 우리가 한옥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 제법 다른 화려한 느낌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이 꽂혀 있는 거 제법 잘 어울리고 간지였다.
향원정으로 가는 길. 전통 건축물의 실루엣과 그 뒤로 보이는 현대의 야경.
좀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정말 끝없이 재촉받아서 후딱 다닐 수밖에 없었다.
장안당에서는 임금님이 나오셨다. 사실 전기는 현대 문물이니까 인위적인 연출이 될 수도 있는데, 딱 경복궁에 전기가 들어왔을 때를 시점으로 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임금과 신하의 장면을 보여줘서 자연스러웠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나라는 비교적 전기가 발명된 이래로 일찍 전기를 들인 나라였다고 한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군요?
그리고 임금님께서 친히 향원정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이곳에서 임금님과 사진도 찍음
향원정은 원래 출입 금지인 구역인데 별빛야행에서만 특별히 출입이 허가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건물 내까지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고! 밤에 보는데도 너무 아름다웠는데 낮에 봐도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임금님이 질투 나네요.
전통과 현대의 조화. 뭐 그런 겁니다.
향원정 구경과 임금님과의 포토타임을 마지막으로 경복궁 별빛야행의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이후로 퇴장하려고 길을 걷는데 직원 한 분이 내게 다가와 입고 있는 옷이 한복이시죠? 하고 물었다. 어라? 경복궁 입장 할인은 칼거절된다고 해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별빛야행은 정말 찐 전통한복만 사은품을 주지 않고 이런 개량한복도 선물을 주는 모양이다! 내게 옷에 깃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나중에 따로 기념품을 준다고 하셨다. 행복~
그렇게 받은 다기!!!!!!!!!!!!!!!!! 하하하하하!!!!!!!!! 일반 선물인 테이블 매트에 합쳐서 이것까지 받았다. 나중에 보니까 이후에 간 사람들은 이 다기 수량이 다 떨어져서 못 받은 것 같더라. 이다음부터 주던 선물은 내 취향이 아니었던지라 다기를 받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어디서도 막 쉽게 구할 수 없는 것 같고. 특별하게 느껴지고. 6만 원의 가격 부담이 경감되고. 하지만 나도 한복을 입음으로써 별빛야행의 분위기를 거든 거다.
그렇게 문을 닫은 경복궁을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음식 맛이 너무 좋고 비싼 식재료를 쓰기도 했고 연기하는 사람들에게 돈도 줘야 하고. 새로운 체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한 번쯤은 참여해 봐도 괜찮은 기획인 것 같다. 우리나라 고궁을 더 잘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달 뒤에 간 창덕궁 행사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이건 가격 가성비와 경복궁이 따라잡을 수 없는 창덕궁의 아름다움 때문일지도? 그럼에도 지금까지 전복초가 전해주었던 그 놀라운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이다. 제발 부탁이니 밖에서도 팔아주세요. 제가 사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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