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유럽 여행] #9. 독일 베를린: 베를린을 떠나 드레스덴으로.
TRIP/2023 독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2023. 10. 27.
[독일 동유럽 여행]
#9. 독일 드레스덴: 베를린을 떠나 드레스덴으로.
2023. 9. 25. (월)
이틀 묵었던 제너레이터 베를린 미테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내가 계획했던 시각보다도 더 늦어진 때였다. 원래는 일찍 일어나서 일찍 준비하고 나와 전날 제대로 보지 못했던 브란덴부르크 문을 다시 한번 보고 드레스덴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날 야바위꾼에게 걸려 돈을 잃은 충격이 상당했었나보다. 밤에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고, 깨기도 자주 깼다. 다시 잠을 자려고 해도 마치 피곤한 상태에서 커피만 엄청 들이켠 것처럼 심장이 쿵쿵거리고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중간에 수면을 포기하고 일어나 씻고 체크아웃을 할 준비를 했다.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준비시간이 오래 걸렸고, 부족한 잠으로 인해 정신이 없어서 룸 키 카드를 찾는 데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어김없이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DB 고속 열차는 30분 넘는 시간만큼이나 지연된다는 알람이 앱에 표시되어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어쩌면 예상했을지도 모르고) 기차를 타야 하는 시간까지 여유가 생겨, 베를린 중앙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잠시 보고갈 수 있게 되었다.
출발부터 너무나도 많은 짐을 챙겼던 탓에 이미 캐리어가 무거웠다.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내 앞의 어떤 남자가 끊임없이 데스크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광에 대한 가이드를 요청하고 있었는데 그 대화를 기다리는 데에만 해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기에다가 용건이 끝나고 나서도 짤막한 담소를 나누고. 물론 보통의 숙박업소 데스크에서 관광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해주기도 하니 문제될 건 없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와중에 그저 키 반납을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 모든 용건이 빠르게 처리되는 한국의 서비스가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브란덴부르크 문
다시 한번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했다. 9시 언저리의 이른 시간에 가는 데다가 마라톤 대회도 끝났으니, 설령 전날의 마라톤 대회로 인해 설치된 기물이 아직까지 남아있을지언정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일요일에는 마라톤 대회의 여파 말고는 대중교통에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일요일 출근 시간이 겹치니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모두가 쉬는 일요일과는 달리 비교적 생기가 돌았다고 해야 할까?
지하철을 타고 얼마 안 가 운터 덴 린덴에 있는 역에서 나왔다. 전날의 우중충했던 아침과 다르게 새파란 하늘과 함께 맑고 건조한 공기가 느껴졌다.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을 깨버리고,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는 관광객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전날 2023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었다. 마라톤 대회의 여파는 전날로 끝났으리라 생각했는데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대회가 끝난 다음날인데도 그 사람들이 마라톤 대회 로고가 프린트된 옷을 입고 있었던 덕분이다. 그들 또한 전날에는 사진을 제대로 찍을 기회가 없어서 나처럼 아침 일찍 이곳에 찾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다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메달을 들고 찍기도 하고.
아침에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브란덴부르크 문의 스프레이 테러.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앞에 설치되었던 울타리 등은 싹 다 치워져 있었지만 승전기념탑으로 향하는 길목의 시설물들은 아직 철거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차피 그곳까지 들어갈 생각은 없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돌아가며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있던 사람들에게 부탁해 나의 캐리어와 함께 사진도 한 장 찍고, 이어서 어제는 하지 못했던 것을 하기로 했다. 바로 브란덴부르크 문 중앙을 지나 통과하기. 그리고 그곳을 천천히 지나가며 다시 한번 베를린 캠페인을 떠올렸다.
2부의 마지막,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향한 줄 알았으나 사실은 우리가 향했던 곳은 브란덴부르크 문. 다리를 건너 길을 따라가면 브란덴부르크 문이 보이고, 그 문을 통과해 뒤를 돌아보면 그림자도시와 함께 이슈타르의 문이 서 있었다. 그렇게 베를린에서의 첫 번째 여정과 마지막 여정을 나의 캠페인과 함께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이제는 정말 베를린을 떠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다시 오게 될까, 라고 한다면, 글쎄다. 유럽에서의 장기 여행을 한다면 한 번 다시 들러볼 만도 하겠지만 시간을 내어서 이곳에 다시 올 것 같지는 않다. 하루만으로도 충분히 이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꽤 파악이 됐기 때문이다. 한 가지 남아있는 미련이 있다면 바로 본고장에서 먹지 못한 커리 부어스트랄까.
이어서 다시 U반을 타고 베를린 중앙역으로 향했다. 베를린의 역들은 한 라인에 여러 개의 노선이 들어오는데(노선마다 승강장이 다른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지하철 간의 텀이 상당히 짧은 편이라 오래 기다리지 않고 지하철에 탈 수 있었다.
내부 구조도 우리와 꽤 다르다. 복소를 사이에 두고 벽에 일렬로 좌석이 있는 우리와는 다르게, 마주볼 수 있는 방식의 좌석들이다.
금방 도착한 베를린 중앙역. 첫날 늦은 밤, 한산함을 넘어 썰렁하기 그지없었던 역사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복작복작한 모습이었다. 흡사 서울역 KTX 승강장을 닮았기도 하다. 분주한 월요일, 역에 있는 수많은 가게들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이었다.
내가 타야하는 열차는 베를린에서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EC173 기차. 원래는 9시 1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몇십 분 연착되고 있어 시간은 여유로웠다. 도착 시간을 확인하다가 역의 수많은 사람들과 앱에 표시된, 내 기차의 수요가 높다는 문구를 보며 그제서야 뒤늦은 불안함이 차올랐다. 유럽의 열차들은 우리나라의 KTX나 무궁화호 등과 다르게 열차를 예매할 때 좌석을 따로 예매해야 했다. 유레일 패스 이용자였던 나는 괜히 좌석까지 예약하기가 아까워서 좌석 구매를 안 한 상태였는데, 이 많은 인파를 보니 과연 내가 빈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뒤늦게서야 좌석을 구매할까 하고 앱에서 살펴보았지만 이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라서 그런지 남아있는 좌석 구매 또한 불가능했다. 알고 보니 내가 예매한 기차는 단순히 베를린 내에서만 도는 기차가 아니라 부다페스트까지 이어지는 기차였다. 아마 부다페스트에 향하는 사람들도 이 기차를 타게 되지 않을까.
뜨순이와 함께 하는 기다림. 마실 거라도 살까 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그대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왔다. 역사에 비치된 자판기의 음료수들도 전부, 싹 다 매진이었다.
곧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고 나는 미리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했다. 정작 기차가 들어올 때, 내가 서 있는 곳에는 서지 않고 지나쳐서 기차가 있는 곳까지 급히 이동해야 했다. 나를 포함해서 기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이 기차가 드레스덴뿐만 아니라 부다페스트까지 이어지는 긴 노선의 기차여서 사람이 많은 것도 있었겠지만, 붐비는 인파의 주요 원인은 아무래도 2023 베를린 마라톤 대회 때문인 것 같았다. 대회를 마친 사람들이 베를린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타는 동안에도 마라톤 대회 티셔츠 등을 입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였다. 다들 왜 대회가 끝났는데도 계속 입고 있는 거야!? 한국인으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복작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바로 직감했다. 칸으로 간다 한들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을 것 같았다. 마침 내가 올라탄 칸은 자전거를 보관해둘 수 있는 거치대가 있는 칸이라 이어지는 공간이 상당히 넓었는데, 자전거 거치대 맞은편에 마련된 간이 의자에 막 앉기 시작한 중국인 일행을 발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리 선점은 어려울 것 같아, 재빠르게 캐리어를 끌고 가서 간이 의자 중 맨 구석 자리의 의자를 펼치고 앉았다.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은 이후로도 사람들이 끝없이 탔다. 사람들을 태우는 데에만 해도 시간이 너무 걸려서 열차에 지연이 발생했고, 내가 있는 자전거 거치 칸의 빈 공간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그 위에 앉아가거나, 바닥에 앉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양호한 수준일 정도였다. 그 와중에 내 옆에 나의 캐리어를 둘 만한 공간까지 있었으니 일반석이랑 별반 다를 바도 없었다.
한 가지 신경 쓴 점이 있었다면 내 자리가 통로 문 바로 옆자리여서 문이 계속 열리고 닫혔다는 점이었달까. 베를린은 사람들이 급한 성격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편의시설은 마음이 급한지. 빠른 걸음을 걷지 않으면 순식간에 빨간불로 바뀌어버리는 신호등처럼, 기차 칸과 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전자식 문도 버튼을 누르고 3명 정도만 지나가도 문이 닫혀버렸다. 문제는 이 문이 사람이 지나가는 걸 인식하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닫아버렸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베를린 중앙역, 그리고 베를린 내의 다른 역을 거치며 사람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고, 이 사람들은 당연히도 자신이 예약한 자리를 찾아, 또는 있을만한 공간을 찾아 칸과 칸 사이를 옮겨 다녔다. 으레 많은 유럽 관광객들이 그렇듯 캐리어와 배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칸을 옮겨다닐 때마다, 세 번째로 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문에 끼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몸이 끼이든, 가방이 끼이든간에.
그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으니, 자리에 앉아 사람이 문에게 공격당할 때마다 버튼을 눌러 열어주었다. 딱 이 웃픈 상황 하나가 신경쓰였다.
아침 대신 전날에 구매한 시나몬롤도 이때 맛보았다. 바로 유명한 Zeit für Brot에서 포장해왔던 기본 시나몬롤.
맛은 확실히 있었지만 역시 전날 따끈따끈한 상태로 커피와 함께 먹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보다시피 밀도(?)가 꽤 높은 빵에다가 달달하기도 해서 많이 먹었다가는 물을 폭풍흡입하게 될 맛이었다. 유럽에서 미친듯이 물 마시기는 금기란 말이다.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슈니첼을 먹으러 갈 예정이었던 나는 시나몬롤을 맛보는 정도로만 조금 먹고 다시 포장해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후에도 며칠간 쫌쫌따리 먹었던 빵.
먹는 동안 앞자리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사람들은 각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서로 어디 갔다왔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등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는데, 멀리서 보면서 조금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도 여행하면서 영어로 대화도 하면서 다니고 싶었다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내리기 전 찍은 객실의 모습. 독일은 기차의 좌석 위 칸에 캐리어를 많이 둔다. 이 날은 사람이 많아서 더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나중에 뮌헨 가는 기차에서도 남자분이 내 27인치 엄청 무거운 캐리어를 저 위에 올려두기도 했다(물론 합의된 사항).
2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방송에서 드레스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바로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캐리어를 들고 역에서 내렸는데 왠지 역이 사람도 별로 없이 휑하기만 했다. 다시 떠올려 보니 드레스덴 중앙역에 도착하기 전 경유하는 드레스덴 내의 다른 역이 있었다. 그걸 떠올리고, 그리고 역도 확인하고 급히 짐을 들고 다시 탑승했다. 자칫하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다음 역인 드레스덴 중앙역에서 안전하게 내렸다. 내가 제일 기대했던 드레스덴. 집중 포격을 당했던, 독일의 피렌체는 다음 글에서부터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