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프 온리」 후기: 마음 가는 대로 사랑했을 뿐인데!
REVIEW/MOVIE REVIEW 2023. 12. 14.
영화 「이프 온리」 후기: 마음 가는 대로 사랑했을 뿐인데!
연말. 2022년보다 올해 본 영화들의 수가 적다는 기분이 들어서 12월에는 영화를 많이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줄곧 함께 영화를 보곤 하는 친구는 로맨스 영화에 관심이 없어서 보통 나 혼자 영화를 보게 될 때에는 로맨스 영화를 시청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 고른 영화는 2004년에 나왔던 영화 이프 온리.
언제나 그렇듯, 옛날에 나온 영화들은 진부한 내용이 나오더라도 '나온 지 오래된 영화이니 감안해줘야지'라는 넓은 아량으로 보게 된다. 이프 온리의 주요 소재는 요즘에 들어서는 흔하디 흔한 루프물이었다.
주인공인 사만다와 이안은 이미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연인 사이다. 지금껏 보아왔던 로맨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 '비포 선라이즈', '화양연화' 등등의 많은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보통 사귀지 않는 사이에서 사랑이 싹트고 연애를 하거나 대차게 망하곤 한다. 만약 주인공이 이미 연인이 있다면 권태기에 빠진 상태로, 결국 상대방과 헤어지거나 진주인공과 바람을 피웠다. 이 때문인지 처음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등장했을 때, 이들이 헤어지지는 않을지,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지. 이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주인공이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여주인공이 너무 예쁘고 남주인공을 사랑하는 모습이 짙게 나오는 반면 남주인공은 여주인공보다 일이 우선이고, 외모도 특출나지 않아 새로운 남자주인공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기울어진 운동장
하지만 생각외로 영화의 진주인공은 남자쪽이었다. 일이 중요했던 이안과 관계와 감정이 중요했던 사만다. 둘의 불협화음이 쌓이고 쌓여가던 과정 속에서 어느날 이안은 매우 중요했던 사업 설명회를 사만다로 인해 망쳐버리고, 사만다는 자신의 졸업연주회를 잊어버린 데다가 자신의 지인들에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만 하는 이안에게 실망한다. 비록 사만다가 완전히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연주회가 끝나고 마치 '내가 더 양보해줄게'라고 말하며 사랑에 시혜적으로 구는 이안의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둘의 관계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보였다. 이안이 권력을 쥐고, 이안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만다는 마음 고생을 하는. 회의를 망치고 홀로 택시에 탔을 때 운전기사에게 사만다가 없으면 못 산다는 말을 한 것치고는 여전히 일과 자신을 중시하는 보였던 이안.
대학생 때 어쩌다가 만난 친구의 남자(인)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자는 헤어진 이후에 오랫동안 이별에 슬퍼하고 바로 여자친구를 사귀지도 않는데, 여자는 헤어지자고 하자마자 남자를 사귄다나 뭐라나. 그 때 면전에서 들었을 때에도, 이 이야기를 곱씹는 지금도 참 어이없고 바보 같은 말이다. 왜 이런 차이가 있겠는가? 그야 여자는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상태에서 오랫동안 허울뿐인 연애 관계가 지속되었기 때문이겠지. 헤어질까 헤어질까 하다가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었을 때 헤어지자는 말을 선언하는 것이다.
아마 사만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불만은 쌓여가고 관계는 개선되지 않던 상황에서 사만다는 참다 못해 이별을 선언했겠지만, 이안은 이별 선언을 갑작스럽게 느꼈다. 자기가 이렇게까지 굽혀주겠다는데 왜 이별을 말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그는 택시를 타고 떠나버리는 사만다를 고민 끝에 잡지 못하고, 사만다가 탄 택시는 사고가 나 버린다.
사만다는 죽었다. 뒤늦게 이안은 그녀에 대한 진솔한 감정을 깨닫고 매우 슬퍼하며 잠이 든다.
단 한 번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그리고 다음날, …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시 사고 당일. 과거로 돌아온 이안은 사만다를 살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과거의 특정한 사건을 피하려 해도, 그 사건은 다른 방법으로 일어나게 된다. 결국 사만다가 죽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상당히 불안해하는 이안을 달래가며 사만다는 타인이 쏟은 커피에 젖어버린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향했던 과거 행동과는 달리 이안의 손을 잡고 그의 회사까지 바래다주기도 한다.
비록 고장날 예정이었던 손목시계는 멀쩡하게 남았지만 다른 사건들은 조금씩 달라지면서도 결국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몇 번 본 이안은 회의가 끝난 후 급하게 사만다를 찾으러 간다. 그리고 그는 잠시간 런던을 떠나있기로 하며 사만다가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은 바로 이안이 과거에 자라왔던 곳. 결국에는 고장나버린 시계.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이안은 그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사만다에게 그제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비도 맞고, 빈 집에서 시간을 가지고, 관람차도 타면서 그는 사만다가 최고의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녀의 졸업 연주회를 멋지게 장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솔직히 말하자면 만약 내 친한 사람이 내 허락도 없이 이런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면 나는 아주 분노했을 테지만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솔직하고 절절한 사랑고백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만다는 택시에 오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만다의 옆, 신호를 위반한 차가 부딪히게 될 자리에 이안이 앉았다는 점이다. 택시는 과거와 똑같이 길을 달리고, 이안은 곧 벌어질 미래를 예감하며 공포에 떤다. 긴장된 기색으로 계속해서 밖을 쳐다보다가, 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 사만다를 끌어안아 그녀를 보호한다.
반드시 누군가가 한 명은 죽게 될 사고. 이안은 제게 사랑을 알려준 사만다를 살리고 자신이 대신 죽기로 결정한다. 나중에 깨어난 사만다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 가는 대로 사랑했을 뿐인데!
마음 가는 대로 사랑했을 뿐인데
어쩌면 이안의 마지막 선택도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이 두 사람의 엔딩이 해피엔딩이기를 빌었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배신하고 이안을 죽여버렸다. 왜 사람들은 새드 엔딩을 추구할까? 물론 이 엔딩이 영화에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줄 수 있다는 점은 알고는 있다만, 그래도 두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잖아.
따지고 보면 영화의 내용은 그렇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2004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죽어버린 연인,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연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연인 대신 죽는 엔딩. 어떻게 보면 유치할지도 모를 내용들이 나는 더 마음에 들었다. 솔직한 감정이라는 게 반드시 색다르고 기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느끼는 감적은 무엇보다 단순하고 진부하지 않을까. 그랬기에 사만다를 향한 이안의 노력들이 내게는 더 진솔하게 다가왔다. 사만다가 없으면 살지 못한다던 그의 말대로, 이안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이었나보다. 사만다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받는 법을 배우고,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깨달은 그는 사랑을 위해 목숨마저 바칠 수 있었으니까. 여담이지만 목숨보다도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이 묘하게 중국 고전 인물들이 생각나기도 했다(주군께 충성을 바칠 수만 있다면 내 한 목숨 어쩌고 저쩌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마지막이 새드엔딩으로 끝난 것. 그리고 여주인공이 '감정적이고 바보같은'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이 그랬다. 몇달 전이었던가, 왓챠에 올라와 있던 다큐멘터리 로맨틱 코미디를 본 적이 있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로맨틱 코미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내용이었다.
다큐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주 고객층은 여성이지만, 정작 주인공인 여자들은 허점이 있고, 바보 같고, 남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고 꼬집는다. 이 다큐를 보고 나서 '나중에 로맨틱 코미디를 보게 된다면 아무래도 비판적으로 보게될 것 같군…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프 온리를 보면서 예감이 적중하고 말았다. 여주인공은 남자의 중요한 일보다도 감정적인 사랑을 더 우선시하고, 실망하고, 그리고 바보 같은 짓을 하며 남자친구의 회의를 망쳐버린다. 그런 바보 같고 민폐를 끼치는 면이 있어도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상이라는 점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다른 로코를 보게 되면 이런 점을 계속 발견하게 될 것 같더라.
그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의 진솔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만다는 자신이 한 일이 별 것 아니었다는 듯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사랑했을 뿐이다"라고 말하지만,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일조차 우리는 쉽지 않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일과 부수적인 많은 것들이 우리의 많은 행동을 제약하고는 하지만, 그 제약 안에서 무언가를 사랑할 때 온 마음을 다해서 후회하지 않게 사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비록 그 상대가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랑의 대상의 나의 가족과 친구와 소소한 취미생활이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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