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e Light Pink Flying Butterfly TRPG 룰 어둠 속의 칼날(Blades in the Dark) 리뷰 & 세션 후일담

TRPG 룰 어둠 속의 칼날(Blades in the Dark) 리뷰 & 세션 후일담

REVIEW/TRPG REVIEW 2023. 8. 2.

어둠 속의 칼날(Blades in the Dark) 리뷰 & 세션 후일담

 

어둠 속의 칼날은 판타지 산업 도시의 음산한 거리에 범죄의 왕국을 세우는 대담한 무뢰한들을 다룬 RPG입니다.

치밀한 계획, 추격, 탈출, 위험한 거래, 피비린내 나는 싸움, 속임수, 배신, 승리, 죽음이 만발합니다.

그 속에서, 거머쥘 용기만 있다면, 부와 지위도 얻을 수 있습니다.

갓 시작한 여러분의 조직은 경쟁 파벌들, 강력한 귀족 가문들, 복수심에 불타는 유령들, 시 경비대의 푸른코트들,
자기 자신들의 악습이 부르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번영해야 합니다.
범죄계의 정점에 설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 어둠 속의 칼날 SRD

 

 

이른바 스팀펑크 세계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무뢰한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조직을 키우는 TRPG 룰인 어둠 속의 칼날. 아주 옛날부터 관심이 많았고 언제나 하고 싶었던 룰이었는데 2021년도에 운 좋게 입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기회가 없던 시절. 친한 지인들을 모아다가 오프라인으로 한번 마스터링, 그리고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동안 플레이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이번에 마음을 먹고 본격적인 어둠 속의 칼날을 장기적으로 플레이하게 되었습니다. 단편으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룰의 이모저모를 접하게 되면서 올해 들어서야 제대로 느낀 진정한 어둠 속의 칼날 후기를 남기고 싶어졌어요.

룰북을 구매한 지 거의 4년 만에···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둠 속의 칼날을 리뷰하고자 합니다.

 



 

알피지스토어

알피지스토어

www.rpgstore.kr

※어둠 속의 칼날 룰북은 도서출판 초여명에서 One Seven Design의 허락을 얻어 출간하고 있습니다. 알피지스토어나 전국 유명 서점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해당 후기 글은 입문자를 위한 설명, 소개, 영업글이 아닌, 개인적인 감상을 정리한 글입니다.
TRPG에 정답은 없습니다. 이하 글은 참고용으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도스크볼의 무뢰한들

 

<갱스 오브 뉴욕>, <나르코스>, <피키 블라인더스>, 그리고 <디스아너드>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어둠 속의 칼날 세계관. 사실 저는 위의 작품들은 아주 조금만 접해보았고, 세계관의 심상을 일치시키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었던 리그 오브 레전드 기반 애니메이션인 <아케인>이었습니다.

 

라이엇 게임즈, <아케인>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거대한 빈부 격차, 그리고 범죄가 만연한 도시, 도둑질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좋은 곳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당연하게도 세계관의 차이는 있지만 심상을 위해 1화 정도는 참고하기 좋은 애니메이션이었어요.

 

범죄, 음모, 도시의 어두운 면모, 마법과 유령, 조직을 성장시키고 어쩌면 부를 거머쥔 이들의 콧대를 꺾어주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 판타지 세계관을 좋아하신다면 어둠 속의 세계관은 아주 잘 맞으실 거예요. 특히 어둠 속의 칼날 룰북에서는 마스터와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뒷받침해줄 만한 흥미로운 세계관 설정들을 접해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세계관에 더욱 쉽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의 시간, 계절, 영토와 파벌, 국가, 심지어 이색적인 레시피까지 흥미로운 설정들이 참 많습니다.

 

스팀펑크 세계관의 디스아너드

 

해가 뜨지 않아 24시간 어둠에 감싸인 도스크볼, 유령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엘렉트로플라즘 장벽을 세우고 바다의 악마 레비아탄 사냥선들이 물 위를 떠다니는 이곳에서 플레이어들은 별 볼 일 없는 무뢰한을 만들어 매 세션마다 건수를 잡아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들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작전을 진행하다 보면 생각외로 문제가 꼬이고, 골칫거리가 생기기도 하고, 또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악습으로 인해 고초를 겪기도 합니다. 그렇게 모인 별 볼 일 없는 범죄자들이 모여 조직을 결성하고, 역동하는 세계관과 맞물려 조직을 키워나가는 것 목표입니다. 조직의 목적은 당연히 플레이어들의 자유입니다. 완전히 악한 조직이 될 수도 있고, 정의로운 의적이 될 수도 있으며, 자경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 무뢰한의 조직

어둠 속의 칼날은 다른 TRPG 룰보다도 무뢰한들이 만든 조직에 중점을 두는 룰입니다. 물론 크툴루의 부름이나 던전 앤 드래곤에서도 플레이어들이 원하면 조직을 만들고 길드를 창설할 수 있겠지만, 플레이해본 경험에 따르면 어둠 속의 칼날의 조직 관리가 시스템적으로 조금 더 체계적이고 힘을 꽤 실어두었습니다. 사실 첫 입문 세션과 첫 마스터링(함께한 플레이어들은 첫 입문)의 경우에는 단발성으로 간략하게 진행된 탓에 간단하게 조직을 만들고 후처리(막간)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어차피 이 세션만 하면 다시 안 하게 될 조직이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본격적으로 장기를 바라보며 조직에도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는데, 조직 성장 단계에 투자하는 시간이 생각 외로 상당히 길었습니다.

 

1920년의 범죄 조직을 다룬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

 

어둠 속의 칼날에는 건수와 건수 사이에 막간이라는 단계가 존재합니다. 보상을 받고 기능을 성장시키는 단계, 공적점을 계산하는 단계 등 본격적인 내용이 끝나고 마무리하는 단계가 어둠 속의 칼날에서의 막간입니다. 이 막간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플레이하는 무뢰한의 악습을 처리하고 성장시키며, 다 함께 조직을 키워나갑니다. 그와 동시에 캐릭터와 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도스크볼이라는 세계도 변화해나갑니다.

 

사실 캠페인 첫 세션을 플레이하고 막간을 시작하면서 (비록 다른 룰보다는 해야 할 단계가 많을지라도) 간단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의 캐릭터를 키우고 단순히 XP를 받아먹는 것 이외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특히 조직을 처리하는 단계가 그랬습니다. 같은 과정이라 할지라도 참여하고 있는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모두가 승낙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니 상의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마스터와 플레이어는 막간에서 간단하게 XP를 얻고 수입을 나누는 과정을 비롯해 조직과 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파벌들과의 관계, 조직이 진행하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와 조직의 성장, 조직에 찾아오는 문제 등등을 다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조직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도스크볼의 파벌들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어떤 파벌은 억울한 자신의 동료를 감옥에서 꺼내오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어떤 파벌은 어떤 지역의 지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조직과 함께 세계 또한 변화하며 캠페인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조직과 세계는 역동적인 관계를 가집니다. 이번 건수로 인해 어떤 파벌은 나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파벌에게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호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변화무쌍한 관계가 다루기 어렵기도 하겠지만, 저에게는 이런 점이 어둠 속의 칼날의 매력이자 다른 TRPG 룰과의 차별점으로 다가왔습니다.  

 

 

 

눈여겨볼 만한 시스템들

※해당 내용들은 어둠 속의 칼날 SRD에 공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제가 어둠 속의 칼날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스템은 세 가지입니다. 바로 주사위 굴림팀워크, 그리고 Forged in the Dark의 시그니처인 진전 시계입니다.

 

◆ 진전 시계

어둠 속의 칼날 SRD 내 이미지

진전 시계는 정말 간단합니다. 원을 하나 그리고 칸만 나누면 진전 시계 완성! 이렇게 간단한 시계를 가지고 정말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진전 시계의 대단한 점인 것 같아요. 사용법도 간단합니다. 원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또는 상황 등등을 나타내며 칸을 하나 칠할 때마다 일이 진전됩니다. 칸을 완전히 채우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나뉜 칸 수에 따라 진행되는 속도도 달라지겠죠? 제가 어둠 속의 칼날 시스템에서 가장 좋아하는 규칙이 바로 이 진전 시계입니다. 이 시계로 경쟁을 나타낼 수도, 호감도의 변화를 나타낼 수도, 목표의 진행 상황을 나타낼 수도, 닥쳐오는 위협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어둠 속의 칼날을 플레이하면서 많은 것들이 정확한 수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적이라고 느꼈었는데, 진전 시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A에서부터 B까지 50m를 이동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네 칸의 시계 중 두 칸을 채웁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절반 정도 왔다는 걸 알 수 있겠죠. 자신이 얼마나 이동했는지 계량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플레이어가 얼마나 이동했는지 조정하기가 상대적으로 편리해집니다.

 

◆ 간단하면서도 차별화된 주사위 굴림 시스템

어둠 속의 칼날은 6면체 주사위를 사용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능의 점수가 높을수록 굴리는 주사위도 많아지고, 굴린 값 중에서 가장 큰 수만을 확인하여 결과를 결정합니다. 어떻게 보면 쉬우면서도 특색은 없는 판정법일 수 있는데, 차별점은 바로 결과에 있습니다. 6으로 성공하면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지만, 4~5의 결과가 나오면 성공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하고 3 이하의 수가 나오면 실패와 함께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국 성공하면서도 문제가 생길 여지가 생깁니다.

 

5 이하의 주사위 결괏값으로 인해 파생되는 부정적인 효과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골칫거리'가 어둠 속의 칼날 주사위 시스템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가령 문을 따는 데에 성공하더라도 소리를 내고 말아 주변을 순찰하던 푸른 코트의 이목을 끌 수 있습니다. 원하던 결과는 성공했지만 파생되는 문제가 생겨버립니다. 이제 무뢰한은 곧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올 푸른 코트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내야 하고, 활극이 끊이지 않고 펼쳐집니다.

 

시나리오가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어둠 속의 칼날은 기본적으로 이 '골칫거리'에 의해서 이야기가 진전되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로 인해 상황은 풍부해지고 플레이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늘어갑니다. 이런 시스템 자체가 바로 어둠 속의 칼날 시스템의 분위기에 큰 일조를 합니다. 이 덕분에 마스터의 입장에서도 0에서부터 이야기를 쌓아 나가야 하는 부담이 덜해지기도 하겠죠. 무뢰한이 만들어낸 골칫거리 자체가 하나의 소재가 되어주니까요.

 

◆ 팀워크

조직 기반 룰답게 어둠 속의 칼날은 함께 하는 다른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이 시스템적으로 잘 만들어졌습니다. 스트레스만 조금 받으면 다른 조직원의 행동에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은신과 같이 모두가 함께 성공해야 하는 일을 솔선수범으로 이끌며 낙오될 수 있는 조직원까지 챙길 수도, 공격받는 조직원을 감쌀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모두가 함께하는 조직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팀워크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주력으로 플레이하는 룰에는 상호보완적 시스템이 많이 없는 편이라서 어둠 속의 칼날의 이런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실제 세션 후기

룰에 대한 감상은 맨 하단을 보시길······.

 

 

 

◆ 첫 입문과 첫 마스터링

TRPG에서 좋은 샌드박스형은 마스터가 진행 루트를 잘 안배한 덕에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레일로드로 느껴지게 한다···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어둠 속의 칼날은 그다지 쉬운 룰은 아닙니다. 제가 처음 어둠 속의 칼날에 입문하기로 했을 때는 룰에 대한 부담감을 과하게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건 제가 플레이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순한 기능들과 주사위 판정법이 익히기에 어렵지 않았고, 그리고 단발성의 세션이었기 때문에 막간의 조직 관리 등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 룰은 시나리오 없이 플레이하는 룰이기 때문에 마스터링을 하게 된다면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플레이어로서 입문하는 입장에서 마스터의 노고는 상대적으로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고, 세션을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무게감과 함께 플레이했습니다. 물론 플레이하게 된 플레이북(캐릭터 타입)이 건수의 계획을 짜내야 하는 거미였기 때문에 저에게 주어진 자유 속에서 아주 조금의 적극적인 발상을 기반으로 루트를 짜야 하기는 했지만, 그 또한 마스터가 설정해 준 울타리 내였습니다. 덕분에 무리 없이 원활하게 엔딩을 볼 수 있었고 도스크볼의 흥미로운 설정들, 조직을 플레이하는 재미, 끊임없이 사건이 터지는 활극 등등의 요소를 통해 어둠 속의 칼날에 많은 흥미를 품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었어요! 2년 만에 입문했다는 사실이 너무 눈물이 날 만큼, 그리고 앞으로도 할 예정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플 만큼 어둠 속의 칼날이 너무너무너무 하고 싶어서 단 한 번 입문해 본 경험을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 룰을 해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오프라인에서 어둠 속의 칼날을 마스터링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룰을 딱 한 번 플레이해본 마스터와, 그나마 믿음직한 유경험자 플레이어(라고 해봤자 어둠칼 플레이 횟수 3회), 그리고 룰북조차 없는 입문자 세 명이라는 구성으로, 그것도 순발력이 요구되는 오프라인 TRPG를 하겠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함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아무튼 다시 열심히 룰북을 읽고 입문탁 준비를 했습니다. 책도 없이 룰이 생소할 플레이어들이 할만한 조직 타입을 생각해두고, 그 유형에 맞는 건수들도 조금 생각해두었던 것 같아요···. 드디어 만나는 날이 되었고, 대체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자정이 지난 한밤중에 어둠 속의 칼날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무난한 조직은 암살이나 도둑질을 주된 목표로 하는 조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준비해갔는데 밀수단을 고르시더군요······. 그때부터 조금이나마 계획해두었던 일들이 하나둘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플레이어들의 잘못은 아니고요. 제가 역량이 부족하면 "여러분, 그냥 밀수단 대신에 암살단이나 그림자들을 선택하면 안 될까요?"라고 할 수도 있었고, 만약 그랬다면 플레이어들도 물론 저를 불쌍히 여기면서 "네, 어차피 오늘은 입문이 목적이니까 그렇게 해봐요."라고 하셨겠지만요······. 여러분, 이 룰은 여러분의 행동을 시나리오라는 틀 안에 규정하지 않습니다! 마음껏 계획하고, 마음껏 활개를 치고, 마음껏 자유롭게 행동하세요! 라고 말하는 듯한 어둠 속의 칼날 PDF를 앞에 두고 도저히··· "죄송하지만 그 행동은 시나리오에 나오지 않아서 불가능합니다."와 같은 말을 하는 꽉 막힌 마스터가 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대체 무슨 자존심일까요? 알 수는 없지만 당시의 저는 플레이어들의 의견에 OK 사인을 보냈고 건수도 예상했던 것과는 달라졌습니다. 그때 내가 TRPG 마스터링을 잘하는 마스터였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재미있는 상황도 많이 나오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쉽지는 않았어요. 앞으로 어떤 상황으로 이끌어야 할지 쉼 없이 머리를 굴려야 했고, 머리를 굴린다고 해도 룰의 특성상 흐름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시간은 늦었고, 책을 열심히 읽었어도 룰은 낯설고··· 새벽에 엔딩을 보았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다시는 이렇게 무리해서 마스터링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입문탁을 계기로 고맙게도 룰북을 구매해준 지인들이 있었고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어둠칼 세션 속에서 가족(가좍X)같은 조직이 되어가는 꿈을 품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다들 시나리오 없이 마스터링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고(사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저 또한 이미 마스터링으로 피똥싸본 경험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스터링을 강요할 수는 없었거든요. 다들 주력 룰이 있었고 즐길 컨텐츠는 많았기 때문에 어둠 속의 칼날은 자연스럽게 언급이 사라졌습니다.

 

 

 

◆ 재도전!

그러던 2023년의 어느 날··· 지인의 집에 가서 점심과 카페의 죄책감을 덜어줄 포케를 저녁으로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생각지도 못하게 지인이 어둠 속의 칼날 마스터링을 꿈꾸고 있었던 것 아니겠어요? 솔직히 2년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98%는 포기하고 있었는데 먼저 말을 꺼내서 너무 기뻤습니다. 룰북을 사면 한 번 정도는 마스터링해야 한다는 그녀의 신념이 저를 지금까지 포기하고 있던 어둠 속의 칼날 장기 캠페인 속 조직 성장을 꿈꾸게 해준 겁니다.

 

덕분에 설레발치면서 엄청 열심히 무뢰한 설정을 해줬습니다. 처음 입문할 때의 캐릭터가 마음에 남아 있었던 터라 거미 플레이북을 잡고 그때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캐릭터 조형을 진행했습니다. 개과천선이 불가능한 심각한 마약 중독자, 햇빛없는 도스크볼에 잘 어울리는 어두운 과거, 어쩌고 저쩌고 과설정 가득······.

 

캐릭터 시트도 만들고 조직 시트도 만들어줬습니다. 난리가 났어요.

 

함께하기로 한 다른 분들도 각자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서사에 또 욕심은 가득해 '우리는 원래 알고 있었던 사이'를 피하고 싶어 첫만남, 그러니까 조직을 만들기 전의 시점부터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이번 세션에도 마스터가 아닌 플레이어로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했고, 세션의 심상도 제가 상상하던 어둠속의 칼날 그대로였고, 생각지도 못한 흐름 속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어떨 때는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가령 아무런 의도 없이 건수 목표의 본거지를 버려진 성당으로 정했는데, 조직의 소굴을 정할 때 목표였던 자들이 도망가고 남은 성당을 아지트로 사용하게 되었다던가. 이따금 세션 내에서 모든 일들이 톱니바퀴에 맞물린 것처럼, 이미 모든 플롯이 짜여진 것처럼 딱딱딱 맞춰서 흘러갈 때 저는 더할나위없는 희열을 느끼고는 해요.

마스터께서 룰북에 나와 있는 세계관 설정을 토대로 도스크볼의 많은 요소들을 넣어주셨고, 덕분에 건수를 진행하면서 책에 소개되어 있는 많은 NPC들과 가게, 그리고 도스크볼 사람들이 애용하는 요리 레시피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왕이면 다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마스터님께 이것저것 많은 건의도 드렸는데 많이 반영해주셔서 좋았어요. 사실  첫 스타트는 그래도 이미 마스터링&플레이 경험이 있는 내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처음이시면서도 많은 고민을 하신 게 느껴져서 감사했습니다. 모두가 잘 모르는 룰, 더군다나 시나리오조차 없어서 스스로 컨텐츠를 짜내야하는 상황에서 선뜻 처음을 끊어주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행복해요.

우리가 플레이했던 내용을 떠들고 싶어도 할 말이 없네요··· 시나리오도 없는 터라 완전 '그들만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탓에요.

 

이번 기회에 막간과 성장 파트까지 모두 신경써서 해볼 수 있었고, 첫날 너무 재미있었던 탓에 시간이 남아버린 다음 날까지 충동적으로 새 건수를 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 연속으로 플레이하면서 이 룰을 하면서 신경써야할 것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는데요······.

 

 

 

 

 

이하는 룰에 대한 또 다른 감상.

 

 

 

- 모두가 만들어야 하는 이야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스터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 말아야 한다는 점 같아요. 물론 마스터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면 부담을 많이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과는 또 다릅니다. 자리에서 즉석으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어둠 속의 칼날은 시나리오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설령 자신이 어느정도의 스토리를 만들어둔다 하더라도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방향이 엇나가기 정말 쉽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난장판의 해결을 오로지 마스터에게만 의지한다면 마스터의 부담이 너무 커집니다. 마스터도 세션을 즐기려고 플레이하지, 뒷수습만 하려고 앉아있는 건 아니니까요.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니더라도, 건수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울 때도 어느 정도의 적극성을 가지고 방법을 제시하고 이야기에 동참해야지, 아무 것도 안 하고 모든 걸 마스터에게 바랄 수는 없습니다.

 

 

자,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래요?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라고 묻는다면 마스터가 선택지를 생각해 플레이어에게 제시해야 하지만,

 

음··· 계단에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으니, 혹시 창문은 있을까요?

창문으로 내려가고 싶어요. 밧줄로 쓸만한 게 없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해준다면 당연히 부담은 줄어들겠죠.

 

0에서 모든 것을 쌓아 올리는 작업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플레이어는 무조건 마스터의 말만 따르고 먼저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 따위는 없기에, 어둠 속의 칼날을 플레이하게 된다면 다른 룰보다는 아주 조금은 마스터와 플레이어 사이의 명확한 선을 흐려놓고 노는 것이 서로에게 더욱 재미있는 세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와 여러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의 양은 당연하게도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그러려면 플레이어가 다른 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임하는 동시에, 마스터 또한 플레이어가 제시하는 의견들을 적당히 수용한다면 보다 매끄러운 플레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TRPG는 마스터vs 플레이어 구도의 경쟁이 아니니까요!!

 

 

- 스트레스 & 부상 관리

두 번째로는 자원 관리. 단순히 금전을 가리키는 의미가 아니라, 캐릭터가 가진 부상 칸과 스트레스 칸을 포함하는 뜻의 자원입니다. 처음 플레이할 때는 몰랐는데, 생각외로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더라고요. 멋 모르고 '스트레스 칸이 8칸이니까 8번 도움을 주거나 분발이랑 적절히 섞어서 쓰자!'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랬다가는 정말 큰일나는 수가 있습니다. 발생한 스트레스는 다음 세션에도 이월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원치 않는 대가에 대한 저항 판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 저항 판정으로 최대 스트레스가 5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 4칸 이상부터는 영구적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하는 거고요.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4칸으로 관리한다면 반대로 악습의 해소에서 스트레스 이상의 주사위가 나와 과잉 탐닉의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어느 쪽이든 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걸 깨달은 순간 제작자가 스트레스 칸의 개수, 스트레스 증가량 및 감소량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설정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기야 아무런 쫄깃함이 없는 주사위 판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룰 제작자는 정말 대단하다) 때문에 스트레스 관리···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자원인 체력···이라고는 쓰지만 사실 체력 바는 없고 대신 부상 칸을 기입하고 그에 해당하는 페널티를 받게 되죠. 그런데 이 부상이 생각보다 엄청난 페널티입니다. 헉 ,···펌블인가요? 음··· 그럼 페널티로 당신은 책을 읽다가 종이에 손끝을 베입니다. HP -1. 이런 건 불가능합니다(CoC에서 페널티 생각하기 귀찮을 때 가끔 하던 짓). 어둠 속의 칼날에서 이런 판단을 했다간 플레이어는 경미한 상처를 입어도 판정에 큰 페널티를 받고 막간에 자신의 행동 횟수를 써가며 장기적인 치료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합니다. 손해가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렇기에 플레이어에게 부상을 부여하는 선택은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물론 저항 판정이 있긴 하지만 저항 판정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ex: 이미 직전에도 저항 판정을 해서 스트레스가 8칸이 된 경우 등), 판정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2단계 부상부터는 부상을 아예 없애주는 게 아니라 한 단계 내리는 효과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범죄와 활극을 다루는 어둠 속의 칼날에서 무뢰한을 지켜주자고 다른 적과의 결투나 위험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더라도 무뢰한의 상태를 봐 가면서 하자는 뜻. 진전 시계가 이곳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한 번 싸워서 판정이 5 이하로 나왔다고 바로 체력을 깎아버리는 게 아니라, 부상 1단계를 입을 때까지의 진전 시계를 그리는 겁니다. 칸을 채우는 건 판정 주사위에 따라. 너무 많은 칸을 만들어두는 건 진행이 루즈해질 수 있고 급박한 상황에서의 격렬한 전투에 진전 시계가 완전히 안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하면 되겠죠. 하지만 저는 조직원들과 오래오래 행복해지고 싶어서 처음부터 한방에 골로 가버리는 부상은··· 웬만해서는 주지 않을 것 같아요.

 

 

- 판정의 수와 건수의 길이

캐릭터를 짜고 조직은 만들어지기 전의 시점, 맨 처음의 건수 플레이를 마쳤을 때에는 모두가 낮은 스트레스치로 막간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세션을 하고, 보다 복잡해진 내용과 많은 판정이 들어가면서 주사위를 굴릴 일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높아지더라고요.

 

사실 저는 요즘 세션 한 번을 하면 3~4시간 금방 끝나는 세션보다는 2일 정도에 걸쳐서 하는 플레이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기에, 이번 어둠 속의 칼날 세션 일정을 이틀로 잡았을 때도 이틀을 통으로 쓰게 될 줄 알았어요. 생각보다 빨리 끝난 덕에 2일동안 두 개의 건수를 하게 되었지만요. 하지만 두 건수의 엔딩을 보고 나서야 '이 룰은 한 건수를 오래 가져갈 룰이 아니구나' 싶어졌습니다. 커다란 건수가 생기더라도 그 건수를 작은 하위 건수로 나누어서 진행해야지, 그러지 않았다가는 다들 처치곤란한 부상을 입고 트라우마에 빠져버릴지도 모릅니다.

 

기본적으로 어둠 속의 칼날 판정법은 50%의 성공률을 보장하지만 문제가 발생할 확률만 따지면 83%가 넘어갑니다. 이는 결국 무뢰한에게 주어지는 페널티고요. 때문에 판정의 수가 많아지면 무뢰한의 처지는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투에서 판정 한 번으로 단판 승부를 할 수 있다면 부상을 한 번 입고 말겠지만, 이를 판정 여러 번으로 진행한다면?

목적지까지 잠행 단체 행동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판정 한 번으로는 길목 중간까지만 이동할 수 있고 중간에서부터 목적지까지 판정 한 번이 더 필요하다면?

무뢰한이 받게 될 부상과 스트레스의 정도는 판정 한 번의 차이로도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사위 판정를 많이 넣느냐, 넣지 않느냐에 따라 건수의 난이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다른 여느 TRPG 룰과 같이, 어둠 속의 칼날 또한 이 행동에 판정이 필요할지 필요하지 않을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룰북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할 만한 소지가 있는 경우에 한해 판정을 진행하라고 안내합니다. 그 이외에는 굳이 판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건수의 길이도 적절히 안배하는 게 좋습니다. 막간과 막간 사이의 건수가 길어지고 복잡해지면 그만큼 판정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아직은 조직을 만들고 건수를 진행한 횟수가 단 두 번. 때문에 조직의 영향력이 약하고 내가 플레이하는 무뢰한 또한 강하지 않은 지금은 판정 한 번에도 더욱 불안감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와 조직이 성장할수록 저 또한 이 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겠죠.

완벽한 마스터링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파이팅

 

 

💖 우리 잿더미 조직 우정 영원하자 💖

(아직 서로 안 친합니다.)